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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Dec 10. 2024

스물하나

심술쟁이

네가 없이 보내는 새해가 벌써 5번이나 반복되었다. 너는 아직 열여섯에 머물러있는데 나 홀로 바뀐다는 사실에 매년 느끼는 거지만 다시 한번 마음이 찡해온다. 그래도 내 옆에 있어주는 남자친구에 예전보다는 괜찮다고 느꼈다. 새해가 시작되고 방학은 되었지만 바로 시작된 초콜릿공예프로그램에 굉장히 바빴다. 이런저런 기술들을 배워 금방 따라 하는 내 모습을 네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을 마칠 때면 매일같이 날 데리러 와주는 남자친구에게 수업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쫑알거렸다. 이제는 네게 먼저 내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참 이상했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 일상을 먼저 공유한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침에 수업을 가던 중 정말 오랜만에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아주 조금씩 쌓여가는 눈을 쳐다보며 네 생각을 잠시 하다가 남자친구를 불렀다. 남자친구가 눈길이 미끄럽다며 학교에 데려다줬다. 함께 가는 길에 눈사람도 만들었는데 눈사람을 만지며 네 생각을 했다. 우리가 추운 겨울이 될 때마다 했던 얘기 때문이었을까? 매해 겨울마다 눈이 제일 많이 오는 곳으로 놀러 가자 얘기하고선 서로 제일 큰 눈사람을 만들 거라고 투닥거리던 우리였는데 너는 이제 없고 나 홀로 그런 생각에 잠기는 게 꽤나 울적해진다. 네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잠시 꽁꽁 언 내 손을 잡아주는 남자친구에 너를 애써 마음속에 집어삼키고선 웃어넘겼다. 수업은 일주일 동안만 진행되었기에 수업이 끝나고선 본가로 돌아갔다. 본가에 돌아가자마자 옷장문을 열고선 예전에 처박아두었던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냥 버리고 싶었다. 네가 그리워 매일밤 울던 안쓰러운 나를 지금이 아니면 놓아줄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커져버린 옷들을 차곡차곡 하나둘씩 정리해 버렸다. 정리가 끝나고선 옷이 들어있었던 빈자리를 보며 시원섭섭하다고 느꼈다. 책상에 앉아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쓰니 예전에 느꼈었던 마음들이 물밀려 오며 가슴이 일렁거렸다. 상자에 작년에 썼던 다이어리와 함께 편지를 집어넣었다. 방학 동안 날 보러 와주는 남자친구와 자주 놀았다. 단짝친구도 다시 학교에 돌아가게 되면 못 보니 매일같이 만났다. 그런 하루들을 보내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 너와 함께했었던 놀이터로 향했다. 출입금지표시가 되어있어 가까이 가보니 거의 다 철거되고 빈 공터만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했던 모습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며 마음이 아파온다. 네가 없이도 모든 것들이 계속해서 바뀌어 나간다는 게 참 잔인하다. 우리가 함께하며 추억하던 곳들도 다 바뀌어 버리고 있다. 네가 사라지고 소중히 생각하던 너와 내 추억들마저도 바뀌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진다. 이제는 뭘 보고 어떻게 널 추억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정답을 알고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학교로 다시 출발하며 생각했다. ‘이제 남은 너와 나의 추억이라곤 내 기억뿐인데 이 기억마저 없어지면 어떡하지?’ 기숙사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선 다이어리를 펼치고선 펜을 들었다. 이젠 우리의 추억이라곤 내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고 내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의 추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며 무섭다고 끄적이다 다이어리를 덮고선 던져버렸다. 반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2학년이 되어 개강을 했다. 평소와 비슷한 일상을 보내다 대회를 나가보지 않겠냐는 이야기에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주제를 어떤 걸 해야 할지 고민하다 네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너와 떠들던 이야기들을  곰곰이 떠올렸다. 우리가 자주 토론하던 외계인의 존재유무가 떠올라 그냥 행성으로 만들기로 정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던 내 말에 또 헛소리를 한다던 너였다. 그러면 항상 나는 네가 외계인한테 잡혀갔으면 좋겠다고 저주할 거라 했는데 내가 그렇게 장난을 쳐서 네가 떠난 걸까? 아닌 건 알지만 자꾸만 그렇게 의미 부여하는 내가 미워진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저녁 늦게까지 대회준비를 했다. 이왕 하는 거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완벽을 바라며 대회를 준비해서였을까 예민해지니 평소보다 잠을 더 못 잤다. 밤을 새우고 학교를 간 적도 많다. 남자친구가 괜찮냐는 말에 그냥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한 달간의 대회준비가 끝나고선 작품을 제출하려 하자 대회작품의 제목을 정해야 한다는 말에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고서 만들어 낸 제목은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였다. 준비하는 동안은 예민해져 괜히 했나? 후회도 했지만 끝나고 나니 대회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꽤 뿌듯했다.  일주일 뒤 금메달 수상을 했다. 수상을 하고선 기숙사에 제일 먼저 올라가 네게 이 소식을 전했다. 이 소식만큼은 내 꿈을 제일 먼저 응원해 주던 너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 후 여름방학이 되고 다시 시작된 초콜릿공예프로그램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쉴 틈 없이 현장실습을 나갔다. 실습을 다니며 바빠지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힘들긴 했지만 꽤나 즐거웠던 거 같다. 실습이 끝나갈 때쯤 네게 편지를 썼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날 기특해줄 네가 없어 슬프긴 하지만 울지 않아 볼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와도 1주년이 되었다. 여행을 가는 날 폭우가 왔다. 계속 내리는 비에 괜히 네가 심술을 부리는 것만 같아 그날 온 비가 그다지 싫지만은 않았던 거 같다. 비가 너무 내려 숙소에서만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즐거웠다. 2학기때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서 자취를 했다. 나 혼자 산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매일 와주는 남자친구에 나중엔 그냥 동거를 했다. 수업이 마칠 때쯤이면 데리러 오는 남자친구와 집으로 가 함께 저녁을 먹고선 매일 산책을 했다. 함께 지내다 보니 네가 떠올라 마음이 힘들어지면 표출할 수 없어 괴로웠다. 괴로운 마음이 쌓이다 보니 점차 짜증을 내게 되었다. 한 날 나에게 힘드냐고 물어봐주는 남자친구에게 대답하기 싫다고 얘기했다. 네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 후 계속 견디다 보니 병이 났는지 두통이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계속 무언가를 하다가도 깜빡거리는 기억에도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예민한 나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학원친구가 계속해서 감정적으로 나를 막대하는 행동에 화가 나서 손절도 쳤다. 상식선에서 행동했다면 참았을 텐데 이제는 도저히 이해해주고 싶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아마 이 친구는 당황했겠지만 나는 4년 동안 지내며 이 친구에게 불만을 단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에 그냥 아무 말도 않고 끊어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수업을 듣던 중 두통이 너무 심해져서 조퇴를 했다. 조퇴를 했다는 내 말에 한 걸음 달려와준 남자친구와 내과로 갔다. 내과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귀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비인후과로 가보라 했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청력검사를 받았다. 문제가 없다며 의사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선 내과에서도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으면 신경과로 가봐야 할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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