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쯤은
그동안 여기저기서 주워 들어 읽고 싶었던 책 목록을 들고 내 눈으로 직접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책을 고르러 중고서점이나 독립서점에 가고 싶다.
물론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고 약간의 할인도 가능하지만 굳이 힘들게 발품 팔아 그곳까지 찾아가서 내 품으로 온 운명의 책들은 더 소중히 여기게 될 테니까 말이다.
요즘은 클릭 한 번으로 다음날 바로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받는 세상이지만 빠른 만큼 나만의 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뭔가 조금 모순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도 직접 서점에 가서 맘에 드는 책을 구입하고 또 서점의 분위기와 그 공간에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
작년 12월.
옆 도시에 있는 한 독립서점에 다녀온 일이 있다.
인스타 알고리즘으로 알게 된 이름도 귀여운 버찌책방. 겨울이었고 추웠지만 일부러 버스를 타고 갔다.
지도를 보니 도보로 25분 정도 걸어야하는 거리에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서점에 도착하기 전까지 '요기라도 해볼까’ 생각하던 차에 내 레이더망에 딱 걸린 씨앗 호떡가게.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상점이 꽤 컸고 떡볶이와 어묵이 뜨끈한 국물 속에서 '어이! 나도 한번 잡숴봐'라며 유혹하고 있었다. 난 걸어가면서 먹으려 했으니 종이컵에 반 구겨 넣은 호떡이 딱 안성맞춤이다. 차가운 공기 속 내 두 손엔 따뜻한 호떡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은가!
방금 튀겨서 씨앗들과 설탕이 뒤섞여 끈적하게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시럽을 호호불어 야금야금 깨물어 먹으며 여유 있게 동네를 관찰하며 걷는다. 모르는 길을 걸어가는 설렘이 주는 매력 또한 참 좋았다.
만약 가족들과 이곳을 찾아오기로 했다면 무조건 차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런 나만의 특별한 발걸음을 남기는 일은 소중하다.
살짝 외진 골목길 끝.
진한 빨간 배경에 검정폰트로 ‘book’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여기구나.(b와 k사이의 oo은 버찌모양이다)
창 밖에서 보니 기다란 테이블이 있는 공간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로 북적북적이며 북토크?가 한창이었다.
혹시 방해가 될까 조심스레 책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어쩐지 낯설어하며 두리번거리는 나를 반겨줄 것 만 같던 책방의 사장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자 하며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구경했다. 내가 아는 제목의 책들을 보니 반가웠고 책 표지가 눈에 띄어 내 손에 이끌려 나온 책들은 더욱 자세히 살펴보았다. 특별히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서만 판매하는 문진 때문이다. 책을 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펜으로 스케치한 듯한 일러스트 그림에 끌려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직접 보니 문진의 묵직함과 그림에 확실히 마음을 빼앗기는 중이었다.
그렇게 책방 안 책들 그리고 화분과 굿즈들까지 한참을 탐색하고 테이블에 앉아 책도 보며 언제나 오실까 사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직접 내려주시는 원두커피를 맛볼 수도 있다고 해서이기도 하다. 책 한 권 구입해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조금 읽고 와야겠단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아, 이젠 그냥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옆에서 북토크에 참여하시다가 잠시 화장실에 가시던 한 분이 나를 보며 말씀해 주신다.
"아 오늘 사장님이 일이 있으셔서 조금 늦게 오실 것 같아요"
"아! 그런가요? 얼마나 늦으실까요?"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고 병원에 가셨거든요. 아마 오후 늦게나 오시지 않을까요?"
"아.. 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이가 아프다니 책방을 두고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셨을 사장님. 이 순간은 책방지기가 아니라 그냥 보통의 엄마가 된다. 그리고 사장님은 작가님이시기도 하다.
책방 이름을 제목에 인용한 '버찌책방은 다 계획이 있지'의 저자이시기도 한 것이다. 크 멋지시다.
책방에 필사되어 있는 글씨도 멋들어지시게 쓰시는 작가사장님. 못 뵙고 가니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미련이 조금 남아 책방 안을 조금 더 둘러본 후 아쉬움 한가득 안은 채 그곳을 나왔다.
알고 보니 이 작은 책방에 작가님들이 찾아와 북토크를 여는 장소이기도 했다. 다음엔 차를 이용해서 작가님과의 만남도 가질 수 있는 행운을 잡아야겠단 생각도 했다.
책방에서 내려주시는 그윽한 커피, 나만의 책 한 권, 갖고 싶던 문진까지 누릴 수는 없었지만 다음에 또 갈 기회가 생긴 거라 생각하고 나중을 기약해 본다.
이제 벌써 9월.
좀 더 쌀쌀해지면 다시 한번 찾아가 보자 다짐해 본다.
* 대전 반석로142번길 15-38 1층 버찌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