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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Sep 23. 2024

 악동 둘째 딸 학교 입학을 하다.

일곱 살에 학교를 갔다. 학교 가서 배운 게 뭔지 기억이 안 난다

일곱 살이 되던 때에 학교에 들어갔다.

성인이 돼서 엄마한테 물어보니 빠른 생이라서 일찍 학교에 보냈고, 며칠 사이로 한 살 더 먹으면 억울하다고 일찍 학교에 보냈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빠른 생 들이 많았었다. 지금도 어디 가면 빠른 00년생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일곱 살. 여전히 강원도 태백.

학교를 가라고 한다. 며칠 뒤에 학교에 갈 거라고 한다.

언니처럼 말이다.

언니를 항상 샘을 냈지만 동경해 왔던 것 같다.

언니가 하는 게 다 멋있어 보였고 다 좋아 보였다. 

3월이 되면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몇 밤만 자면 갈 수 있다고 말이다.


언니랑 같이 학교 다녀야 해."00아 동생 잘 데리고 다녀"라고 엄마가 언니한테 신신당부한 것으로 기억한다.

언니는 인상을 한껏 지푸린다. 천방지축 동생을 데리고 다니려니 머리가 아픈가 보다.

어릴 때는 몰랐다. 언니가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구나 라는 거를~


아무튼 나는 일곱 살이고 학교를 간다고 한다. 한껏 들떴다.

다른 아이들 보니 분홍색깔 책가방에 분홍색깔 신발주머니랑 이거 저거 막 들고 다닌다.

항상 그게 궁금하고 부러웠다. 공부고 나발이고 그런 거는 잘 모르겠다.


말한 것처럼 어릴 때는 그저 나만 사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내 위주로 생각했고 일곱 살이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유독 심했던 건 인정한다. 


학교를 가기 위한 준비를 엄마가 한다.

책가방을 사달라고 때를 썼다. 엄마가 언니 책가방을 사준다. 언니가 쓰던 거를 나한테 준다.

언니는 세거고 나는 헌 거다. 모든 게 다 언니 거다. 내 거는 없고 언니 거를 나한테 준다.

옷도 언니옷을 물려 입었다.


"왜 언니만 사주고 나는 맨날 안 사줘?" 

울음이 터져버렸다.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다. 콧물 눈물 다 범벅이 돼서 때를 한참 쓰다 보니 배가 고프다.

한참을 울었고 엄마는 "밥 먹을 시간이니까 그만해"라고 하고는 밥을 차리러 가신다.

당연히 난 안 먹는다. 열받아서 안 먹는다. 배는 고픈데 안 먹는다.

그렇게 밤 11시까지 울었던 기억이다.

한참 울고 있어도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한다. 

안 먹히나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말한다. "어디 가니 이 늦은 시간에?"

엄마를 째려보면서 말했다. "배고파서 밥 먹고 또 울 거야!"

지금생각해도 너무 귀여운 발상이고 너무 어이가 없는 일곱 살의 여자아이. 골치 아프다.

다 커서도 밥을 제때 안 먹으면 엄마는 과감하게 밥상을 치워 버린다. 그래서 커서도 생존을 위해서 엄마가 아침밥을 차리면 무조건 먹어야 하는 집의 룰이 있었다.

엄마 아빠도 그랬나 보다. 그때 엄마랑 아빠가 한참이나 웃었다.

웃는 엄마 아빠가 너무 미웠던 기억이다.

밥을 먹으니 배가 부르다 잠이 온다. 밥 먹고 2차전을 해야 하는데 그럴 에너지가 없다.

자려고 누웠다. 엄마가 말한다. "왜 또 울지! 밥 먹고 나서 운다며?"라고 말한다.

대꾸하기 싫다. 말 안 했던 기억이다. 휙 돌아서 누워서 잤다.


아침이 밝았고 난 그렇게 학교를 가게 되었다.

학교에 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뭐가 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때 다녔던 학교는 동전? 동점? 국민학교였다. 집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마을로 한참 내려가서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갔던 기억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엄청 많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매우 분주하다.

입학식이었던 것이다. 몇 학년 몇 반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해도 난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미리 조금은 집에서 책도 읽고 유치원도 가서 공부도 하고 했던 것 같다. 난 아니다. 그래서 그냥 학교 가는 거는 도시락을 먹기 위한 하나의 일상탈출이었다.


학교선생님들이 쭉 있다.

학교에 갔던 기억은 있는데 뭘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잠자고 운동장에서 놀다가 배고프면 도시락 까서 먹고 또 자다가 종 치면 집에 왔다.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항상 언니를 기다렸고 언니는 기다리는 나를 항상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데려왔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놀던 거 왜에는 특별한 이벤트 빼고 크게 기억나는 건 없다. 공부도 똑같다.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다. 그림 그리고 운동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1학년이다.

일곱 살의 1학년 천방지축 꼬맹이 여자가 이.

자신만만했던 기억이다. 집이 가난했어도 난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았다.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동생도 있고 언니도 있고 이모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집에 가는 길 사건이 있었다,

이사 건 만은 잊을 수가 없다.

학교를 가려면 나무다리를 건너고 나무다리를 건너서 계단을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갔다

그러면 올 때도 똑같이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나무다리계단 앞에 내려서 계단을 올라고 나무다리를 건너서 걸어서 집으로 가야 한다.

집에 가자고 언니가 울어댄다. 이날 나는 왠지 모를 반항심에 학교에서 계속 놀이터에서 놀았다.

윗동네 잘생긴 오빠랑 그 집에 언니 친구랑 나랑 우리 언니랑 그렇게 운동장에서 놀았던 기억이다.


운동장에서 한참을 놀고 집에 안 가고 있으니 착한 우리 언니는 안절부절이다. 

엄마가 항상 언니한테 "동생 잘 지켜"라고 말했다. 언니는 날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고집을 부리니 환장할 노릇이었을 거다.

언니를 골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늦게 가면 언니도 혼나고 나도 혼나고 공평하니까"

철없는 생각이지만 그땐 그랬다. 뭔가 모르게 언니 거만 다 좋은 거고 내 거는 다 내 거가 아닌 느낌이랄까.


뉘엿뉘엿 해가 지려고 한다. 언니가 한참을 집에 가자고 조르며 운다.

"그래 가자" 이쯤이면 되겠지 싶었다. 사실 더 어두워지면 강원도 산꼴에서는 답이 없다는 걸 그때 알았던 거다.

그 정도 바보는 아니니까.


자. 나무다리계단 앞에 도착.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아주 열심히 종종걸음으로 건넜던 기억이다.

앞에 나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오빠 2명이 길을 가로막는다.

맥가이버칼을 휙휙 휘두르면서 협박했다.

"야. 어디 가냐?"라고 말을 붙였었다. 윗동네 잘생긴 오빠가 말한다.

"비켜. 우리 집에 가는 길이야" 그 오빠들은 윗동네 오빠보다 더 키가 컸던 것 같다.

"어딜 가려고~ 돈 있는 거 다 내놔"라고 말을 한다.

윗동네 오빠가 울음을 터트린다. 언니도 운다. 언니 친구도 운다.

다들 울고불고 난리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언니 오빠 다 내 뒤에 숨어!"라고 말했다.

순간 다들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눈물 콧물 범벅들이 되었다.

"너 뭐야?"라고 그 오빠들에게 따저물었다.

어이가 없을 노릇인가 보다. "야 쪼그만 게 어디 나서?" "비켜"

라고 나를 밀친다. 넘어졌다. 넘어졌는데 하나도 안 아팠다.

또 무슨 영웅심리가 생겼는지 소리 질렀다.

"야. 이 나쁜 멍청이! 우리 돈 없어! 우리 다 가난하거든?"이라고 말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쪼그만 게 말 한번 잘하네?"라고 큰오빠 두명중 한 명이 말한다.

"나 안 쪼그맣거든? 몇 밤만 더 자면 너보다 클걸?" 이렇게 말해버렸다.

"아. 나 어이없어서.. 야 꼬맹이 넌 빠져!"라고 또 밀친다.


언니가 벌벌 떨면서 귓속말로 말한다.

"돈 있는 거 모아서 다 주자""저 오빠들 칼 들고 있어..." 아앙~~~ 하면서 운다.

"돈 없어! 기다려봐!" 하고는 그 오빠들 앞으로 혼자서 성큼 다가섰다.

어려서 죽는 게 뭔지 칼로 찌르는 게 뭔지 찔리는 게 뭔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 같다.

배움이 짧았던 터라 용감함만 투철했던가...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아무튼 그렇게 오빠들 앞에 성큼 다가서서 크게 소리쳤다.

"칼 줘! 그럼 돈 줄게!" 

"안 주면 어쩔 건데?" 더듬더듬 그 오빠들이 말한다.

"안 주면??? 잠시만 안 주면 어쩔 수 없지!"라고 말했다.

또 한바탕 비웃음 거리가 된 거 같다. 내 뒤에 세명은 책가방을 뒤지느라 바쁘다.

"돈 없어! 아 몰라! 오빠들이 하고 싶은데로 해!"

"그런데 있잖아. 오빠들 뒤에 귀신 있어! 나 집에 안 가면 귀신들이 오빠들한테 붙어서 혼내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난 귀신을 보는 눈은 없다. 근데 그때 유일하게 읽던 책이 무서운 귀신 이야기 책이었다.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신책을 좋아했다.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인데. 그 오빠들이 말했다.

"야 꼬맹이 헛소리하지 마! 무슨 귀신이 있어?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위험천만하다. 그 오빠가 내 목 앞까지 맥가이버 칼을 들이댄다.

"확! 그냥!" 하고 말이다.

"뭐 어쩔 건데? 난 분명히 말했어! 바보 멍청아!"라고 배짱을 부렸다.

그리고는 그 오빠의 발을 엄청 세게 밟았다. 

"억!" 하는 소리가 나고 칼이 땅으로 떨어졌다.

잽싸게 칼을 낚아챘다. 전세가 역전된 거다.

"이런 거 울 엄마가 위험하다고 했어!" 하고는 휙휙 그 오빠들한테 휘저었다.

그러고는 언니한테 칼을 줬다. 언니는 칼을 받자마자 힘껏 윗산으로 칼을 던졌다.


"이제 칼 없어! 그리고 우리도 돈 없어! 어쩔 거야?" "우리 집에 가야 되니깐 비켜 멍청아"

라고 말했다. 그중에 한 명 오빠는 어이가 없어서 쳐다만 보고 있고 남은 협박하는 오빠 한 명과 몸싸움이 생겼다. 손톱으로 할퀴고 책가방으로 때리고 난리였다. 

얼굴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내 얼굴에서 말이다. 오른쪽 빰에 상처가 났다. 깊이 긁힌 터라 아직도 자세히 보면 상처가 있다.

피가 나든지 말든지 계속 싸워댔다. 

그러다가 그 오빠들이 한꺼번에 덤빈다.

"메롱~ 잡아보든지! 바보들! "" 언니 오빠 빨리 도망가자!" 소리를 힘껏 질렀다.

후다다닥 다들 집으로 뛰어갔다달리기는 정말 잘했다 어릴 때부터 말이다.

그 오빠들이 쫓아오다가 포기한 것 같다. 발소리가 잠잠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 언니는 울면서 뛰어온다. 

"달리기는 내가 언니보다 잘하지!"라고 말했다. 언니는 어이가 없나 보다.

언니랑 나는 세 살 차이이다. 

집에 도착했다. 무사히 골인!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가방을 방안에 던져두고는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또 어디서 쌈박질을 했냐면서 나를 나무란다.

"엄마 다리 위에 칼 든 오빠 두 명이 있는데 내가 물리치고 오는 길이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언니는 또 운다.

????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난 방금 악당을 물리쳤는데, 언니는 울고 엄마는 한숨만 쉬고 나를 혼낸다.

이것도 그때는 화가 났다. 어릴 때 참 화가 많았던 것 같다.


저녁이 돼서 아빠가 왔다.

내 말은 다 들어주는 아빠가 왔다.

"아빠 아빠 내가 오늘 다리 위에서 윗집 오빠랑 언니랑 울 언니랑 다 지켰어!"

"나쁜 오빠들이 맥가이버 들고 막 돈 달라고 했어!"

"근데 우리 집 가난하니깐 돈 없잖아 그래서 가난해서 돈 없다고 막 소리치고 집에 왔어"

아빠표정이 어둡다. 

왜지? 이게 아닌데.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빠가 나를 붙잡고 말한다.

"앞으로 그런 일 있으면 절대로 나서지 말고 싸우지도 마 알겠지?"

얼떨결에 물었다.

"왜?"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우리 딸들 없으면 아빠가 힘드니까"라고 말한다.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얼떨결에 "알았어 아빠"라고 약속을 했다.


아빠가 상처 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너무 다정한 손길이었고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고 우리 작은 딸랑구 이쁜 얼굴에 상처 나면 안 되는데"

엄마가 저녁에 빨간약을 발라줬다. 그날부터 매일매일 얼굴에 약을 발라줬고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다.


나에게는 영광의 상처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무모한가.

그때 아마 내가 우리 집 가난하다고 소리친 게 아빠가 부끄러웠을까? 내가 다친 건 속상했을 거다.

하지만 가슴이 미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 한다. 


일곱 살의 나의 첫 입학식과 학교생활의 에프소드는 또 한 번 강력했다. 

그 이후 윗집 잘생긴 오빠는 나를 무척 귀여워했다.

맛있는 과자도 사주고 엄마 아빠가 집에 없으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놀고 가고 했다. 


일곱 살의 나는 여전히 천방지축이었다.

그 이후 나는 강원도 태백의 어느 동네에서 스타가 되었다. 

엄마 아빠는 제발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놀라고 했다.

집을 나가서 놀려고 하면 동생을 스파이처럼 붙였다. 일곱 살을 다이내믹하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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