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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오름 Oct 27. 2024

직장인이 아닌 ‘진짜 나’로 살아가기

앞으로 펼쳐질 내 모든 날을 축복하며

나는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남들이 보기에 나는 좋은 사람인가 혹은 나쁜 사람인가

나는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이유에서 나를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는가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타인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말았다.

- 돈 미겔 루이스, 돈 호세 루이스, 재닛 밀스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중에서


타인에게 좋은 사람과 나에게 좋은 사람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까. 둘 다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한 선택일까. 각자의 답은 다를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과거의 나는 분명 나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부단히 애를 쓰고 양보하며 희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을 버리고 말았다. 진짜 ‘나’는 없고 ‘만들어진 나‘로 오랜 시간을 살았다. 남에게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아서 때로는 나에게 나쁜 선택을 했다. 남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 자신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참는 것이 습관이 됐다. 남에게 욕먹지 않는 대신 나 자신에게 욕하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나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노력과는 별개로 나 자신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학을 나왔으면 당연히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해야지. “

“간호사라면 대학병원은 들어가 봐야지.”

“수간호사, 간호부장까지 하려면 대학원을 나와야지.”

“연봉이 우리나라 몇 배 훨씬 더 높다는데 미국 간호사 준비하는 건 어때. “

“어느 정도 연차도 쌓였으니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건 어때.”

“다들 그렇게 살아. 사는 게 뭐 별거 있는 줄 아니.”

“언제 적 꿈 타령이야. 현실적으로 좀 생각해. 꿈같은 소리 하지 말고.”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20대 때도 그랬고, 30대인 현재도 듣고 있는 소리다. 10대 때도 그랬다.


“고등학생이면 수능 준비나 할 것이지, 입시에 도움도 안 되는 이딴 책을 자율학습 시간에 왜 읽고 있어? 교무실로 따라와.”

“무조건 대학은 4년제 가야지. 네가 대학을 잘 가야 후배들이 따라 보고 배울 거 아니니?”

”희망 대학 어디 썼어? 그 대학 나와서 뭐 할 건데? 취업 잘 안 될 테니 다른 곳에 원서 써. “


대학에 그다지 관심 없던 나는 강제 야간 자율학습에 발을 묶이며 하고 싶지도 않은 수능공부를 억지로 해야만 했다. 그나마 관심 분야였던 문학이나 외국어 공부를 하다가 진도가 막히면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를 꺼내 몇 장 읽지 않았을 때쯤 등짝을 때리는 선생님의 손바닥에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네가 지금 그런 거 볼 때야? 고3이면 고3답게 행동해. 쓸데없는 이런 책에 관심 가지지 말고 영어 단어 한 개라도 더 외워. “


지금 생각해 봐도 어린 나에게 가슴에 비수가 되는 말들이었다. 쓸데없을지 있을지 그걸 왜 남이 판단하는 걸까.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되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왜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걸까. 마땅히 4년제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본인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취업자리도 내 선택이 아닌 남들의 평가 기준에 맞춰 원서를 써내야 하는 그 모든 상황들에 신물이 났다. 도대체 이런 기준은 누가 만들어 놓은 걸까.






이 바퀴의 테를 잡고 있으면 반드시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가 있다.
하지만 굴대를 잡고 있으면 늘 같은 자리, 중심에 있게 된다.

- 조셉 캠벨 <운명의 수레바퀴>


사계절이 돌고 돌듯이 인생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매일이 좋을 수 없으며 매일이 나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대부분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나에게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것 같고 어쩌다 좋은 일이 생겨도 이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의심했다. 그러면서 점차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인생의 방향을 잃고 결국 나를 잃어갔다.


그러나 이제 나는 거센 바람이 몰아쳐 흔들릴지언정 결코 부러지거나 스스로 꺾이지 않으리라.


‘진짜 나’를 알아가면서 ‘나’를 믿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남들이 뭐라 하든 간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남에게 도움이 될지언정 나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적당히 걸러 들을 줄 아는 필터도 생겼다. 이 모든 것이 ‘진짜 나’를 알기 위해 고민하며 수많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 과정의 결과물이다.


“병원 관두고 지금 뭐 하세요?”

“간호사 다시 안 할 거야? “

“이럴 거면 쓸데없이 간호사 면허는 왜 딴 거야?”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더라도 이제는 흘려 넘길 줄 안다. 그 언젠가 다시 나 스스로 의료 현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때가 오면 그때는 나의 의지로 임상에 복귀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타인의 권유와 나의 의지에 반하는 이유에서는 임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또 억지로 그렇게 할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직업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를 살아도 ‘진짜 나’로 살아가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남들에게 번듯해 보이는 직장인으로 직급 뒤에 숨은 불행한 사회인이 아니라 조금 모자라고 초라해 보일지언정 행복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더 소중한 삶의 일부임을 이제는 안다.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네이이라 와히드 / <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나를 이끈다고 믿는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나’를 찾아 길을 떠난 사람에게는 분명 목적지에 도착하는 결과가 찾아올 것이다. 그 여정에서 때로는 기쁨도 발견하고 슬픔을 맞이할 때도 있겠지만 어차피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만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


’진짜 나‘를 알아가는 그 모든 여정을 스스로 응원하고 축복하며 오늘 하루 한걸음, 또 한걸음 나아간다. 적당한 날에 모든 것이 올바른 방법으로 나를 찾아오게 될 것임을 믿는다. 또한 내가 걷는 텅 빈 이 길이 훗날 길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임을 확신한다. 오늘도 고독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나를 응원하며 스스로에게 기특하다는 말과 잘 컸다는 말, 수고했다는 말을 함께 남기고 싶다.


“넌 정말 멋진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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