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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Nov 01. 2024

01.회사 그만두면 뭐 하려고?

반딧불이 반짝이는 시골 책방



지난 여름 어느 일요일 저녁, 나는 신랑에게 말했다.


- 여보, 나 진짜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월요일 출근 시간이 임박해 가는 일요일 저녁이면 심심치 않게 해 왔던 말이라, 신랑은 이번에도 "여보님~ 나 보구 힘내요~ 여보는 능력자니까 다음 주에도 잘할 거예요~" 하며 애교 섞인 응원과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신랑의 응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다시 한번 말했다.


- 아니, 진짜루, 진지하게, 나 정말, 이제 정말, 회사 안 다니고 싶어요.


몇 번이나 한숨이 섞여드는 내 말에, 신랑은 장난기를 거두고 다정하게 물었다.


- (심통 난 어린아이와 눈 맞추듯 나를 바라보며) 회사 그만두면 뭐 하려고?


- (한껏 심통 난 어린아이처럼) 몰라. 그냥 내 거를 하고 싶어. 남의 거 말고, 내 거.


- (심통 난 어린아이를 달래는 인자한 할머니처럼) 지금 하는 일도 여보 거예요.


- (심통 나서 버둥거리는 어린아이처럼) 에잉, 그런 법륜스님 같은 말 하지마아~ 



나도 안다.

지금 하는 일도 내 것이라는 것.

다닐 회사가 있는데 징징거리는 건 배 부른 소리이며, 회사는 먹여주고, 자동차 할부값을 내게 해 주고, 부모님께 소소한 효도를 있게 해주고, 귀여운 조카들에게 책도 사줄 있게 해주는, 고마운 곳이라는 것.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일생을 '남의 것'을 한 것이 되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온전히 '내 것'을 한 것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진리로도 가슴을 설득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지난 여름의 그 일요일 저녁이었다.


- 남의 거 말고, 여보 거. 그거 뭐예요? 여보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신랑의 단순한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싫은 건 명확히 아는데, 하고 싶은 건 확실히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함.

아침에 깨어난 후 와장창 잊어버리고 마는 간밤의 꿈처럼, 느낌만 있고 뚜렷하지 않았다.


그때 김창옥 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하늘에서 내려왔다. (^^)


문득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세요.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그동안 내가 어떤 곳에 돈과 시간을 제일 많이 썼는지 살펴보세요.

딱히 돈이 되지도 않는데, 시간을 들여 그걸 계속하고 심지어 돈도 쓰고 있다면, 당신은 그걸 좋아하는 겁니다.


느낌이 왔다. 내가 일생동안(?) 제일 많이 산 것.

좁은 기숙사 방과 자취방 원룸을 전전하며 나와 함께 살아온 수많은 이야기들.


책이다!


'책'으로부터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린이 독서교실? 독서치료센터? 글쓰기 명상 센터? 유료 독서모임 공간? 북카페?...

모르겠다. 지금은 모두 뜬구름이다.


책과 도서관, 서점, 공부방, 교습실, 1인 학원 창업에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여전히 '싫다, 싫다.'를 입에 달고 회사에 나가며,  주 또 한 주,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본 것이다.



제12회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 소설 부문 신설.




회사 모니터에 우연히(?) 켜져 있던 인터넷 창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던 저 문구!


그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신랑과 만나자마자, 나는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다짜고짜 외쳤(?)다.


- 여보! 나, 알아냈어! '내 거'가 뭔지, 확실히 알았어!

나 완전히 포기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나 봐.

소설! 소설을 써야 돼.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세상을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을 소설로 써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해!

여보! 나는 일단 다시 소설을 써봐야겠어.


나는 신랑을 부둥켜안고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기뻐했다.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도전을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설'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내 가슴이 뛰고 브런치 작가에 '신청하기'를 눌렀다는 게 중요하다.


삼 년 전 써놓은 소설의 일부를 나누어 브런치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너무 장편이라 공모할 곳도 마땅치 않았고, 그나마 원고를 보낸 모든 곳에서 선발되지 못한 '아픈 손가락'

<얼음 강물을 건너온 소녀>였다.

단 한 명이라도 의미 있게 읽어준다면 그걸로 만족하기로 리은주와 나는 동시에 생각했다. (^^)

그래서 두 달이 지난 지금, 결과는?


만족한다.

의미 있게 읽어준 단 한 명이 있다고 믿으니까.


소설을 연재하며 동료 작가님들의 댓글로 힘을 얻고, 내가 쓴 이야기에 내가 빠져들고 등장인물들을 사랑하면서,

가슴속에 불타오르던 '회사 다니기 싫어 병'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참 다행이었다.

회사에 나가는 건 여전히 즐겁지 않았지만 여름처럼 들끓지는 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회사가 아니었다.

내 가슴을 활활 불타오르게 만든 것은 바로...!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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