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작가님은 이곳을 두 달 전에 처음 아셨다고 하신다.
대로변도 아닌 이렇게 숨겨진 곳에 아트북 전문 서점이라니.. 그래서 난
‘전 더 좋은 것 같아요. 너무 거창하지도 않고 뭔가 더 특별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요’
‘아! 그러네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또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느낌의 대화)
‘이 사진은 서울에서 찍으신 거예요?’
‘(사장님) 서울에서 거의 찍으시고 일본, 대만 등에서도 찍으셨어요’
‘(작가님) 제가 2017년부터 찍어 온 사진들이에요’
‘책등은 어떻게 이렇게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너무 멋져요’
‘(작가님)아! ㅎㅎ 사실 의도한 건 아니었고 만들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사진 재질도 일반적인 사진에 쓰는 재질이 아니라 (…)을 사용해서 만들었어요. 일본에서 쓰는
좋은 재질이에요^^’
‘네, 너무 멋지고 매끌 거리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작가님) 저 북토 크도 할 예정이에요’ 먼저 이런 일정을 얘기해 주시는 게 신기하고 뭔가 특별대우를 받는 것 같았다.
‘아, 정말요? 너무 아쉬워요. 제가 서울에 살지 않아서… 오늘 마침 다른 일정이 있어 일부러 이곳을 찾아왔거든요’ (8월 17일 일요일에 열렸던 북토크) 정말 가고 싶었다. 사진을 보니 궁금해진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작가님의 다음 작품 때 뵙길 기대해 봐야겠다.
‘기회는 지금이다’라며 오래오래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아 사장님께 작가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십사 요청드렸다. 그러곤 다시 작가님께 양해를 구하고(너무 들이댄 걸까?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부끄럽다) 셀카 모드로 작가님과 두 번이나 사진을 찍었다.
흔쾌히 부드럽고 밝은 미소로 폰 카메라를 응시해 주셨다. 내 사진앨범 속 작가님과의 투샷!
사장님 시점 앵글 속에선 허리를 곧게 펴시고 환하게 웃고 계신 천진난만한 모습. 나와의 셀카모드에선 3초 모드에 당황하셨는지 약간 어색한 미소? 속 그냥 이웃집 청년으로 보이는 친숙한 매력을 뽐내주셨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져갈 책에 사인도 부탁드렸다.
‘(작가님)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아.. 저 ‘윤’이라고 해주세요’
‘(작가님) 영어로 할까요? 아니면…’
‘영어 스펠링으로 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yoon 으로요’
‘(작가님)어! 제 본명이 ‘이윤청인데 가운데만 빼고 ‘이청’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와아 정말요? 전 앞 뒤 다 빼고 그냥 ‘윤’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ㅎㅎ
이런 운명이라면(어쨌거나 이름에서 두 개의 음이 같다는 건 운명) 거스를 수 없지 않은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때를 회상하고 있자니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젠 진짜 가야 할 시간
작가님은 사인을 마치시고 ‘쉬운 결정이 아니셨을 텐데 감사드립니다’라고 조심히 말을 건네어주신다.
사실 사진집의 가격을 물어볼 타이밍을 놓쳤었다. 그렇다고 지금 여쭤보기도 애매한 일.
난 너무나 반가웠고 감사드린다는 대답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레 눈인사로 사장님께 결제의 의지를 전달했다.
카운터 천장에 살랑거리는 종이 엽서들을 사진에 담고 그때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 퀄리티의 사진집이면 이 가격의 가치로 마땅하다)
다음날 침대에 사진집을 가만히 펼쳐놓고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조심스레 넘기며 작가님의 열정과 혼이 담긴 세월의 가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이내 벅차올랐다. 그러면서 대학교 거의 첫 수업으로 들었던 사진 기초이론과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했던 추억들이 짧게나마 스쳐 지나갔다. 1학년때 동기들과 사진 출사를 나가며 본인들만의 개똥철학으로 나름 필름과 디지털카메라로 꽤나 찍었던 경험들을 어필하며 너스레를 떨던 우리들. 그때도 좋아했었던 흑백의 매력.
이제야 제대로 된 사진집을 만나다니.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사진집을 보며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전 영상편집 전공입니다)
사진을 보다 보니 아! 난 인물사진을 좋아하는구나 ‘ 라는걸 새삼 느꼈다. 풍경이나 건물 자연을 담은 사진도 물론 좋아하지만 결국 내 맘을 사로잡는 건 인물사진이다. 멋진 배경이지만 그 안에 인물의 피사체가 들어가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처음에 추천해 주신 고양이 사진도 좋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 분위기에서 나오는 호기심? 에 난 더 매료된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사람이 고양이의 눈을 읽을 수는 없으니)
이상하게 사진집을 보며 난 소리 내어 웃고 있다.
비둘기의 시선과 멍 때림? 이 너무 귀엽다.
고유의 색이 없는 흑백사진.
오로지 빛과 음영 원근감으로만 사진의 분위기를 표현한다.
하지만 이 무채색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계절은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파악할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표정과 행동으로 예측할 수 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그 장소의 사람들의 비둘기들의 사물들의 이야기를 읽어내야 한다. 참 흥미롭다.
한 장 한 장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빨려 들어온다.
굳이 설명되어 있지 않아도 내가 생각하고픈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우리 눈의 색을 구별하는 세포들을 깨워 지루함 따윈 잊게 만들어 주신다.
핏기 없는 차가운 파란색 속 배낭을 앞으로 메고 한 손은 지하철 안전바를 잡고 한 손으론 핸드폰을 보고 있는 한 여성.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벽의 어둠과 그 아래로 문이 열려있는 화장실 내부의 밝음 대조적 명암.
그리곤 빨간 조명.
하얀 우산을 들고 노란 모자를 쓴 여성이 노란 커피숍 간판을 통과하고 뒷 배경엔 '쓰레기를 버리면 과태료 100만 원을 부과'한다는 전봇대에 걸린 노란 현수막.
모두 내가 좋아하는 색이 있는 사진들이다.
(난 사장님 얼굴과 미소에 영업당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의 사진에 대한 진심과 사랑이 온전히 내게 전해진 것이었다. 가격을 물어보지 않고 구입하기로 결정하는 서슴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과 사진
나의 짧은 소견으로 그림은 온전히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과 터치로 완성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진은 주변 건물이나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구도를 잡고 의도를 맞춰야 하기에 사진작가의 개입은 그림의 그것보다 적다고 생각한다. 주변 건축물들과 지형 하늘과 밤과 낮의 기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로 그들이 거기에 있는 그대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유리 눈동자_이 청>
1. 한 프레임 안에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두 페이지에 걸쳐진 한 장의 사진을 읽어 본다.
어느 일본의 지하철역 입구.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맨 앞에 있는 여성의 긴 패딩점퍼와 목에 두른 두툼한 목도리를 보니 겨울이다.
내려가는 와중에 시선은 위를 향하고 있다.
두 발을 아래로 내딛으며 다소곳이 손을 모은. 안경렌즈 속 그녀의 눈동자는 어디를 왜? 향하고 있는 걸까?
그녀 뒤에 어느 중년의 남자. 출근길인지 퇴근길인지 모를 시간.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보며 손은 주머니에 푹 담겨있다.
바로 옆 중년의 여성, 그리고 바로 뒤에 남자는 아직 초입이라 그런지 시선은 앞쪽을 향하고 있다.
저 멀리 왼쪽 아래에 보이는 남자의 현수막이 눈에 띈다. 가수의 공연을 홍보하는 것 같다. 연말공연일까?
2. 보자마자 5초 정지된 사진이 하나 있다.
어느 호텔방. 침대에 걸터앉아 창가 쪽으로 몸을 세운 남성의 사진.
침대 옆 협탁 조명이 켜진 듯 보이고 넓은 창을 응시했던 듯하다. 그는 상의를 갈아입으려는 듯 벗어둔 옷과 갈아입을 옷이 양 옆에 놓여 있다.
그의 움직임은 과하지 않고 탈의된 뒷모습의 몸은 다부지고 단단해 보인다.
작가님과 친분이 있으신 분이 아닐까?
사진의 구조는 두 페이지로 큰 창 밖 너머에 높은 빌딩 그리고 앵글 정중앙에 위치한 그의 어깻죽지 뼈대.
두 피사체 모두 견고함을 부각해주고 있는 듯하다.
진부해 보일 수 있지만 새롭다.
궁금하다다. 누구실까? (북토크가 또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네이버에서 찾은 피사체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청 작가님의 인스타그램도 팔로우했다.
친절하신 작가님은 바로 내 인스타를 팔로우해 주셨고 피드글에 좋아요도 눌러주셨다.(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지난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치를 발견해서 많이 설레었고 앞으로도 작가님의 사진 여정을 응원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