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학 선생과 체육 선생을 비롯한 모든 선생이모인 교무실에서 처음처럼 새로 인사를 하고, 직원 사무실에도 들려 선생들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인사를 했다.
저녁땐 이모네 집에 가서 이모와 사촌들에게 장난기 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 소식을 전했다.
이모가 보리밥 차롱(대나무 도시락통)을 들고 학교로 찾아온 날 이후, 나는 내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내가 아무리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장남이라 해도, 여섯 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남의 밭에 풀을 베러 다니기 시작하고, 열세 살엔 학교의 임시 급사가 되어 봉급을 받기 시작했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직은 스스로를 ‘어린아이’로 여기는것을 허락했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도 달밤이면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하고 반딧불이를 쫓아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어쩌면 나는 우리 어머니는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도 내가 아직은 ‘어린아이’ 일뿐이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날 이후, 내 최후의 응석들은 이제유년의 담장 너머 그곳에 남겨두어야 하며, 철없는 어린 노루처럼 앞으론그담장을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잡초밭, 달밤의 아이들과 선연한 코피, 팽나무에 걸려있던 라디오와 대학생 형님.
교실에서 글씨를 쓰고 있던 선생의 뒷모습과 숙직실의 이불이며 작은 창문.
보리밥 차롱과 이모의 따뜻한 손, 바스락거리던 신문지의 감촉과 입안 가득 머금었던 석유의 냄새.
그리고 비 오는 밤 찾아온 두 번의 목소리까지.
나는 이 모든 장면이 고스란히 내 유년의 경계에 남아 앞으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열세 살의 연못’ 위로 흘러갈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서서히, 비 오는 밤 청년이 가엾다고 읊조린 것이 나를 놀리는 말이 아니라 본인의 가여운 인생을 알아달라는 절규였음이 알아졌다.
그리고 절절히, 신발을 갖다 달라던 소녀의 영혼을 붙잡고 있는 것이 '자신의 잃어버린 인생'이 아니라 '잘못 신고 나온 어머니의 신발'이라는 게 가슴을 후벼 팠다.
다시 밝아온 아침.
살아있기에 살아볼 수 있는 또 한 번의 날이 결국은 또 다른 어제일지라도 살아있기에 살아낼 수 있으리.
나는 긴 담장의 풀을 쭉 베고 나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몸을 일으켰다.
푸르스름한 여명 속으로 갓 베어놓은 풀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왠지 베어진 육신 곁을 아직 떠나지 못하는 영혼의 망설임처럼 느껴졌다.
소녀가 신발을 잃은 어머니의 걱정을 그치고, 삶을 잃은 자신의 넋을 거두어 저 맑은 하늘로 떠오르길......
청년이 부디 그 한없이 가여운 지난 생을 놓아버리고 억울함이 풀어진 다음 세상에 태어나길......
나는 기도 비슷한 것을 마음으로 속삭였다.
향기가 마침내 베어진 풀줄기를 거기에 둔 채 허공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하늘과 땅이 빛과 온기로 채워지며 희미한 은빛이던 운동장이 환한 모랫빛으로 바뀌어 갔다.
곧 수학 선생과 교감 선생이 등교를 할 것이었다. 나는 정식 급사이고,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베어놓은 풀들을 손수레에 싣고 연못가 담장 구석으로 가 쏟아놓고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무실을 향해 힘차게 달리기시작했다.
천천히 돌으라…너미 빨리 감시녜…
(천천히 달리렴… 너무 빨리 가고 있잖아…)
눈앞에 선한 소년의 뒷모습을 향해, 얼마 후면 흙으로메워질 연못가에 선 백발의 내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교무실을 향해 달리던 소년이 문득 멈춰 서서 뒤를 돌아 연못 쪽을 바라보았다.
동이 터오는 운동장을 달리던 소년과 노을 지는 연못가에 선 노인은서로의 얼굴을한동안마주 보면서,마치무슨 말이라도 주고받은 듯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소년은 씽긋 웃더니 몸을 돌려,달리던 방향으로 다시 힘차게, 힘차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끝>
가난한 시골 소년의 성장기 속에서 삼만 개의 제주 4.3 이야기 중 두 개의 목소리를 희미하게나마 전해드리며...
<열세 살 나의 연못>을 읽어주신 모든 분과 소년과 함께해 주신 모든 '이모'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