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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Nov 08. 2024

02.나도 저기에 있고 싶어

반딧불이 반짝이는 시골 책방



‘회사 다니기 싫어 병’이 가슴을 불태우며 들끓던 여름.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고 소설을 연재하며

가슴속 불덩이는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하였는데...

    

정녕! 사그라들었단 말인가! 두둥!

(정년이 후유증이 참말로 지독해부네요잉...ㅎ)            

   





일요일 저녁마다 급격히 다운되는 기분과

월요일 아침의 투덜이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브런치에 소설을 연재한 이후, 어디선가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시작된 것만은 확실했다.

마침내 가슴에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았으니까.

     

나를 북돋우는 신랑의 대사도 바뀌었다.

“여보님~ 나 보구 힘내요~”에서

“여보님~ 어서 브런치 해요~”로.   


처음에 브런치는 내 글을 업로드하는 ‘게시판’ 일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유튜브보다 브런치를 더 자주 클릭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우선 내 글에 댓글을 남겨준 분들의 브런치북을 찾아가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한 편 한 편 읽던 글이 점차 한 줄 한 줄 읽히더니 언제부턴가 한 자 한 자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나 모바일 화면 위 긴 글을 이렇게 종이책처럼 읽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적응하고 보니 종이책과는 또 다른 글맛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글박스를 보게 되었다.     



황보름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 알라딘 서점에 들어가 책을 검색해 장바구니에 담았다.

바로 사진 않고, 일단 담아두고 며칠 기다린 것 같다. 무엇을 기다렸는지 그땐 알지 못했지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클레이하우스, 2022)

         

퇴근하고 집에 와서 서가를 보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와 비슷한 느낌의 제목을 가진 책이 꽤 있었다.

    

한창 열 올려 도서관, 서점, 공부방, 교습실, 1인 학원 창업에 관련된 책들을 읽던 시기에 닥치는 대로  책들이었다.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다산책방, 2024)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인플루엔셜, 2021)
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지음, 이영아 옮김, 인플루엔셜, 2024) ;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2017)


한 달 넘게 펼치지도 않고 있던 책들을 살펴, 읽을 순서를 정했다.     


그날 저녁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을 단숨에 읽고,

다음날부터 출퇴근하는 차에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듣기’ 시작했다.

차에서 오디오북으로 듣고,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는 종이책으로 이어서 읽었다.

오디오북과 종이책을 번갈으며 <사라진 서점>까지 완독 한 후에야 나는 황보름 작가의 책을 주문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마도, 책 띠지에 붙어있는 그들의 어마어마한 명성이 두려웠던 것 같다.


- 2024 일본 서점대상 1위

- 2024년 전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힐링소설, 전 세계 30개국 판권 수출, 2024 영국도서상 최종후보

- 전 세계 900만 부 누적 판매, 2021년 올해의 책 선정 도서, 뉴욕타임스 106주 연속 베스트셀러

- 아마존, 아마존 UK,USA투데이, 월스트리트저널 1위


이런 어마어마한 책을 읽고 나면, 당분간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나를 압도해 버릴까 봐 두려웠다.

세 권의 책을  읽은 후에야, 나의 두려움이 거품 같은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이 왜 힐링소설을 읽는지 비로소 가슴으로 알 수 있었다.

강렬하게 휘몰아치며 압도하는 대신 따스한 담요로 감싸듯 내 마음을 부드럽게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브런치 작가소개에도 썼듯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글보다 단비처럼 스며드는 글’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은 나였다.          


드디어 주문한 황보름 작가의 책이 도착했고 나는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오디오북이 없어 온전히 종이책으로 읽었는데, 매일 저녁 퇴근 후 휴남동 서점에 들르는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하며 읽었다.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지만, 지금은 이 두 문장이 생각난다.


어느 날 집을 나서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나와 출근을 하지 못했다. (p.292)

          

언젠가 출근길에 숨이 쉬어지지 않아 주먹으로 연신 가슴팍을 퍽퍽 쳐대며 한 손으로 운전을 했던 기억이 났다. 퇴근길이면 몰라도, 출근길엔 기어코 눈물만은 참아내는 나였다.



책 읽기를 가장 좋아하던, 명랑하고 잘 웃던 중학생 시절로 되돌아가기.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p.299)          


난 학생 시절을 돌아볼 때마다, 스스로를 불평 많고 뾰로통한 아이라고 생각하곤 했지만 이 대목을 읽고 나서, 명랑하고 잘 웃던 내 모습도 무척 많다는 걸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잘 웃던 나에게 무언가를 시작하게 해주고 싶어졌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휴남동 서점이 계속 생각났다.     

서점 주인과 바리스타, 커피(원두) 가게 사장, 뜨개질 여인, 동네 고등학생, 작가 등... 

등장인물이 한 명씩 서점으로 들어오고, 그들은 ‘따로 또 같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걷다가 멈추고, 울고 웃고, 성장하고 돌아보며, 서점과 서점 사람들은 거기에 있었다.     


어느 틈에 가슴속에 다시 왈랑왈랑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를 집어삼키는 화병의 불이 아닌, 너무나 오랜만에 타오르는 ‘순수한 열정의 불꽃’이었다.          




나도 저기에 있고 싶다.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보니,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마다 마음이 중요하게 작용했었다.

‘나도 저기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서울에 있는 그 대학의 캠퍼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

커다란 유리문 너머 그림책 가득한 독서학원을 보았을 때.

베이징에 있는 그 대학의 도서관 건물에 들어섰을 때.

채용 공고를 보고 도착한 낯선 도시의 소박한 건물.

청춘의 많은 날들을 보낸 수행과 봉사활동.

겁 없이 도전한 군소정당에서의 나날들......


이번에도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래, 나는 그곳에 있고 싶은 것이다!

휴남동 서점에!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

사라진 서점에! 그리고...

섬에 있는 서점에, 말이다!


망설일 게 없었다.

나는 또 퇴근 후 집에서 만난 신랑에게 다짜고짜 외쳤다(?).     


- 여보! 나 책방 할래요! 섬에 있는 동네 책방요!          


신랑은 또 인자한 할머니 같은 표정이 되어 나에게 대답했다.


- 그래요. 이제는 정말 여보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이번 주말에는 동네  구경 가요.               



아, 그런데,

주말마다 제주 곳곳의 서점을 돌아보며, 원도심의 빈 가게와 빈집에 눈독을 들이던 어느 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떡 벌리고 말았습니다요~ 두둥!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 -




'나도 저기에 있고싶다'는 마음을 일깨워준 책들과 책방에 대해 공부하는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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