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장이 되었을 때 우스갯소리처럼 한 말이다. 그런데 정년 1년 앞두고 보니 농담이 아니다. 늙은 교장, '노교장'이 된 것이다. 지금 학교 내 신발장은 맨 위층, 첫 칸이다. 학교에서 제일 빨리 떠나는 순서다. 국민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54년간 학교만 다녔다. "나도 내 갈 길 가야지. 언제까지 학교만 다니란 말인가." 허세 부려왔다.
먼 이야기다 싶었다.
그런데 딱, 1년 남았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나 혼자 사회에서 도태되는 건 아닐까? 무리에서 혼자 떨어지는 건 아닐까? 두렵고 무섭다. 교직에 39년 머물렀다지만 다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가슴 저밀지 모른다. 퇴직 이후, 지루한 일만 남은 내 나이가 나를 미치게 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나이 든 어른들 모습이 든든함만은 아니었다. 존경스러움은 더더욱 아니었다. 저들에겐 무슨 꿈이 있을까? 저 나이에 희망도 없이 무슨 재미로 살까? 기운 없음이 초라해 보였다.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된 것이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당연히 초라하게만 비칠 것이다.
출근길 FM 라디오 음악 듣는 것이 즐거움 중 하나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허밍으로 따라 부른다. 간주곡 나오는 중간에 텀블러에 내려온 커피 한 모금 홀짝인다. “아, 이 맛에 학교 다니지.” 싶다. 오늘 음악 신청자는 교직에서 정년퇴직하는 아버지를 축하하는 딸 사연이다. "아버지께서는 34년간 학교 선생님이셨어요. 그런 아버지가 너무너무 자랑스러워요." 라디오 DJ가 “우와~, 진심으로 축하, 축하드립니다. 34년 동안 외길만 걸어오신 거네요.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극찬이다.
내가 미리 칭찬받는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학교까지 출퇴근하려면 연이어 굽이진 고갯길 하나를 넘어야 한다.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 40Km 구간 단속 지점이다. 매일 아침저녁 구불구불한 이 길을 넘어가고, 넘어온다. 사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굽이진 산길을 넘고, 넘어가는…. "그 많은 날을 잘도 지나왔네."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런데 말이야. "평생 한 가지 일만 해온 것이 잘한 걸까?"
34년 노고를 담은 묵직한 음악 들으며 "글쎄?" 하는 생각이 삐죽 올라온다. 세상은 넓고, 직업은 얼마나 다양한가? 또 하고 싶은 일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데 오로지 외길만 달려온 것이 자랑이고, 한 우물만 팠다는 것이 칭찬받을 일인가? 반문하게 된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이것저것 해보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럼 나는…” 나에게 되묻는다. “뭐긴 뭐야. 주변머리 없고, 융통성 없는 거지.” 쥐어박듯 한마디 해준다.
#퇴직, #중년, #60대, #인생 설계, #제2의 인생….
요즘 이런 키워드를 다룬 책이나 강의, 유튜브 동영상 등을 열심히 찾아본다. 퇴직 예정자나 퇴직한 이들의 공통된 키워드는 ‘후회’와 ‘허무’다. 그동안 성과를 높이려고 버둥거리며 받은 스트레스, 죽어라 일만 한 자신의 헛똑똑함, 남들을 위해서만 살아온 날에 대한 후회, 최선을 다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울분, 직장 상사에게 받은 부당함, 그런데 남은 것이 없다는 '허무함'이 주요 골자다. 무엇보다 그렇게노력한 자신은 정작 위로받지 못하고, 소홀히 대접한 것에 대한 ‘속상함’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단다. 결론적으로 지금부터는 자신을 위하여 살겠단다.
“나는 뭐 그 정도까지야.” 폭풍 공감하지 않는 걸 보니 죽을 둥 살 둥 일에 목숨 걸고 산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하여 산 것만도 아니다. 그냥저냥 나 자신도 챙겨가며 살아온 거다. 그러니 뭐 그리 억울할 건 없지. 다행이다.
나 좋자고 일한 셈이다.
난 그리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달그락, 달그락" 머릿속에서 잔돌 굴리는 소리 들릴까 봐 잔머리도 못 굴린다. 소심한 편이라 대충 농땡이도 못 쳤을 것이다. 자존심 하나에 목숨 거는 편이라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라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한 사람이 고생해서 나머지 사람이 편하다면 그 1인이 되겠다고 자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기특해서 '잘했어' 우쭐하지 않았을까. 결국 나를 위하여 기를 쓰고 달려왔다.
지리산 종주길에서 멈춰 섰다.
3번째 지리산 종주길, 발목뼈가 부러졌다. 119 긴급구조대 헬기로 산을 내려왔다. 누가 들으면 암벽이라도 기어오르다 사고 났나? 하겠지만 나무 층계길 통! 통! 통! 뛰어내려오다 난 사고였다. 골절 수술 후 보름 남짓 휠체어 타고 병원 신세다. 발목에 철심 박는 수술과 통증보다도 학교도 못 가고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때 알았다. ‘멈추어야 비로소 보인다.’는 것을…. 그동안은 가속 붙은 내리막길을 그저 내달리듯 살아온 셈이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뒤돌아보면 '소금기둥 되어 그 자리에 굳어버릴라.'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렇게 살아온 게 맞는 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다.
내리막길 다음으로 평지 길을 마저 걸어야 한다.
이제 천천히 걷듯 살아야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이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어도 잘 사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