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다시 만나러 꼭 돌아와 줘- 달땡, 키움, 그린, 나래
그린나래는 보담이의 태어나지 못한 아가들이다. 사실 임신 사실도, 유산 사실도 병원에서 통지받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보담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하혈을 하였고, 병원에 데려갔을 때 신장의 문제라고 해서 예약 잡아 두었던 중성화 수술이 밀렸고, 신장약을 먹고 하혈이 멈추고 건강과 컨디션을 되찾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선홍색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장염이 재발한 줄 알았다.
나는 보담이를 여섯 살짜리 벵갈이라 분양자분에게 들었으나, 병원에서 치아 상태를 보건대 적어도 열 살은 넘었을 것이라 해서, 중성화 수술보다 먼저 정기검진을 먼저 시켰다. 검사 결과 눈에 띄는 병은 없었으나, 워낙 말라 있었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기에, 해랑이처럼 선뜻 오자마자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나는 마취 회복이 깨지 않아서 키움이를 잃었고, 노령묘의 수술이었기에 큰 3차 병원에서 해주고 싶어서 예약을 걸어두고 돌아왔다. 그 사이 보담이는 잘 먹고 살이 뽀얗게 올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달땡이의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나는 정신적으로 경황이 없었다. 전염병도 아닌데 그해 아이들이 크고 작은 병으로 연속적으로 아팠고, 무엇보다 장남인 달땡이의 투병 간호로 여유가 없어서 한 번 수술 예약일을 미뤘고, 두 번째 예약은 보담이의 신장 질환으로 미뤄졌다. 약을 먹여서 병을 잡았다고 생각하며 달땡이를 집중적으로 간호했으나, 심장과 신장이 다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탓에 달땡이는 작년 10월 초 고양이 별로 떠났고, 한동안 괜찮던 보담이가 다시 하혈을 했다. 하혈 자국이 이전의 신장염 때보다 훨씬 더 심하고 잦았기에, 나는 보담이를 자주 가는 2차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끝에, 보담이가 잦은 임신과 출산 탓에 자궁이 늘어져 있었는데, 아이를 임신하면서였는지, 유산하면서였는지 신장과 자궁이 꼬여서 시급하게 중성화가 필요하겠다고 말이다. 달땡이 간호하느라 경황이 없기도 했지만, 보담이의 임신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온이는 아직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보담이가 가온이를 워낙 냉랭하게 독립시켰던 탓에, 이후로는 가온이 쪽에서 쭈욱 보담이를 무서워하여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까닭이다. 둘이 붙어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임신이라니. 심지어 유산이라니. 두 마리나. 하지만 충격을 받을 새도 없었다. 사산된 태아를 품고 있는 건 보담이에게 너무 위험한 일이었고, 우리는 위태로운 보담이를 살리기 위해 당장 수술 동의서를 쓰고 수술에 들어갔다. 노령묘였던 키움이를 허망하게 잃었기에, 나는 이번엔 보담이의 수술 내내 병원에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호흡마취 상태였던 보담이는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 내 딸. 집에 가면 엄마랑 같이 자자. 이제는 점점 좋아질 거야. 쉬고 있으면 퇴근하고 데리러 올게. 보담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그 밤 나는 자발적으로 내 침대에 올라온 보담이는 내 머리맡에서 잠들었다. 중성화 수술복을 아주 참하게 잘 입고 다니던 라온이와 달리 보담이는 넥칼라도 수술복도 엄청 싫어해서 수술 자리를 핥지 못하게 케어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병원으로부터 보담이의 자궁과 아마도 그 속에 있을 아가를 받았다. 냉동포장 상태로 냉동고에 넣어두었던 걸 그 주 주말에 남편의 땅에 고이 묻어주었다. 태어나지도 못한 아가들, 그린나래(두 마리라 그린, 나래, 라고 지었다). 이번엔 몰라서 못 지켜 주었지만, 다음에 다시 우리 집에 오거든 그땐 요람에서 고양이별 갈 때까지 지켜주겠노라고. 그러니 꼭 할머니에게 돌아와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한 뒤에 태어나지도 못한 아가들을 양지바른 곳에 마른 꽃과 편지와 함께 묻어주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키움이 무덤에 가서 어린 조카들이 갔으니 잘 부탁한다고 말해주고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키움이, 림프종 판정 이후 투병 과정에서 심장이 망가지고, 원래부터 안 좋았던 신장이 심장약을 먹는 동안 악화되어 나중엔 뱃속의 소변을 배출하지 못하여 주사기로 주기적으로 빼줘야 할 정도로 힘겨운 투병생활 끝에 우리 품에서 별이 된 달땡이, 태어나지도 모른 채 날아가버린 두 마리의 아기냥 그린.나래까지 네 마리의 고양이를 잃었다. 고양이를, 자식을 앞세우는 건 늘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아기들을 잃을 때마다 나는 꼭 다시 내게 돌아와 달라고, 내가 너희를 알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그런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을까. 처음 초음파를 봤을 때만 해도 두 마리라고 했던 새론이의 아기냥이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네 마리로 늘어나 있었을 때, 나는 어떤 계시 같은 게 아닐까 어렴풋 생각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이 다시 내게로 돌아와 준 달땡이, 키움이, 그린, 나래가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내게는 네 마리를 잃어버리고 새로 얻은 네 마리의 도담, 소담, 큰솔, 다온이가 너무나 소중하다. 그 아이들이 진짜로 달땡이, 키움이, 그린, 나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더 주지 못한 사랑을 이 아이들에게 갚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키우고 있다. 너무 사랑스러운 내 아기들, 언제나 너희가 나와 인연이 닿았음에 감사한다. 고마워. 그리고 늘, 너무나, 그립다.
이렇게 열일곱 마리, 아니 스물한 마리의 고양이를 만난 이야기를 마칩니다. 연재 브런치북이라 이대로 끝내기는 애매해서 후일담 격으로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좋아요 눌러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저는 소통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