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기억을 되살려본다. 모내기 시절의 풍경이 생각난다. 그 당시에 모내기는 장비가 없을 때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리어카가 유일한 도구였다. 어린 모를 뽑아서 묶고 모를 심을 논에 나르는 작업을 할 때 아주 유용하다. 모 묶음(못단)을 동시에 다른 논으로 나를 때 사용하는 도구였다. 그 당시 모내기 할 때 모두 다 수 작업이다. 남성들은 못단을 논에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 너는 그 시절에 좋았다. 그 당시는 초등학교가 아니고 국민학교였다. 국민학교는 바쁜 농번기에는 1 주일 정도 가정실습을 주었다. 학교가 휴교를 한다. 어른들의 바쁜 농사일을 도와주라는 의미이다. 특히 모심기 시절이다.
너의 동네에는 겨울 동안 자란 보리, 마늘을 수확한 논에 벼농사를 했다. 너의 집에 모심기는 많은 동네 분들이 도와주셨다. 물론 서로 품앗이를 하였다.
모심기는 논에 10명 정도의 일꾼이 논에 들어가서 횡으로 줄을 지어 분포되었다. 약 5 mm 간격으로 옆에서 모를 심고 있다. 물론 논에는 못단을 모심는 일군 가까이 펼쳐놓았다. 모심는 일꾼들은 모두 줄을 잡는 분의 호령에 따라 움직인다. 줄을 잡고 있는 줄잡이는 논에 모를 심는 속도와 못단의 분포를 보고 주위분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명령이라기보다는 일의 진행상황을 일러주는 정도이다. 모심기에 지장이 없도록 한다. 그리고 상대 줄잡이와 서로 고함을 질려서, 줄을 다음으로 옮긴다.
모를 심는 일이 허리도 아프고, 반복된 수작업이다. 그래서 모심는 분 중에 노래를 선창 하는 분이 있다. 그럼 모든 분들이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힘든 일을 즐겁고 재미난 일로 승화시킨다. 모심기는 아침 일찍부터 하기 때문에 오전 10시경 되면 배가 고프다고 신호가 온다. 집에 있는 주인아주머니는 음식을 준비한다. 주로 여성분들은 국수, 남성분들은 막걸리를 드신다. 논두렁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로 이야기 꽃을 피우곤 한다. 약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모내기를 시작한다.
너는 어머니 심부름. 줄잡이 등으로 가정실습 기간을 알차게 보낸다. 지금 고향에 가면 이러한 풍경은 없다. 모심는 기계 한ㆍ두대가 논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립다. 그 시절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