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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kim Oct 18. 2024

반구천 암각화와 간월사지

- 바위와 탑에 새긴 신라인의 사유 

울주 반구천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보러 갔다. 

둘 다 오래전에 봤는데 몇십 년 후에 다시 보러 가니 마음이 설렌다.


거북이 등을 닮았다고 해서 반구대란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여기엔 신라시대 반고사(磻高寺)가 있었는데 원효가 머물면서 불경을 집필했다고 한다. 훗날 정몽주가 언양으로 귀양을 와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절터에 반고서원을 세워 포은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의 위패를 모셨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없어졌다.


구곡문화는 복건성 무이산 계곡을 주자가 성리학 공부 단계를 설정하여 이념공간으로 만든 이래 조선에 수용되어 17세기 이후 다양한 구곡문화를 낳았다. 경치 좋은 계곡을 아홉 단계로 구분하고 거기에 맞게 성리학 공부를 입문단계부터 완성단계까지 이념적으로 설정하였다. 이곳 대곡천 계곡에도 구곡을 설정했는데 여기가 五曲에 해당한다고 한다. 다른 말로는 탁족암이라고도 하고 晩山, 觀術이라고도 한단다. 그 위를 鶴巢臺라 한다. 상상의 새인 청학이 깃든다는 뜻으로 훌륭한 인재가 나타나길 바란다는 의미이다. 너럭바위 위에는 공룡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이다. 40년 전에 사학과 답사 때는 암각화를 만져 볼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강물 밖에서 봐야 한다.


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 암각화와 함께 신라시대 법흥왕 시절에 새긴 글씨가 남아있다. 반구대와 천전리 각석은 반구대 일원의 악각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신청되어 절차를 밝고 있는 중이다.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이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여래상으로 보물이며 목, 손. 얼굴 등 일부는 복원된 것이다. 9세기 작품이라 한다. 근데 불상에서 이목을 끈 부위는 대좌이다. 대좌는 상중하로 되어 있는데 원형은 아니라고 하는데 하대 안상부위에 동물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 대좌 아랫부분에 석탑의 예처럼 주름무늬(층급받침)가 있다. 불상의 대좌가 9세기의 승려 부도탑과 유사하다. 석굴암 본존불을 위시하여 8세기 후엽~9세기에는 항마촉지인을 한 불상이 만들어졌는데 당시 신라인들이 득도하여 선정에 든 석가여래 모습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간월사지에는 삼층 석탑 2기가 서 있는데 방향이 동서가 아닌 남북 방향이다. 그런데 양 탑의 거리가 멀게 배치되어 있어 본래 위치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1층 몸돌에 문비와 금강역사상이 잘 남아있다. 돌의 색깔이 하얗고 조각의 솜씨는 장항리 사지 오층 석탑과 매우 비슷하다. 지붕돌과 주름돌(층급받침)은 통돌이 아닌 각각 조립되어 있어 시기적으로 9세기 중반은 넘어가지 않을 듯하다. 기단부는 나원리 5층 석탑 기단과 유사하다. 이를 종합해 보면 간월사지 석탑은 8세기 후엽에서 9세기 초엽으로 추정된다.


위는 간월사지 석탑의 문비와 인왕상이고 아래는 장항리 석탑 문비와 인왕상이다. 

환조 기법이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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