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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Oct 22. 2024

(09) 애돌앙 오지 말카허당

(단편소설) 열세 살 나의 연못 09




숙직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모는 들고 온 작은 차롱(대나무 도시락통)을 나에게 주었다.

보리밥과 김치였다.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 입 안 가득 넣으니 밥알이 미끌미끌 거리며 폭폭 터졌다.

춤이라도 춰질 듯 기분이 좋은 가운데, 차롱 안의 밥이 척척 줄어들었다.

이모 말이.


「요 며칠 전, 장에서 너희 엄마를 봤는데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며 안 하기에, 해보라고 채근해서 겨우 들으니, 코가 시큰해지면서 너 여기에 와있다고……

몇 걸음만 걸으면 이모 집인데 멀어서 못 왔니?

십오 분밖에 안 걸리는 지척에 와 있으면서 들를 생각도 안 하고…… 응?」


이모는 화난 목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나 막 용심이 나멍, 애돌앙 오지 말카 허당 와 봤져.”

(내가 너무 화가 나고 애가 닳아서 오지 말까 하다가 와 봤다.)


벌써 보리밥 차롱을 다 비운 나는 이모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모에게 서운해 마시라고, ‘임시 급사(잡무원)’라서 말을 못 한 것이지, 정식으로 결정되면 바로 달려가려 했다고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허난 이모, 제발 용심 내지 맙서... 예?”

(그러니까 이모, 제발 화내지 마세요... 예?)


대나무를 잘게 잘라 부드럽게 만들어 엮은 도시락통 '차롱' - 1인분만 담는 작은 차롱은 '동그량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모는 용심(화)을 내기는커녕 그 따뜻한 두 손으로 내 손을 꽉 붙잡고는 놓지를 못하였다.


“겐디, 니 밤에 모숩진 않허영 여기서 잠자곡 해졈시냐?”

(그런데, 너 밤에 무섭진 않고 여기서 잠자고 해지?)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모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였는지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면서, 비 오는 날 숙직실에 혼자 있을 때 들은 두 번의 목소리 이야기를 단숨에 해버리고 말았다.

이모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내 얘기를 다 들은 후에, 나처럼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하는 말이.


「네가 어린데 이런 말을 해서 될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있겠다고 하니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이야기하마.

너 태어나기 몇 해 전 사월 봄 되어 갈 때에, 토벌대가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였다는 이야기, 밭에 일하러 다니면서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너도 들어본 적이 있지?

이 동네에선 이 학교였다. 여기에 모이라고 해서는 저 연못 뒤편의 담장 앞에  세워가지고…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한 다음, 그렇게……

흠…… 네 얘길 들으면서 문득 생각이 났는데, 저쪽 모퉁이 집에도 지금 너와 비슷한 나이였던 여자 아이 하나가 엄마 없는 틈에 끌려 나가서 안타깝게 되었다고 한다.」


이모는 한숨을 몰아쉬고 말을 쉽사리 잇지 못하며 띄엄띄엄 말했다.


“어떵 마을에만 고만이 이서난 우리 같은 사름덜을 경…… 어떵허당 경 허여신고…… 어떵허당

그런 거 생각허민 너미 애석허여, 막 가여와. 한둘이 아니라, 막 하.

휴우…… 우리  죽은  천 명이 넘은덴 허염시녜.

동네 사름 혼 명만 어서져도 날 메칠 마음이 왁왁허는디, 갑자기 식구가 어서져분 사름덜은 오죽 헐

죽은 사름 수는 세어도 남은 사름덜 가슴에 박아진 못은 수정을 지 못헐 거여 ……

겐디 어떵 이게 호나의 사건이랜 헐 수 이시크니, 이?

우리 면에서만 천 개가 넘는 사건. 제주도 전체 다 세어보민 만 개, 이만 개도 넘으아이고게!

나가 어린아이신디 밸 말을 다 골아졈구나게.

(어떻게 을에만 가만히 있던 우리 같은 사람들을 그렇게…… 어떡하다가 그렇게 을까……  어떡하다가…

그런 거 생각하면 너무 애석해, 너무 가여워. 한둘이 아니야, 너무 많아.

휴우…… 우리  죽은  천 명이 넘는다고 하잖아.

동네에 사람 한 명만 없어져도 몇날 며칠 마음이 깜깜한데, 갑자기 식구가 없어져버린 사람들은 오죽 할까

죽은 사람의 수는 세더라도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박힌 못은 수를 세지도 못할 거야……

그런데 어떻게 이게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니, 그치?

우리 면에서만 천 개가 넘는 사건. 제주도 전체를 다 세어보면 만 개, 이만 개도 넘는 아이고야!

내가 어린아이한테 별 말을 다 해버리고있.)



가슴이 터져버릴 듯 슬픔이 차오르며 머릿속에서 쿵쾅쿵쾅 망치질을 하는 것 같았다.


이모는 학교의 연못 근처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비가 오거나 날이 궂은 밤엔 특히 명심하고, 그런 날만이라도 이모집에 와서 자고 가라고 말하며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계속 쓸어내려 주었다.


그날 이후 누구에게도 이 말을 해본 적이 없지만, 여전히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채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을 소녀와 이제는 나보다 훨씬 어려져 버렸을 청년의 목소리를 나는 지금까지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잠시 후 이모와 나는 밖으로 나왔다.

교문 밖까지 걷는 동안에도 이모는 ‘진짜 여기서 계속 잠을 자며 살 수 있겠냐’를 몇 번이나 다시 물었고, 나는 ‘학교에서 급사를 그만두라고 하지 않는 한 계속 살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대답했다.

어쩐지 내 말투가 조금 의젓해진 기분이 들었다.


“잠은 여기서 잔덴 허여도, 내일부터랑 저녁 되민 이모 집에 왕 밥이라도 먹엉 가라, ?

(잠은 여기서 자더라도, 내일부터는 저녁 되면 이모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 응?)


신신당부하듯 말하는 이모를 교문 건너편 사거리까지 배웅하고 학교로 돌아오는데, 쪽에서 체육 선생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체육 선생은 웬일로 나에게 손짓을 하며 달려와서는 ‘같이 들어가자’고 말했다.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뜨난 왔수과?”

(웬일로 왔어요?)


체육 선생은 오늘 숙직 선생과 다음 당번일을 바꿨다면서, 나와 친한 사이라도 되는 듯 안부를 묻는 척했다.


“어제는 어떵허당 보난 못 왔져. 니 혼자 잘 이서져시냐?”

(어제는 어쩌다 보니 못 왔어. 너 혼자 잘 있어졌니?)


나는 속으로 ‘어제만 못 왔나, 저번에도 못 왔지.’라고 생각하면서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며 삐진 사람 행세를 톡톡히 했다.

숙직실에 나란히 이불을 펴고 누운 후에야 나는 선생에게 슬쩍 물어봤다.


“무사 숙직 헐 때 자꾸 안 왐수과?”

(왜 숙직할 때 자꾸 안 오세요?)


선생은 조금 뜸을 들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냐?”라고 되물었다.


“선생님 보기에 나 어떵헐 거 닮으꽈? 막 방송을 내우쿠다.”

(선생님 보기에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아주 방송에 겁니다.)


선생은 ‘요것 봐라’하며 웃은 후에, 내가 친구라도 되는 듯이 속삭인 말이.


「나 있지, 운동이나 교련은 꽤 잘하잖아? 사람들은 겉만 보고 잘 모르는데, 너한테만 살짝 얘기하면, 음……

나는 있지, 귀신이 너무 무서워.

비 오는 날 숙직 걸리면 등골이 으스스하면서 닭살이 쫙 돋아버린다니까? 그러니 네가 나 좀 봐줘라. 응?

참! 그런데, 넌 불을 사르고 비춰 보면서 말까지 했다면서?」


나는 선생을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진 하지 않고, 그저 필요한 딱 한 마디만 하고 돌아누웠다.


“비 오민 선생님 안 올 거랜 알앙 이시크메, 이제 선생님네 밭 갈래는 안 가쿠다, 양?”

(비 오면 선생님 안 올 거라고 알고 있을 테니, 이제 선생님네 밭 갈러는 안 갈 겁니다, 예?)


선생은 등을 돌리고 돌아누우며 “에이구, 치사허다. 난 무서워서 못 오는 건디(난 무서워서 못 오는 건데).”라고 했지만, 나는 소리 없이 몰래 웃으면서 대답은 하지 않았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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