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따로 디비생성을 위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디비퍼포먼스를 한다.경영에 대해서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철저히 직윈으로 임했다.
디비 하나당 단가는 얼마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중에 일부는 영업직원들에게 배분해 주는 디비의 질과 영향 없이 무조건 일부를 제외하고 지급자의 소득에서 공제하여 급여를, 사업소득을 산출한다.
즉, 기업을 만나서 계약을 하지 않으면 마이너스인 거다.
보험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환수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기업을 만나서 R&D가 왜 필요한지, 하고 싶다는 기업들에게 조금 더 각인시키고 고민해 주고 상담해 줌으로 계약까지 이끌어 가야 한다.
난 이 모든 것을 쉼 없이 했다.
항상 그렇듯이 나는 일을 하면서 내 몸을 돌보지 않는 버릇이 있다.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뭔가를 할 수 있을 때 말하고 웃을 수 있을 때, 그럴 때 난 삶에 희열을 느꼈나 보다.
맨 처음 R&D 직장에서의 업무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모든 것은 지옥이다.
항상 대표님은 얘기했다.너도 주주잖아?사내이사잖아?그니까 더 많이 일해.
니가 망하면 다망하는거야.라고말이다...난 그때문에 나를 더 힘들게했을지두..
당시 회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했을것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만두고서야 알았다. 그때 나는그만큼 순진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30대 참으로 순진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조금 사회의 변화에 익숙해진 것뿐이다.
업무적으로는 첫 직장의 대표님으로는 나 같은 직원은 행운이었을 것이다.지금생각하면말이다. 일때문에 원망해본적은 없다.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업을 설립하자고 권유한 것도 나고, 3개월 이내에 회사가 망하면 다 망하는 거라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 내가 회사를 키워보겠노라 큰소리 뻥뻥 친 것도 나다.
그래서 난 더 열심히 했다.
지금에 와서야 주식회사가 가지는 무게와 주식회사의 대표가 가지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난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해보지도 않았다. 그저 "약속지킴이"로 살았다.
매주 스케줄은 그 전주에 다 잡힌다.
만나야 할 고객사, 회사로 오기로 한 고객사. 대면평가 연습을 하여주어야 하는 고객사. 여러 가지 짬뽕이 되어서 스케줄은 거의 풀이다. 매달 매달 계약은 이루어져야 하고, 하는 일은 많아지고 거기에다 총괄직을 맡으면서 내부직원관리 및 기타 관리까지... 일욕심을 너무 부린 것도 있지만, 대가성 없이 기본적인 업무는 내가 다 해왔고, 대가는 영업으로 일어나는 부분으로 다른 영업자들과 같은 수수료의 사업소득을 지급받았다.
"더 주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믿었다.돈이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일것이라고,회사도 그렇게 날 대할거라 기대했었던가 보다.
하지만 그 믿음은 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의 발단부터 시작되어 그만둘 때까지의 내 정신상태에 의해 사직하게 되었었던 사연이 있다. 이 부분은 다소 민감한 부분이라 지금은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혹여 기회가 되어 속편을 또 발행한다면 따로 말할 수도 있겠다.
어김없이 스케줄이 꽉 차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아랫배가 고통스럽게 아프고, 찢어질 듯 아프다.
난 1년에 병원을 1번 아니면 2번 정도밖에 가지 않는다. 엄청 아프지 않은 이상 감기가 걸리면 약국에서 감기약을, 장염인 거 같으면 설사하지 않는 약을, 집에 따로 약통을 만들어 놓고 각각의 약들을 항상 구비하고 살았다.
물론 지금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때는 더 심했다.
느낌이 이상하다. 그래서 난 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를 찾아가 봤다.
여성으로서 아랫배가 너무 아픈 것이 생리적인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해서이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결론은 "자궁암" 이 의심된다. 대학병원으로 가라. 였다.
그렇게 나는 대학병원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귀찮고, 당장 며칠 뒤에 약속도 많은데 내 몸이 아파서라기보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받을 스트레스에 더 민감했었나 보다. 그렇기에 나는 맘은 급했고 다행히도 소견서를 가지고 대학병원에 가니, 상황이 심각한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받고 검사를 다시 받고 그날 바로 "수술"에 대한 일자를 잡게 되었다.
하... 수술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당장 다음 주 약속은 어떻게 하지?
회사로 전화를 했다.
대표님에게 말했다.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해 주시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알겠다는 짧은 답만 되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산부인과 -> 그리고 대학병원 -> 수술 이렇게 일사천리로 1주일의 시간을 허비했다.
수술 후 마취가 깨지 않아 병원은 난리가 난 상태이다.
눈떠보니 내가 핏줄이 약해서,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약간의 부작용이 발생했던 모양이다.
이모와 언니는 수술실 밖에서 한참 울었던 모양이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빨리 되는데, 왜 조카는 이렇게 오래 걸려요?" 우리 이모가 그랬던 모양이다. 우리 이모는 나에게는 "천사"이자 "나의 삶의 이유" 이기도 할 만큼 소중한 사람이다.엄마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엄마보다 "이모"가 난다 소중하다.
수술을 마치고 깨어나서 며칠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다. 일단은 그 심각한 고통을 참으면서 일도 잘해왔고 이깟 수술 해서 상처가 있다고 해도 조심히 다니면 아픈 거는 얼마든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수술을 하고 이틀이 지나서 바로 출근했다, 조금의 안정도 취하지 않고 바로 또 일을 했다.
"죽일 놈의 책임감과 나를 믿고 따라와 준 기업과의 약속" 이것이 나에게는 내 몸이 아픈 거보다 더 소중했다.
일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내가 약속한 것이라는 사항이 더 미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업대표님들 그 누구도 내가 아픈 것을 알지 못하게 항상 진한 화장을 했고, 빨간 립스틱으로 빛 푸른 입술을 가렸다. 그렇게 정해진 스케줄을 다 소화해 냈다.
말했지만, R&D는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나를 믿고 계약해 준 기업대표님들, 그리고 그 기업의 대표님들의 선정에 대한 간절함, 그리고 나를 믿고 상담을 기다리고 있는 기업들. 그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가 돈을 벌고 못 벌고 그것도 중요하지만 난 개인적인 신념인 "약속"에 미쳐있다.
그래서 난 다 소화했고, 아주 중요한 시기인 R&D의 주요 집중 시기를 버텨냈다.
가끔은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대표와의 초심,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음을 깨닭았지만,난 약속을 했고, 그 약속으로 나를 나름대로 괴롭혀왔다. 스스로 말이다.하지만 난, 나를 따라와 주는 직원들 그리고 나를 믿고 힘내서 함께 협조해 주는 기업의 대표님들 그분들이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직원들에게 말이다.
대표가 그러더라 " 총괄상무"는 암에 걸려서도 일하는데, "너희들은 고작 그거 아픈 거 가지고 난리냐"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했었다. "아프면 좀 쉬어가면서 하셔라.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 그리 아등바등하냐"라고 말이다. 그때의 나는 그 말들이 그냥 의미 없이 들렸다. 이미 많은것을 알았을때이기도 하지만, 회사가 나에게 가지는 정성이 결국은 "실적"이었고, 나의 "배려"가 아닌 "당연한 의무"로 변질되어있었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텼다. 그때의 나는 그저 한없이 나의 부족함에만 몰두했다. 그것을 매꾸기 위한 나로 일어서기 위해 하염없이 채찍질 했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가끔은 쉬어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부 과제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미친 듯이 열심히 했고, 지금의 내가 있어줄 수 있는 베이스가 되었다.밑바닥부터배운것은 내지식이 되었다. 기억하고싶지않은 현실에 비겁함에 나를 포장하고,그렇게 날 스스로 학대하기 까지긴세월 쌓아둔내 스펙을 포기하면서까지 난
이 기업에 근무하면서 최고권위자의 바로 아래까지 근무를 하면서 느낀 바와 그로 인해 경험한 것들 중 좋은 것들만 지금의 내 회사에 접목하고 있다.
"나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마인드이다.
그래서 그런지 독립 후 많은 격려를 받았고 응원을 받았다. 물론 모두에게는 아닐 수 있다.
내가 가는 길이 바른길이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난 지금 내 회사를 차렸고 R&D 여성 컨설팅 전문 대표가 되어있다.
이를 위해 내가 걸어온 길이 험난하고도 멀었다. 결정하기까지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난 이 길을 걸어가고 있고, 이 길을 걸어 기면서 만나는 모든 나의 고객사들에게 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가끔은 쉬어가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내 직원들이 나를 대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들을 믿는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도 희로애락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로 인해 회사가 힘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난 가끔 쉬고 싶음을 생각할 때
함께 "쉼"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직원들도 함께 쉬고 싶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가 비슷하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도 힘든 거다. 지금의 직원들은 나보다 더 에너지틱하다.
아주 바빠야 할 시기인 10월. 다행히 아직은 죽을 만큼 아주 바쁘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빠질 것이다. 솔직히 아주 바쁘길 바란다.
진정한 고객사들을 만나고 성과를 내면서 나는 나의 회사를 성장시켜 나갈 것이다.
오늘은 책을 시작하면서 내가 말한 나의 인생의 이야기를 " 나는 알앤디 컨설팅 대표가 되었다 2편의 중간자락"에서 털어놔봤다. 오늘의 태양은 또 뜰 것이고 내일의 태양도 또 뜨듯이 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고 나의 고객사가 될 분들이 누굴지 모르나 진심 어리게 기다리고 있다.
R&D만 바라보고 10년을 다져왔다. 기본부터 실무까지 마스터 한 나와 내 동료들. 나보다 뛰어난 내 동료들.
직원이 아닌 동료이자 원동력들이다.
내 책을 보는 분들 중에 R&D를 하고 싶은 기업들이 있다면 또, 대표님이 있다면 거침없이 문의를 남겨주길 바란다. 거침없는 대답을 해드릴 것이다. 입바른 사탕발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