"네에~? 어머님 무슨 말씀이세요?" 퇴근하고 한참 지난 밤늦은 시간에 흥분된 학부모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우리 아이가 똥개라니요." 자다가 무슨 날벼락인가. "제가 ○○이한테 똥개라고 했다고요?", "아니, 선생님! 그럼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화가 치밀고 분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전화했단다.
소소한 것까지 별의별 학부모 민원 전화를 받는 것은 다반사라 그러려니 하지만 너무 어이가 없다. '설마 내가? 아이들에게 똥개라 했을 리가….' 농담이라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다. ○○이 엄마의 흥분을 진정시키며 앞뒤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아이고, 두야~" 탄식과 함께 내가 내 머리통을 탁, 친다.
어려서 한 때 외가에서 자랐다.
"어이구, 우리 똥강아지 어서 와.", "우리 똥강아지는 밥 먹는 것도 어쩜 이리 이쁘니." 외할머니께서는 이름 대신 나를 '똥강아지'라 불렀다. 똥강아지. 생각만 해도 몽글몽글하니 볼 부벼보고 싶지 않은가? 세상에 이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말이 어디 있을까? 어른이 되어도 가장 듣고 싶고, 불리고 싶은, 나에게 이보다 더한 애칭은 없다.
중학교 막 입학한 1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마냥 이쁘고 귀엽다.
"어구어구~ 우리 강아지, 똥강아지들 잘했어, 잘했어요." 내가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만큼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똥강아지'가 '똥개'로 변질된 것이다. 참내,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하나? 이미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소환해서 일일이 정황을 설명할 수도 없으니. 또 아무리 설명한다 해도 '똥강아지'란 말의 의미를, 그 속뜻을 헤아릴 수나 있을까? 내 마음을 알아주기나 할까? 그만두기로 했다. 앞으로 더 주의하겠다고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수밖에.
교사에겐 사람이 일인 셈이다.
교직이야말로 사람 상대하는 것이 일이다. 교단에 서 있는 햇수가 더할수록 아이들과의 감정싸움, 학부모와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피로감이 누적된다. 더구나 교사는 따지지 말고 그냥 다 품어주고, 내주어야 하는 사람이란다. 한마디로 '무한 서비스업' 아닌가? 교사와 학생·학부모와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뿐인가, '1:1'이 아닌 '1:다수' 다. '서운해요, 기분 나빠요, 실망이에요.' 기준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숱한 가닥 거미줄이 목을 칭칭 감고 있다. 숨이 막힌다.
첫정, 첫사랑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처음 만난 아이들이 그랬다.
대학교 졸업한 그 해 첫 발령을 받았다. 9월 중간 발령인데 중학교 3학년 담임반을 맡게 된 것이다. 이미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시커먼 녀석들에게 초자 여선생이 얼마나 가소로웠을까?나이로 따져보면 7살 차이뿐이다. 슬쩍 옆에 와서 제 키와 내 키를 견주어 본다. 제 놈들 어깨쯤에 닿을까 말까 한 내 키를 가리키며 "에게게~" 한다. 나머지 녀석들은 멀뚱하니 서 있는 선생님 골려먹는 게 재미있는지 낄낄거린다.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되지."이 짜식들이 까불고 있어!" 버럭 소리 지른다. 이때 두 눈 딱, 부릅뜨고 양손 손가락 마디를 "뚜둑! 뚜둑!" 꺾어줘야 한다. 순간 녀석들이 깨갱, 움추러든다. '어? 욕이 먹히네.' 그때 배운 것이 욕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확실한 서열 정리를 끝냈다. 86년도 그 시대였으니 다행이지 요즘 세상이라면아마도지금쯤나는….
첫 부임지 녀석들이 첫정이라면 속정 깊은 녀석들도 있다.
읍단위 상업계 고등학교 근무할 때다. 당시 문제아니, 학교폭력이니, 교실 붕괴니, 생소한 단어가 생겼고 살벌한 학교 풍경이 심심치 않게 뉴스거리였다. 덕분인지 "힘드시겠어요. 그렇게 무서운 애들을…." 오히려 학부모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뒤이어 "선생님 그거 모르시지요?"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문제아인지 조목조목 증거를 제시한다. 길바닥에 찍찍 침 뱉더라, 담배도 뻑뻑 피우고 다니더라, 오토바이 타고 겁 없이 질주하더라, 남녀학생이 껴안고 다니더라. 등등. 그런 애들이 학교에서는 얼마나 개판 5분 전일까? 걱정인가 보다. "그래도 착해요. 괜찮은 애들이에요." 대답하자 나를 조폭 마누라 보듯 한다. 마음에 상처 있는 녀석들은 많지만 한 겹만 들춰보면 정말 착한 아이들이다. 지금도 명절 때 인사하는 아이들은 그 상고 졸업한 학생들이다.
아이들을 사로잡으려면 '썰'을 잘 풀어야지.
나머지 공부한 이야기, 시험에서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 맞은 이야기, 글씨 못 쓴다고 아버지에게 일기장 찢긴 이야기 등 주로 나의 흑역사가 소재다. 무엇보다 첫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 나를 쫓아다니던 코찌찔이 임 아무개 이야기로 10부작 연속극이 방영되기도 한다. 수업 끝나기 딱 5분 전에 시작이다. 누구 한 명이라도 수업 태도가 안 좋으면 그날은 결방이다. "오늘 연속극은 없겠는 걸."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우리 조용히 하자.", "너, 딴짓하지 마." 저희들끼리 단도리다. 선생인 나는 좀 거만하기만 하면 된다.
"너희 나이 때였지. 밤늦게 집에 가는데 마침 비도 오고 골목이 음산했어. 그런데 누가 뒤따라오는 거야." 여기저기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무서워서 뛰기 시작했어. 따다다- 따라오는 발소리도 더 빨라지는 거 있지. 이제 죽었구나 싶을 때 영임아! 하고 부르는 거야. 그게 누구냐 하면…." 한 반 30명, 똥그랗게 뜬 60개 눈동자가 반짝인다. 아이들은 벌써 다 넘어온 것이다. 이때가 타이밍이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끝!"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책상을 치고 난리다. 그래도 얄짤없다. 다음 국어시간을 간절히 기다리게 하는 수법이다.이건 내가 가르치던 80년대, 90년대 교실 풍경이야기다.
요즘 교실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 있을까?
TV뉴스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는 세상이다. "저 어린것들도 나를 무시해?" 선생님들이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는다. "애들이 뭘 모르고 하는 말이잖아요." 조금도 위로가 안 된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만 맞아 죽는 게 아니다. 다 큰 어른도 피멍 든다. 아이들은 어려서 그렇다 쳐도 다 큰 부모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훨훨~ 날아라. 날개옷을 준 걸까?
절대 아니다. 교직은 교사들에게 사명감이라는 갑옷을 던져주었다. 내 마음대로 한 발짝 떼기도 힘들다. 그 무거운 것을 두르고 애써 견디는 모습이라니…. 거기다 한 술 더 얹어 희생, 헌신, 봉사 따위를 무언으로 강요하는 교장, 교감, 기타 등등 주변인들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