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행복
너가 어릴 때는 먹을 것과 놀이 기구가 부족하였다. 그때의 놀이를 상기해본다. 같이 추억을 쌓아온 친구들이 그립다.
봄에는 뒷동산에 피어있는 진달래 숲에서 총싸움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권총과 비슷하게 생긴 나무를 다듬어서 총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진달래를 먹곤 하였다. 그리고 진달래 긴 수술을 따서 서로 대각으로 맞대어서 끊는 놀이를 하였다. 버들나무 새순 그리고 가시나무 새순 등을 먹었다. 묘지에 있는 잔뒤에서 나오는 새순을 삐삐라고 하였다. 먹지는 않고 껌 대용으로 씹고 다니곤 했던 것 같다.
소싯적 또래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게임 중 자치기 놀이는 으뜸이었다. 촌에서 가을 수확이 끝나고 비어 있는 논에서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자치기는 민속놀이로 추정된다. 자와 잣대를 나무로 만들어서 게임을 하였다. 자는 5-10cm 길이, 반경 2-3cm의 막대로 생각된다. 그리고 잣대는 약 3 cm 정도였다. 기억으로는 자의 모양에 따라 자치기 놀이는 2 종류로 나누어진다. 잣대의 모양에 따라 나뉘고 그리고 지금 기억으로는 방법도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잣대의 모양도 달랐다.
소싯적에는 엿을 팔려 다니는 분이 있었다. 리어카에 엿판을 싣고 다니면서, 고물을 가져가면 엿으로 바꾸어 주었다.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가져가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철 혹은 주석으로 된 제품 및 비료 부대가 가장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동네 꼬마들은 집에 재활용이 없으면 동네 꼬마들은 마을 주변으로 먼저 재활용을 찾기 위하여 경주하듯이 찾아다녔다. 그렇게 맛난 엿을 먹곤 했다.
가장 으뜸 놀이로는 구슬치기, 오징어 게임, 진도리 게임, 돌치기, 딱기 치기 등 다양한 놀이 기구가 있었다. 특히 구슬치기는 겨울에 따뜻한 햇빛이 잘 들어오는 담벼락 앞에서 구멍을 5개 파고 놀이를 즐겼다. 동네 형님들이 특히 중학생 형들이 저학년 꼬마들을 달리기 시키고 일등 하는 꼬마에게 딱지도 주곤 했던 것 같다. 특히 구슬 등은 구입해야 되기 때문에 돈이 부족한 꼬마들은 이렇게 달리기를 해서 구슬을 충족하곤 했다. 동네 친구들이 몇 명이 모이는지에 따라 게임의 종류는 달라진 것 같다.
모들들 부족함이 몸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주변의 일부 친구들을 제외학고는 비슷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움 등은 무시되었다. 그리고 서로 나눔을 미덕으로 살았던 기억이다. 동네 어떤 집에 제사가 있으면 제사를 지낸 집의 친구가 새벽에 자기 집에 식사하려 오시라고 집 집마다 알리려 다니곤 했다. 그리고 잔치가 있으면 동네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일을 도와주고, 축하하며 마당에 멍석을 깔고 나누어 먹었다.
마을의 모든 분들이 한 가족 같이 서로서로 도와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천하고 있었다. 자기 소유의 논이 많고 적음에 따라 생산되는 양은 다르지만, 서로 도와주는 미덕 혹은 공동체 생활을 실천하였다. 약간의 부족함이 풍족함 보다 좋았다. 그리고 행복하였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