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너와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후에도 자주 바다를 보러 나 혼자 자주 떠났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나 공허해질 때면 바다에 가서 또다시 신발을 벗고 걷다 발이 아파올 때쯤 쭈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네 이름을 쓰고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모래에 끄적였다. 파도 때문에 네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꽤나 마음이 아팠지만 끝없이 펼쳐져있는 바다를 쳐다보면 숨통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또한 커다란 파도소리가 요동치는 내 마음보다 크다는 생각에 조금씩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조금씩 살아가다 면접이 다가와 면접준비를 했다. 거울을 보며 면접준비를 하면서 내가 너무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나에게 스스로를 제일 좋아하고 아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면접준비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갑작스럽게 급격히 살이 빠졌다. 힘들어서였을까 입맛도 없었다. 그냥 살이 빠지니 다이어트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운동도 종종 나갔는데 정말 짧은 시간 동안 26kg이나 감량했다. 이 정도면 얘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져버린 살에 옷장에 들어있던 옷들이 거의 다 맞지 않았다. 옷장에 들어있는 커져버린 옷을 다 버리려고 했으나 널 그리워하던 안쓰러운 내 모습을 다 떠나보내는 것만 같아 옷장 속에 다시 처박아뒀다. 너에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모아둔 채로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옷을 처박아둔 채로 새로운 옷을 사서 채워 넣었다.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짧은 치마들과 반바지를 샀다. 새로운 옷을 입어 보고선 거울 앞에 서서 내 사진을 정말 오랜만에 찍었다. 네가 이 모습을 보면 예뻐졌다며 좋아할까? 아니면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냐고 걱정해 줄까? 다정한 너는 아마도 날 걱정해 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씁쓸하게 웃다가도 이제는 날 걱정하는 네가 없다는 생각에 슬프게 울기도 했다. 그렇게 살이 빠진 새로운 모습으로 면접을 봤다. 평소 일상생활에서는 말을 잘했기에 면접은 수월하게 봤다. 말을 잘하게 된 것도 네 덕분이고 성격이 바뀐 것도 네 덕분인데 네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슬프게 한다. 아직까지도 너에게 얽매여있는 내가 싫다가도 내가 널 어떻게 잊겠냐며 마음을 다 잡았다. 마지막 대학교 합격발표가 나는 날 합격발표를 기다리며 너와 내가 함께하는 스무 살을 상상했다. 같이 술을 마시는 모습도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도 장난을 치며 여행을 가는 모습도 상상했다. 상상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나를 자꾸만 무너뜨린다. 눈물이 나려 할 때쯤에 대학교에서 합격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가 왔다. 얼떨떨했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넣었던 일반대학교도 그리고 전문대학교도 다 합격했기 때문이다. 합격소식을 듣고선 네 생각을 했다. 너도 지금쯤 나와 함께 했다면 서로의 대학교 합격소식에 같이 울고 기뻐하며 스무 살을 꿈꿨을 텐데 하며 착잡한 마음에 다이어리가 아닌 편지지를 꺼내 너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끄적였다. 네가 나에게 준 사랑과 조언이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편지를 간결하게 쓰곤 상자에 넣었다. 그립다고 보고 싶다는 말도 적고 싶었지만 그 말을 적으면 괜히 눈물이 날 거 같아 적지 않았다. 학교를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되어 방문을 열고 나가 엄마, 아빠에게 다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때쯤 엄마의 상태가 완전하게 괜찮아졌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많이 괜찮아졌기에 예전과 비슷한 집안분위기로 돌아왔었다. 합격소식을 들은 엄마, 아빠는 나보다 더 좋아했다. 나를 대견해하며 나의 의견을 물어보는 엄마, 아빠와 한참을 대화를 했다. 전문대학교에 진학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만히 앉아 공부를 하다 네 생각을 곱씹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더 나을 거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의 세 번째 기일이 다가오며 나는 고민했다. ‘너를 보러 갈까?’ 막상 가려고 하니 두려워졌다. 너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 정말 현실이 와닿을 것만 같았다. 네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보러 가서 널 마주했을 때 울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해 옷을 꽉 잡고선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을 하니 울더라도 가야 한다고 네가 날 보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쁜 옷을 꺼내 입고 꾸민 후 아침 일찍 첫 차를 타고 가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안개꽃을 사들고선 택시를 타고 앞까지 가긴 했지만 앞에 서있기만 하다 결국 들어가지는 못했다. 전하지 못한 꽃을 손에 쥐고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미워하면 어쩌지? 내가 널 보고 싶지 않아 한다고 네가 오해하지는 않겠지? 오만가지의 생각에 머리가 아파와 그냥 눈을 감았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멈춰 서고 버스에서 내려 꽃을 꽉 쥐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너에게 편지를 썼다. 전하지 못했던 꽃도 한주먹 잡아 뜯어서 봉투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상자에 편지를 집어넣고서는 볼품없이 남은 꽃을 쳐다보며 울어버렸다. 시간이 흐르며 다른 친구들은 스무 살을 기다리기만 하는데 나는 스무 살이 오는 게 두려웠다. 1월 1일이 되기 전 함께 만나서 술을 마시자는 친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네게 편지를 미리 썼다. 너와 함께 보내는 스무 살을 상상하던 내용을 끄적이고선 다이어리와 함께 상자에 집어넣었다. 너와 함께 상상하는 것이 아닌 나 홀로 너와의 스무 살을 상상하던 열아홉은 너무나도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