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아버지와 단판을 지어야 한다. 그렇게 여섯 살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신났다.
엄마 아빠는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자주 혼자 울었고 아빠는 항상 어두웠다.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고작 여섯 살이었고 재미있는 일들만 가득했다.
여섯 살 매일 메일 묻는다. 학교에 다녀온 언니한테 찰싹 달라붙어서 묻는다.
"언니 오늘은 엄마가 도시락 반찬 뭐 싸줬어?"
언니는 철이 일찍 들었다. 나이에 비해 많이 성숙했었다.
언니가 대답했다.
"그냥 아침에 먹는 거 싸줬겠지 뭐 그런 걸 물어봐"라고 퉁명스럽다.
분명히 언니한테는 더 맛있는 걸 싸줬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땐 그랬다.
어릴 때 꽤나 까탈스러웠다.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면 맘에 안 든다. 그래서 항상 아빠가 내 머리를 묶어주곤 했다.
아빠가 묶어주는 머리는 삐뚤어도 마음에 든다.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면 머리를 풀고 다시 아빠한테 가서 묶어달라고 하곤 했다.
아빠는 다 해주니까.
엄마는 맨날 잔소리만 한다.
지금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엄마가 나만 보면 한숨이다.
언니한테는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냐. 어쩌고 저쩌고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남동생은 어릴 적부터 유난히 사랑을 많이 받는 듯하다.
남동생은 3대 독자이다. 이때는 그런 걸 많이 따졌다. 손이 귀하다고 지금은 표현을 하나?
아무튼 그래서 난 중간에 둘째인 것이 매우 불만이었다.
셈도 많고, 눈치는 빠르고 , 말은 안 듣고 천방지축.
이게 여섯 살의 나였다.
남동생이 뭐라도 나보다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거는 못 본다. 내가 누나니까 당연히 내가 하나라도 더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언니는 언니라고 하나 더 주고 남동생은 3대 독자라고 하나 더 주고 나는 맨날 중간이다.
이때부터 더 눈치가 빨랐다. 그래서 항상 남동생한테 뭐라도 하나 더 줄 때는 엄마가 몰래 주곤 했다.
이때 내가 느낀 감정은 억울하다였다.
언니는 학교 가느라 바쁘고, 남동생은 유치원 가느라 바쁘다. 나는 유치원도 안 보내준다.
가도 공부도 안 하고 애들이나 때릴 거라서 안 보낸다고 한다.
유치원을 보내달라고 떼는 안 썼다. 별로 나도 가고 싶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대신 "유치원 사진 모자 쓰고 찍는 거 나도 해줘"라고 때를 썼던 기억은 있다.
그게 멋져 보였나 보다. 그런 여섯 살을 신나게 보내고 있었고, 매일매일 같은 말만 물었다.
"아빠 크리스마스되려면 며칠 남았어?" 이 말을 매일 묻는다.
크리스마스가 기대됐다. 작년에는 분명히 내가 받고 싶다는 인형을 못 받았고 과자만 한 다발받았다.
그래서 아빠한테 말했었다.
"아빠. 아빠. 나 다음 크리스마스 때에 만약에 내가 잠들면 산타할아버지한테 꼭 말해줘 나 인형 받고 싶다고"
라고 말한 기억이 있고 아빠가 "산타할아버지가 00이 한테 선물 안 줄걸?"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왜? 나만 안 주는 거야 다 안 주는 거야?"라고 물었고 " 글쎄 아빠도 모르겠네 산타할아버지만 알겠지?"라고 말했었다. 그때 난 다짐했다. 산타할아버지를 봐야겠다고
산타할아버지가 내 부탁을 안 들어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만나서 이야기해 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여섯 살 때 했던 것 같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집착만큼은 최고이었던 것 같다.
궁금한 건 무조건 못 참는다. 맨날 맨날 물어본다.
드디어 D-DAY. 산타할아버지가 오는 날이다.
"우리 집에 굴뚝이 있으니깐 굴뚝으로 오는 거야?" 아니면 현관문으로 들어와? 창문은 열어놔야 해?"
갖가지 질문을 아빠 엄마한테 물어본다.
언니랑 동생은 그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 그냥 좀 자"라고 언니가 말했다.
"언니나 자!" " 난 오늘 산타할아버지를 꼭 만나야겠어!"라고 때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 엄마가 참 힘들었을 거 같다.
아오... 내가 생각해도 피곤하다.
12시까지 잠을 안 잤다. 눈물이 흐른다 눈을 하도 비벼서 눈이 쌔뻘게 졌다.
아빠랑 엄마가 눈치를 서로 보는 것 같다.
내가 말했듯이 눈치는 엄청 빠르다. 엄마랑 아빠가 뭔가 곤란한가 보다.
언니랑 동생은 잠을 잔다.
아무리 기다려도 산타할아버지가 안 온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일어나자마자 울었다 " 산타 할아버지 만나서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기다렸는데 안 왔나 봐"
" 산타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바쁜 거야?'"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왜 안 온 거야?"
아빠가 그랬다.
"산타할아버지는 잠잘 때만 오신대" "근데 어제 네가 잠을 늦게 자서 늦게 오셨나 보다"
"냉장고 한번 열어볼래?"
냉장고로 후다닥 달려간다.
냉장고 한가득 또 과자가 있다.
뭔가 불공평하다.
언니는 냉장고 근처로 오지 않는다.
"언니! 언니! " 언니를 다급히 부른다. 언니는 눈치를 본다.
"왜? 나 지금 바빠!"
수상하다. 언니 근처로 가니 언니가 포장지를 뜯고 있다.
"뭐야 산타할아버지가 왜 언니한테만 선물 주고 나는 과자 주는 거야?"
"언니 거는 뭐야?"라고 물어봤다.
언니가 한숨을 쉬면서 건네준다. "책"이었다.
"흥! 책이네? 됐어 나는 책보다는 먹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하고는 남동생을 찾기 시작했다.
남동생이 구석에서 내 과자를 먹으면서 포장지를 뜯고 있다.
"뭐야? 넌 뭐 받았어? 내 거 과자 왜 네가 먹어? " 또 짜증이 났었다.
"나 건담 조립하는 거 받았어"라고 하면서 복잡한 도면하고 낱개로 포장된 건담조각들을 꺼내면서 해맑게 웃는다. 바로 가위를 가지고 가서 하나하나 잘라내면서 조립을 하기 시작한다.
"흥 됐어. 어차피 이거는 내가 가져도 못할 건데 뭐"
심술이 났다. 난 왜 과자지? 나는 분명히 인형을 달라고 했는데.
이건 잘못된 거다. 불공평하다. 난 과자만 잔뜩이고 이거는 나 혼자 다 먹다가는 이빨만 썩는다.
그러면 또 아빠가 충치라고 실을 감아서 이마를 치고 네 이빨을 뽑을지도 모른다.
순간 또 억울하다.
내년에는 반드시 산타를 만나야 한다.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내년에는 산타할아버지를 꼭 만날 거야. 산타할아버지 너무 못됐어"라고 말했다.
아빠는 뭐가 웃기는지 나를 보고 한참을 웃으신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인상 깊은 모습이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한다.
이때 나는 억울했다.
이렇게 여섯 살의 12월은 마무리되었다.
여섯 살의 나는 심술 가득한 미운 여섯 살이었다.
여섯 살 나는 그렇게 산타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산타할아버지! 다음번에는 인형 꼬 주세요"라고 카드를 써서 다음 해 산타가 오기까지 냉장고에 붙여놨다.
참으로 집요하다. 지독하게 고집쟁이. 그렇게 나는 여섯 살 때 미션을 산타할아버지에게 남겨두고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