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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클레어 Sep 19. 2024

불완전하지만 괜찮습니다

불완전한 사람의 버티기 기술

우울증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든다.

우울증을 벗어나려면 햇빛쐬기, 운동,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한다고 정신과 의사들은 말한다.

그런데 햇빛쐬기, 운동, 규칙적인 생활을 평소에도 한다면 우울증이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우울증 환자의 마음에는 충성심이 가득한 검은개가 있다.

이 검은개를 쫓아내고 싶은데 충성심이 높은건지 머리가 좋은건지 끈질기게 자리잡고 앉아있다.

검은개가 마음을 굳건하게 지키는 날은 우울증이 심해지는 날이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 앞에서 했던 연극을 끝내고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약을 먹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가 싫었다.

내 의지에 저주를 퍼부운 날도 많았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온 어느날이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나를 멍하니 보았다.

피부는 푸석하고 다크서클도 진하고 볼은 움푹 페어 있는데 분위기까지 어두운 그럼 인간이 거울을 보았다.

엘리베이터에는 나밖에 없었으니 거울에 비친 어두운 인간은 나였다.

아이 앞에서 열심히 연극을 했는데 아이가 “엄마가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라고 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음속 검은개를 쫓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안돼. 이를 악물고 움직이자. 운동하자”


예전에는 멋있고 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장렬하게 실패했다.

장렬한 실패가 싫어 소소한 계획을 세웠다.

30분이상 햇빛보며 산책하기, 아이 앞에서 힘내기, 새벽에 깨더라도 일찍자기.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버틸 수 있다.

이 계획이 소소하다고 쓰지만 당시에는 도시를 계획하는 것과 같은 중압감을 느꼈다.

중압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마음 속 검은개 쫓아내기 대작전.


햇빛을 보며 30분간 산책을 시작했다.

동네를 돌아다닌다는 생각으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강도였지만 그래도 움직였다.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날에도 걸었다.

걸으면서 축축하게 젖어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마음을 뽀송하게 말리고 싶었다.

걸을때마다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파랗고 높았다.

파란 하늘을 보니 노래가 떠올랐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희망이 가득한~”

노래를 흥얼거리다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소설이든 영화든 제일 싫어하는데, 의식의 흐름으로 노래를 불렀고 뛰었다.

스트레칭은 생략하고 냅다 뛰었다.

오랜만에 뛰어서  1분 만에 숨이 찼고 입에서는 피맛이 났다.

힘든데 기분은 이상하게 좋았다.

‘고작 1분 달리고 기분이 좋아지다니.’

고작의 감정이었지만 그 고작을 모으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달렸다.

1분 달리다 3분을 달렸고 또 5분을 달렸다.

달리면 머리 속 잡념이 사라졌다.

잡념이 사라지니 우울함도 그 순간은 잊을 수 있었다.


약 복용, 운동, 햇빛으로 100% 좋아지면 좋았겠지만, 운동을 끝내고 돌아와도 깊숙한 심연으로 들어간 날도 있었다.

검은개는 머리가 좋았고 충성심도 끝내줬다.

심연으로 들어간 나는 내 자신을 죽도록 미워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강제로 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강제적인 약속이 필요했다.

잉여인간의 강제적인 약속= 아르바이트.

강제적으로 밖으로 나가야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돈도 벌 수 있다.

최고아닌가.

하지만 아이가 돌아오기전에 끝나는 잠깐의 알바는 없었다.

그나마 찾은 아르바이트 중 샌드위치가게와 카페 아르바이트는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고 나이 제한이 있는 곳도 있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네. 세상이 날 버리네”

반포기 상태로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다 내 조건에 맞는 아르바이트를 발견했다.

”개인카페 점심시간 3시간 아르바이트를 구합니다.“

고민하지 않고 이력서를 냈다.

걱정했는데 예전에 했던 아르바이트 경력으로 합격했다.

세상은 날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르바이트가 시작됐다.

카페의 점심시간은 점심시간 식당만큼 바쁘다.

점심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다음 코스로 카페를 선택했다.

카페로 들어온 사람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다양한 음료를 주문했다.

웃으면서 주문하는 사람, 짜증 나는 말투로 주문하는 사람, 무표정으로 주문하는 사람.

주문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로 내 기분은 지옥과 하늘을 왔다갔다 했다.

하대하듯 주문하거나 돈을 던지든 주는 사람, 검지와 중지로 카드를 껴서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분노조절 장치가 망가진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마음속으로 쌍욕을 해댔지만, 난 웃으며 주문을 받았고 커피를 만들었다.

카페 아르바이트에서 분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커피를 주문했을 뿐인데 나를 배려심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 실수도 웃어넘길 줄 아는 쾌활한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건이 종종 벌어져 우울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번다는 것이 좋았다.

부속품이 아닌 완제품의 부품이 된 것 같았다.

“난 더 이상 잉여인간이 아니다.”


아르바이트가 좋았고 계속하고 싶었지만 코로나가 터졌다.

점심시간 북적이던 직장인들은 카페에 더이상 오지 않았다.

손님이 없는 카페는 고요했다.

코로나 전에는 바뻐서 손님이 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손님이 오자 심심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없는 일을 만들어 했다.

서랍도 정리하고 커피머신도 열심히 닦았다.

하지만 사장님도 나도 그만둬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정들었던 조그마한 카페를 그만두고 나오는 날 시원하고 섭섭하고 무언가를 했다는 성취감도 느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위해 발버둥을 쳤다.

노력이 가상했는지 기분은 더이상 심연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 속 검은개도 충성심을 잃어버렸는지 내 기분을 좌지우지하지 않았다.

상담을 할때마다 조금씩 기분이 괜찮아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던 선생님이 이제 약을 그만 먹자고 하셨다.

상담도 그만해도 된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이젠 괜찮을거라고 말해주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난 괜찮을꺼야.’

우울증은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마음속 검은개의 충성심이 언제라도 되살아날 것 같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우울함과 싸우며 존버 기술을 사용하여 매일을 버틴다.


불완전하지만 버티는 기술을 연마했으니 오늘도 열심히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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