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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Nov 26. 2024

스물

껍데기뿐인 나

그렇게 널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지냈다. 친구들과 여전히 놀러 다니긴 했지만 네 생각도 많이 했다. 네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계속 내 마음이 공허하다. 네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느껴졌다. 한 날은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끽해야 한두 잔 마신 술 때문일까 갑작스레 네가 너무 그리워져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거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하고선 수저를 조용히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담벼락과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사이에 가서 쭈그려 앉아 고개를 파묻고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정말 서럽게 울었다. 그때 나랑 같이 다니던 애들 사이에 오빠가 한 명 있었다. 그 오빠는 내 옆에 앉아있었는데 내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내가 걱정돼서 나를 찾으러 나왔다가 내 모습을 발견하고선 나를 찾는 애들을 돌려보냈다. 그 후 다시 돌아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옆에서 애들이 오는지 봐줬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아 주는 오빠에게 그저 고마웠다. 진정이 되고 들어가자 애들이 더 놀고 싶다며 이곳저곳에 가자는 말에 조용히 따라나서며 한숨을 쉬었다. 나 때문이었는지 좀 전까지 좋다며 대답하던 오빠가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다며 핑계를 대고선 가는 길에 날 기숙사 밑에 내려주고 갈 거라며 날 차에 태웠다. 기숙사 밑에 도착해 태워준 오빠에게 고맙다고 전하고선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돌아오자마자 현관에 주저앉아 터진 눈물을 닦기 바빴다. 술을 마셔서일까 네가 보고 싶은 마음에 서러워져 눈물이 나왔다. 최근 괜찮다고 느꼈었기에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나 보다. 다이어리에 우는 걸 들켜 심란해져 네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기에 마음을 억누르고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오빠에겐 우는 모습을 들켰다는 생각에 보기 껄끄러워져 피해 다니려 했다. 하지만 기숙사 바로 옆에 카페가 있었는데 기숙사를 내려올 때면 매번 그곳에서 항상 오빠와 마주쳤다. 어색할 줄 알았던 오빠는 매번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음료를 사준다던지 장난을 쳤다. 그런 오빠의 모습이 고마워져 나도 그냥 평소처럼 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기간이 찾아왔었기에 금세 잊어버렸다. 난 공부를 하면서도 매일 열심히 다이어리에 오늘 있던 일들 그리고 네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었다. 시험이 끝나는 날 애들 사이에서 분명 나와 같이 놀던 친구 중 한 명인 남자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 친구와는 친하지 않았지만 접점도 없었기에 장난이겠거니 그냥 웃어넘기고선 네게 그 이야기를 적었다. 적으며 넌 질투가 많은 아이였으니 이런 엮는 일은 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마 네가 내 옆에 있었더라면 질투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끝나자 반회식을 하자고 생떼를 부리는 우리 반 친구들에 반 회식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날 좋아한다던 친구가 근처에서 게임을 할 거라며 회식이 끝나면 전화를 하라고 했기에 지금 시간이 4시인데 11시까지 있겠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회식장소까지 데려다준 녀석을 보내고 난 뒤 들어갔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잘 따라와 줬으면 좋겠다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식상한 내 말과 함께 회식이 시작되었다. 1차는 그냥 호프집에서 하고 2차는 주점으로 갔는데 1차까지는 애들을 챙기느라 술을 하나도 마시지 않았다. 어쩌면 네가 그리워져 또 울까 봐 안 마신 것도 맞다. 1차 회식이 끝나고서 취한 몇몇의 애들을 집에 보내고 주점에 올라가자 아주 멀쩡한 사람들만 남아있었다. 우리 반에는 오빠들이 꽤 많았는데 우리 반 오빠들이 꽤나 술을 잘 마셨다. 나보다 나이 많은 오빠들이 잘 부탁한다며 주는 술들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열심히 받아마셨다. 술을 못 마시는 내가 짧은 시간 동안 소주 두 병의 분량과 맥주 한 병 정도의 술을 마셨다. 완전 만취상태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나에게 금세 다가온 온 친구를 보며 네 생각을 했다. 네가 보고 싶은 마음에 울컥했지만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집어삼키고선 그 친구에게 장난을 쳤다. 만난 건 기억나는데 그 뒤의 필름이 뚝 끊겨 기억이 없다. 그 당시 애들 얘기를 들어보면 코로나19 때문에 기숙사에 살지 않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어 학원친구에게 전화를 해 친구가 중간에 밖에서 놀다 날 데리러 왔다고 들었다. 근데 내가 술을 먹은 탓일까 그 당시 체온감지센서에 열이 너무 난다고 떠서 12시까지 열을 식히다 들어오라고 사감선생님께서 말씀하셨고 친구는 날 버리고 갈 수 없어 나와 함께 있어줬다고 들었다. 평소에 나는 숙취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생각이 바뀌었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니 속이 울렁거려 정신을 차리고자 물을 마시고선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려 머리를 묶고 거울을 봤다. 웃긴 건 그 와중에 화장이 하나도 남지 않게 엄청 뽀득뽀득 씻었다는 것과 네게 형체는 알아볼 수 없지만 일기는 쓰고 잤다는 게 너무 웃겼다. 혼자 빵 터져 웃으며 내가 쓴 글 밑에 물음표를 그리고서 폰을 켜자 어제 데려다준 친구에게 괜찮냐는 연락이 와있었다.  ‘괜찮~’이라며 답장으로 보내고선 날 방에 집어넣어 준 학원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꽤 많이 친했던 지라 괜찮다는 친구의 답장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책상에 앉아 네게 다시 일기를 썼다. 만취를 하면 나는 엄청 뽀득뽀득 씻는 거 같다고 취한 와중 네게 일기도 썼다며 알아보지는 못해 유감이지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쓰며 혼자 한참 웃었다. 그 후 수업을 마치고 날 데려다줬던 친구와 몇 번 따로 놀았다. 어쩌다 보니 그 아이랑 사귀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은 따로 들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으나 만나보면서 생각하라는 말에 그냥 알겠다고 대답을 해 만나게 되었다. 그날밤 네게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고 적으며 밤새 생각했다. ‘내 주변 모두 다 네가 아는 내 모습은 모르는데 그럼 날 좋아하는 건 껍데기인 나인 건가’라고 생각을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만나던 친구와는 정말 얼마 안 가서 너무 잘 맞지 않다고 서로 느꼈기에 그냥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네게 헤어졌다고 알리고선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내용을 끄적이다 울었다. 여러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나의 모든 걸 아는 건 너뿐인데 그런 네가 존재하지 않다는 게 슬퍼서였을까 아니면 나의 이런 모습을 아는 사람이 이제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슬퍼서였을까. 내가 하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는 게 너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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