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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Nov 04. 2024

오디션! 올 것이 왔다. (사치라는 꿈)

내 꿈은 가수이다. 하지만 내게 꿈은 사치였다.

내 친구들과 나는 학교를 마치면 꼭 동전 노래방이나 삼삼오오 삥땅 친 돈을 모아서 노래방을 갔다.

이유는 친구들도 다 노래를 좋아하고 난 오디션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몸치이다.

몸치이기 때문에 춤은 못 춘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노래에 자신은 있었다.

당시에 유명한 가수는 가수 "양파"였다.

솔직히 "내가 더 이쁜데?"라고 생각해서 자신감도 생겼었다.ㅋㅋㅋ

저 가수는 노래를 참 잘한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음색이 있으니 괜찮겠지?라고 나름대로 벌써 이미 마음은 가수가 되어있을 정도였다.


참으로 거만하고 웃긴 일이다.ㅎㅎ

그때시절에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다들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아르바이트를 한돈을 조금씩 모아서 차비를 마련하고, 그리고 오디션을 보기 위한 준비를 노래방에 다 퍼부었다. 엄마는 모른다. 맨날 어디 가서 놀다 오는 줄만 알지... 모른다.. 

오디션은 나는 1차부터 3차까지 모두 다 봐야 한다.

1차는 당시에 유선으로 무반주로 내 목소리만 고스란히 담긴 녹음본을 제출하는 거였다.


요즘 같으면 "난 반주 없으면 노래 안 해"라고 하지만, 이때는 그런 게 어딨나! 하라면 해야지...


1차 미션.

1차 미션은 말한 대로 무음반주로 녹음본을 정해진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때 오디션 참가번호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전화를 하면 "멘트가 끝나면 노래를 해주세요"라고 하면 노래하고 녹음완료 버튼을 누르면 저장되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부른 노래는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이었다.

엄마가 없는 시간을 빌려서 집전화로 전화기를 움켜쥐고 불렀던 기억이다.


오디션 결과 통보는 녹음하고 나면 참가번호 몇 번이라고 나오면 메모했다가 기일이 되면 전화를 해서 확인하는 시스템이었다.


두근두근

000님의 0000 번호는  1차 합격을 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2차 오디션은 압구정동 00000에서 진행예정입니다.

00월 00일에 00시에 참여해주셔야 되며, 늦을 경우 1차 오디션 통과는 취소됩니다.

라는 멘트를 들어버렸다.

아싸! 좋다! 하... 근데 어떻게 서울까지 가지????? 걱정이 태산이다.


[나만의 미션]

난 우선은 성격이 확인하고 봐야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친구한테 서울구경 가자고 꼬셨다.

친구집은 함박집이라고 해서 기사식당을 운영했었고, 학교 마치면 항상 자신의 어머니 일을 도와준다.

그 친구집에서 우리 부모님은 계모임을 하신다. 그렇다 양가가 다 안다.

혼자 가기 무서워서 친구를 꼬셨는데, 친구도 기회를 보고 따라나서겠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두근거리는 맘으로 서울구경을 떠났다.

그날은 비가 오질 게도 많이 왔다. 하지만 매번 보는 비 이기 때문에 별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서울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다.

비가 진짜로 이토록 많이 온 적이 없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열차가 중간에 멈췄다.

멈춰서 가지를 않는다. 서울을 하루종일 걸려서 갔다. 

우리의 계획은 막차를 타고 오는 것이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런 젠쟝...................... 친구와 나는 하루종일 열차에 갇혀서 꼼짝도 못 했다.

열차는 아침 일찍 탔는데 서울에 도착시간이 막차 시간이다....


서울역 땅만 밟고 다시 부산역 기차를 끊어서 내려왔다.

와... 진짜 그때 생각하니 또 열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에 집에 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고2 짜리 여학생 두 명이 한꺼번에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난리가 난 모양이다.

양쪽 부모님은 화가 엄청나셨다. 그때 내 친구 이름이 "정금이?"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이후 나는 엄마 아빠한테 엄청 욕을 먹었다. 하지만 끝까지 오디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정금이가 분 모양이다. 00 이가 서울구경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고 말이다.

이후 엄마 아빠는 그 부모님에게 사과를 했고 나는 또 혼났다.


이런 의리 없는 친구 같으니....라고 원망도 했다.

하지만 그 집의 부모님은 매우 엄하시고, 또 오빠가 있는데 정금이 오빠는 진짜 여동생 단속을 엄청 했다.

그래서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배신감은 느껴졌다. 어릴 때 말이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서울구경은 허무하게 서울역 땅 밟아보기로 끝이 났다.


[2차 오디션]

2차 오디션을 가야 한다.

2차 오디션을 가기 전에 전달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연락을 하니, 1차 때 많은 사람들이 통과되어서 다시 한번 전화로 오디션을 진행한다고 한다.

서울구경 괜히 갔다..... 생각했다.

하지만 내 성격 알지 않나! 나는 절대로 후회할 짓은 안 한다. 그래서 또 해야 하는 억울함은 있으나.

한 번 더 도전했다. 이때 부른 노래는 소찬휘 노래이다. 난 소찬휘노래를 매일 들으니...

이번에 승부를 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찬휘의 "보낼 수밖에 없는 난"을 불렀다.

소찬휘 노래 앨범 커버 이미지

떠나는 모습까진  볼 수 없어요 꼭 그래야 할 필요 없다면 차라리 내가 먼저 돌아서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아 난 준비가 되지 않아서 워 흐르는 눈물일 뿐이에요 나를 편하게 떠나요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면 오오~~~~~~보냐야겠지 떠나고 싶어 떠나는 건 이해해야지

오오~ 하지만 다신 내가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 줬으면 해~~~~~~~~~~���������


이렇게 한참을 나 혼자 홀릭되어 노래를 부르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아이고 힘들다! 이 노래는 고음이 많다. 하지만 나 합창부 생활 5년! 무시할 수 없지!

이렇게 녹음을 마치고 또 기다리는 타임이다....


하..... 나는 잘했는데, 뭐 기다려 보자라고 생각하고 반은 기대 반은 포기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결과는?

000님의 오디션 참여곡의 결과는 합격입니다.

00월 00일 압구정동 0000 타운에서 마지막 오디션이 진행됩니다.

00시까지 오시기를 바랍니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한다.


와... 아싸!!! 흠..... 그런데 어떻게 가지?

서울길은 모르는데 ㅠㅡㅠ 미쳐버릴 노릇이다.


자. 대망의 3 차 오디션을 본다.

어떻게 갈 것인가 무척이나 고민을 했다. 그때 내 친구가 말한다.

서울에 아는 오빠가 있는데, 너 사진 보여주니깐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때 결심했다. 난 미팅을 하지 않지만 난 오디션 장에 가야 한다.

그래서 "그럼 내가 언제 언제 갈 테니까 어디까지만 좀 데려다줄 수 있냐고 물어봐줘" 끝나고 나면 밥은 같이 먹어주겠다고 하고!라고 말했다.


너무 어이없다. 내가 뭐라고 밥을 먹어주겠다니 ㅋㅋ

 나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실현됐다.

그 오빠가 알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럼 일단 목표는 달성한 거다."오디션 장"을 갈 수 있다.

무작정 집을 나섰다. 옅은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오디션 장에 갔다.

그때 내가 입은 옷도 기억한다. 난 원피스를 입었다. 검은색 원피스에 검은색 구두를 신었다.


서울역 도착!

첨 보는 얼굴의 오빠가 있다. 난 그 오빠의 얼굴을 친구에게 보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젠쟝...... 얼굴이라도 알았어야 하는데....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아무튼 착하게 생긴 오빠가 왔다.

"아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했다.

그 오빠는 나에게 " 와,. 너 사진보다 더 이쁘다"라고 말을 건넨다.

"아... 네  감사해요" 근데 지금 시간이... " 저 오디션 보러 가는 거 아시죠?"

"주소가 여긴데 좀 데려다가 주세요"라고 내 급한 말을 먼저 했다.


그 오빠는 "어 그래" " 차 있으니까 데려다줄게 "라고 하고 나를 차로 이동시켜 주면서 이것저것 나한테 묻는다. "취미가 뭐냐" " 가수가 되고 싶어서 그러냐 " " 무슨 노래를 부를 거냐" 기타 등등 말이다.

그 오디션 장에는 정해진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그 오빠는 들어오지 못한다.


sm 엔터테인먼트!! 와우 그곳에 내가 합격해서 지금 최종 오디션을 보러 가는 거다.

진짜 너무 두근거린다. 노란색 건물이 보인다. 그곳이다 오디션 장소!

지금은 다시 지었다고 하지만 그때는 노란색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번호표를 다 준다. 이름을 확인하고 번호표를 받고 가슴에 달았다.

와.... 너무 떨린다. 어떤 아이들은 "연기"를 한다. 어떤 아이들은 "워킹"을 한다.

어떤 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랩을 한다" 이렇게 가지 각색이다.


이번 오디션은 가수/배우/모델/ 이렇게 뽑는 거였다.

카테고리 안에 가수 쪽 희망 참가자들은 따로 노래만 쭉 듣는다.

아마도 내가 가수 쪽 희망자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꽤 오래 기다렸고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의외로 잘하는 애들이 너무나 많다.


드디어 내 차례다.

난 참 많이 고민했다. 뭘 부를까 말이다.

"우리는 그룹을 만들 거예요" 그래서 편하게 부르면 돼요.

라고 심사위원이 말한다.

"그룹?????" 난 가수 양파를 보고 나서 솔로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룹이라니! 뭐 어쨌든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아.. 네"라고 짧은 답을 했고 이렇게 씩씩한 내가 너무 긴장을 했다.


노래 부른 거 보니까 양파노래랑 소찬휘노래로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누구 노래를 부를 거죠?라고 묻는다.

갑자기 생각한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 잠시 기억을 잃었다. 너무 긴장하면 그런가 보다.

사람들이 엄청 많고 나만 본다. 미칠 노릇이다.

소찬휘노래만 생각난다.

"일엽락이요"라고 했다.

다들 눈이 동그래진다.

그 노래를 한다고요?라고 말이다.

"네.... 제가 좋아해서요"라고 말했다.

~���������

너무 큰 욕심이었나 너를 사랑하고픈 그 맘뿐이었는데 조금씩 알게 될수록 자꾸 멀어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어 많은 날을 너와 함께 할수록 무뎌지는 맘을 노력해도 바꿀 수 없어 이런 사랑을 위해 힘들어야 했는지

어쩌면 모두 내 탓일 거야~ 이젠 너를 사랑할 그럴 자신 없기에  헤어짐이 더 자신 없는 내가 미워~~���������


한참을 불렀다. 다행히 mr을 틀어줘서 불렀다.

갑자기 심사위원이 말한다. mr 없이 "애송이의 사랑" 한 번 더 불러줄 수 있나요?라고 말이다.

"아... 네"라고 말하고 또 애송이의 사랑을 불렀다.

"제가 너무 떨려서 그런데 눈감고 불러도 되나요?"라고 물어보니 웃으면서 그러라고 한다.

그래서 눈을 감고 혼자 호흡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잠 못 이룬 새벽 �~ 어윽�~ ㅋㅋㅋ " 혼자 바이브를 넣으면서 난리도 아니다.


아..... 개 망했구나...라고 생각하고 눈을 뜨니까 심사위원이 " 많이 떨렸을 텐데 고생했어요 결과는 전화로 참가번호 확인하면 알려줄 거예요"라고 한다.

"네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다닥 나와버렸다.

너무 창피했다. 

아오..... 난 무조건 떨어졌을 거야. 이런 젠장 쪽팔려....라고 생각하고 나오는 찰나, 그 오빠라는 사람이 기다렸던 모양이다.

"다 끝났어?"라고 묻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빠면 오빠지 왜 나한테 반말하지?라고 생각했다.

한껏 예민했던 나는 "네. 끝났어요" " 근데 오빠 왜 반말하세요?" "저한테 허락받으셨어요?"

라고 물었다. 

그 오빠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아 미안미안. 그럼 오빠가 반말 좀 해도 될까?"라고 묻는다.

"네 해도 돼요"라고 말했다. ㅋㅋㅋ

그럴 거면 왜 화를 냈는지 나도 모른다.

이후 그 오빠가 나한테 밥을 사준 기억이다. 난 입이 꽤나 싸구려다. 비싼 스테이크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

소박한 음식이 좋다.


그 오빠는 꽤나 부자인가 보다. 차도 있고 나이도 그때 당시 22? 살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깐 나랑 차이가 좀 나지만 그렇다고 많이 나는 건 아니다. 집은 잘 사는 편이라고 친구한테 듣기는 했다.

이 오빠는 대학생이다. 흠.... 뭐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아무튼 그렇게 그 오빠가 나한테 좋은데 데리고 가줄게. "미사리에 가면 맥주 한잔 하면서 노래 듣는 곳이 있거든?"라고 하면서 나한테 말한다.

"미사리요?" 이상한 데면 안 가요!라고 잘라 말했다. "아.. 이상한 곳이 아니고 라이브로 노래 불러주는 곳인데 너도 가보면 도움 될 거야 "라고 한다. " 아 그래요? 일단 그럼 가보고 이상하면 나올 거예요"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미사리"라는 곳에 첨 갔다. 

가수 원미연? 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아무튼 가보니 다들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 거리면서 라이브를 듣고 있다. 꽤나 노래를 잘한다. 기타도 잘 치고.... 


아... 순간 또 현타가 와버렸다. 한참 있다가 "오빠저 갈래요 "라고 말했다.

그 오빠는 일순간이지만 내 성격을 파악한 듯하다.

"그래. 서울에 아는 사람 있니?"라고 말한다. 당연히 있다.

"우리 이모" 하지만 말 못 한다. 그래서 "아니요" 저 집에 가야죠.라고 말했다.

그때 그 오빠가 나한테 내 친구 집이 비었는데 거기 가서 하루 자고 가도 되지 않아? 오빠 나쁜 사람 아니야.라고 말한다.


어쩌지.... 이런 거 이상한 거 아닌가.... 무척이나 고민했다.

진짜 지금 생각하면 겁이 없던 나다. " 네. 뭐 그러든지요" 대신 아침에 역까지 데려다주셔야 돼요 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렇게 그 오빠친구 집에 갔다.


원룸 같았다. 아무튼 가서 씻고 누웠다. 누워서 눈을 감고 천천히 생각했다.

아.... 망했다... 나 떨어졌겠지??? 다른 사람들은 한곡만 부르던데 난 왜 또 시킨 거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그 오빠가 옆에 쓱 하고 눕는다. " 아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말을 하니, 오빠도 자야지......라고 말한다.

"이런 미친"이라는 맘이 속으로 들었지만 뭐 별일 있겠어라는 맘도 컸다.


어차피 난 지금 다른데 신경이 다 쓰여 있다.

"아 그럼 맘대로 하세요" " 대신 저 터치하지 마세요""오늘은 감사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휘돌아 누웠다. 그렇게 그날 진짜 아무 일도 없었다.


이 오빠 지금 생각하면 진짜 고맙다.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지만, 나를 건드리면 안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이가 없었을수도 있고, 참 고생했다 참는다고 말이다~ 그땐 난 너무 순진했다.


다행히 나쁜사람이아니었길 망정이지 큰일 날뻔 했다는것도 이제는 안다.


그때 그렇게 새벽같이 일어나서 기차를 탔다. 기차 타는 곳까지 데려다줬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엄마는 어디를 갔다가 집도 안 오고 다니냐면서 난리도 아니다.


'아 그냥 친구집에서 잤어"라고 말하니, "네가 친구가 어딨 어"라고 일침을 놓는다.

"아오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아 몰라 친구가 뭐 사람만 친구야? 귀신도 친구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는 삐뚤어진 맘으로 잠이 들었다.

"아이고 저 가시나 저거 어쩌면 좋니, 저거 외박하고도 잠은 잘 자네 참네 내가 어쩌다 저런 골칫덩어리를 낳아 가지고 아이고 못 산다 내가" 하면서 엄마가 또 나를 나무란다.

또 화가 난다.

벌떡 일어났다.

"엄마! 엄마 계모야? 왜 자꾸 나한테 그래?"

"엄마 내가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다고 했어? 엄마랑 아빠가 좋아서 낳은 거잖아!"

"근데 왜 자꾸 그래? 그럴 거면 버리던지! 나도 집에 있기 싫거든!"이라고 엄마한테 막말을 쏟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한 말이지만 이때는 나는 이랬다.

엄마는 지금도 우리 집 애들은 사춘기가 없었다. 그래서 덜 힘들었다.라는 말을 남들한테 한다.

그런데 아니다. 난 사춘기였던 거다. 엄마는 그냥 덮어줬거나 아니면 내 성격이 그러니 그냥 넘어간 것 같다.

"아이고 왜 이렇게 짜증을 내고 그래~" " 그냥 잠이나 자"라고 말을 한다.

더 이상 말을 아꼈다. 말을 아낀 것이 참으로 잘한 것 같다.


[최종 결과 발표]

오디션 최종결과가 나왔다. 기대도 안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다.

최종 합격이다. 이제 연습생을 해야 한다.

설렌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너무 좋다.

근데 이후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내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한 모양이다.

학교를 가니, 선생님들이 자꾸만 오늘따라 나한테 노래를 시킨다.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 때 잠을 잤다. 잠을 잔걸 선생님이 깨우시면서 원래는 팔 들고 밖에 서있으라고 하는 선생님이신데, 노래 부르면 봐주겠다고 한다.

"네? 노래요?"라고 물었다.

그러니 선생님이 "어 , 노래 좀 불러봐"라고 한다.

이건 무슨 개소리인가!!!! 왜 내가 내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냐 말이다.

그래서 꾀를 냈다. 저 에코 노래 부를 건데 그건 3명이서 불러야 하거든요!

같이 해줄 사람 두 명 있으면 할게요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런다 "그래? 그러면 두 명 나올 사람!이라고 한다. 내 삼총사 친구 두 명이 지원군에 나섰다.

눈치 없이 의리 없는 친구들 같으니........ 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라이브쇼가 진행된다.

회의를 했다. 네가 누구하고 내가 누구 하고 너는 누구 세 파트로 불러야 하니 구간을 나눈 거다.

노래방에서 참으로 많이 셋이서 불렀다.

에코 3집 앨범 이미지

그래서 우리는 각자 파트를 나누고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선생님이 "야 너네 노래 잘한다" "용서해 줄게 들어가"

"그리고 담부터 잠자면 안 된다!"라고 말하신다.

그렇게 하루를 피곤하게 지내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니 엄마가 나를 부른다.

너 학교에서 전화 왔던데 네가 무슨 가수를 한다고?라고 말한다.

"선생님이 전화 왔는데, 너 뭐 오디션 봤다며? 아이고 그때 외박이 서울 간 거야?"라고 몰아붙인다.

"어 왜!"라고 말한다.

근데 어떻게 알았지?????

이런 젠장... 세상에 비밀이 없구나.....

그러고 엄마는 "가수 안돼! 너 여자들이 연예인 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우리 집은 돈도 없고 백도 없어. 너 거기 가면 엄마가 뻔히 어떻게 될지 아는데, 안돼"라고 못을 박았다.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거의 밥을 안 먹었다. 식음을 전패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독하다, 안되면 안 된다.

이건 내가 엄마를 닮았나 보다. 지원군인 아빠는 아무 말도 없다.

엄마선에서 커트한 것이다.


그것을 나는 커서 알았다.


내가 학교를 갔을 때, 학교에 전화를 해서 엔터에서 연락을 했고, 부모님과의 소통을 원했던 모양이다,

엄마랑 소속사랑 만남을 가진 듯하다.

연습생으로 들어갈 기회가 얼마 없다. 엄마가 단칼에 거절했다.

그냥 일반적으로 숙소 생활을 해야 하는 점과, 우선 몇 개월 정도는 집에서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 그것이 엄마는 돈 없다. 그럴 돈 없다. 얼마가 돼도 그건 안된다라고 밀어붙였고, 소속사에서는 나한테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시는데,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안되는 걸 알고 있다.

몰래 서울로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가는 길에 엄마한테 걸려서 그대로 컴백 홈 을 했다.

그렇게 나의 가수의 꿈은 물 건너갔다.


알고 보니 그때 그룹으로 키우려고 했던 것이 ses였다.

내가 그 그룹에 속했을지 탈락했을지는 연습생을 해봐야 아는 거지만 그런 기회가 없었다.

내가 누구가 되었을지는 모르나, 진짜 나로서는 억울하고 아픈 기억이다.


[ 엄마의 뒤늦은 고백 ]

세월이 흘러도 절대 잊지 못하는 일이 내 첫 가수의 꿈을 엄마가 거부한 거다.

난 너무 그 부분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할 수도 없다. 내 일이 있어서 엄두도 안 난다.

엄마는 내 나이가 30대가 되어서야 고백을 했다.

그때 너한테 투자하기에는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고 남동생 대학 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남동생은 대학을 가서 자퇴를 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못을 박았었다. 중사로 군대를 제대했다.

하.... 모든 걸 들으니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났다.

그러면서 말씀하신다. 

그때 내가 그냥 너 하고 싶다는 대로 해줬어야 하는데.... 그게 후회가 된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엄마에게 말했다. 난 그건 엄마한테 너무 섭섭하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꿈도 없다고

그 말을 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또 상처만 되니 말이다.


글을 마치며.

지금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좋은 노래를 찾아서 노래를 흥얼 거린다.

항상 내 회사에는 내방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퇴근까지 플레이된다.

일하면서 노래를 흥얼 거린다. 음악을 켜놓고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그냥 나는 살고 있다.


하지만 당시 고2. 난 가수를 포기했다.

그 이후 한동안 나에게 꿈이란 단어는 "사치"가 되었다.

어차피 동생한테 올인한 부모님은 어쩔 수 없다. 우리 언니도 동생을 위해 희생했다.

꽤나 동생이 미웠던 고 2였다. 커서도 그 맘이 사라지진 않는 것 같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신가요?

만일 여러분이 결혼했다면 자녀분의 꿈을 응원해 주세요!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주실 수도 있잖아요 ^^ 저처럼 원망 듣지 마시고요!

꿈이란 단어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치"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림을 참 좋아헀다. 미대에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안되었다. 미대는 돈이 많이 들어가서 안된다

이것이 또 부모님의 생각이다. 난 다 안된다 하하하하하하.......

그래서 나에겐 꿈은 "사치"에 불과하다.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기억은 아픈 손가락으로 남을 것 같다.


"꿈을 꾼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난 꿈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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