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Nov 19. 2024

스물

설렘과 죄책감

곧 스무 살이 될 나의 얼굴을 친구가 꾸며줬다.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새벽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네게 새해 인사를 속으로 가볍게 보내고서 술집으로 들어갔다. 새벽이 되어서도 이렇게 밖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집이 엄한 편이라 이런 식의 외박을 한다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솔직히 조금 떨렸다. 친구들과 첫 술로 칵테일바에 가서 아주 예쁜 술을 마셨다. 도수가 낮은 편이라 그냥 음료수 같은 맛에 맛있었다. 도수가 낮은 술도 계속 마시다 보니 점점 얼굴에 열이 오르며 볼이 뜨거워졌다. 한참을 마시다 사라진 친구들에 혼자 밖에 나가 열을 식히며 쭈그려 앉아 잠깐동안 네 생각을 했다. 너는 술을 잘 마실까? 생각하다 다시 나타난 친구들에 나의 생각을 넘겼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에 네가 없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친구들과 있었기에 티를 내지 않았다. 소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셨다. 과학실 알코올램프맛이 나서 인상을 찌푸렸다. 해가 뜨기 전 해맞이를 보러 가서 본 하늘이 너무나도 예뻐서 사진을 찍고선 네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뜨고 한참 지나 집에 들어가자 엄마와 아빠는 일을 나간 건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찝찝한 마음에 씻고 일기를 쓴다. 1월 한 달 동안 정말 진절머리가 나게 지겹도록 술약속이 있었기에 거짓말안치고 31일 동안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며 느낀 점은 난 술을 정말 잘 못한다는 것이다. 맛도 없었다. 만약 네가 지금 내 곁에 남아있었다면 같이 취했을까? 아니면 술을 너무 잘해서 술도 못 마시는 게 술 마시러 다닌다고 잔소리를 했을까? 궁금해져 다이어리에 술도 깨지 않은 채 취한 채로 끄적끄적 적는다. 계속해서 술을 마셨지만 술은 밤에 마시러 다녔기에 낮에는 뭐라도 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다 그냥 바로 다음날부터 학원에 가겠다는 말을 하고선 바리스타 학원도 다녔다. 1월 말에는 나와 아주 잘 맞는 친구와 당일에 타투가 가능하냐고 물어보고 급발진으로 우정타투도 했다. 내 기억 속 열여섯의 너는 타투한 예쁜 언니들을 보고 예쁘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한테도 예쁘다고 해줬을까 아니면 너랑은 왜 같이 타투를 안 하냐며 하자고 질투를 했을까 하며 웃고 넘겼다. 네 생각을 하는 것이 이제는 그렇게 슬퍼지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일탈들이 신나 너에게 신기한 일들을 알려주기 바빴다. 2월이 되고 졸업식을 했다. 새로운 폰으로 바꾸고 나서 나에게 무례했던 친구들을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 그러고선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괜찮았던 친구한테만 번호를 알려주었다. 졸업식에 엄마는 회사 일이 바빠서 못 왔지만 아빠가 왔기에 괜찮았다. 심지어 뿌듯한 아빠의 표정뒤로 보이는 꽃다발에 아빠에게 다가가자 아빠는 내 몸의 반보다도 큰 꽃다발을 건네었다.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마 오늘 내 꽃다발이 학교에서 제일 컸겠지?’ 하며 네게 어이가 없다고 편지를 쓰고 제일 예쁜 꽃을 몇 개 뜯어 편지봉투 속에 넣었다. 그 편지봉투 위에는 바뀐 내 전화번호를 적었다. 네가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알려주고 싶었기에 그냥 적었다. 네가 없이 졸업을 했다는 게 슬펐지만 그래도 웃으며 편지를 상자에 담고 저녁이 되기 전 타투를 같이 한 친구와 학원친구를 만났다. 우리 셋은 친했지만 다 다른 학교였기에 졸업식을 따로 해 아쉬움에 만나게 되었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프린터해 상자에 또 담았다. 그렇게 빠르게 2월이 지나 3월이 되고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코로나19가 심해지며 온라인수업을 했지만 우리 학과는 실습학과였기에 두 달 정도만 온라인 수업을 하고선 먼저 학교로 들어갔다. 수업시간표가 아침 수업이 있어 통학이 힘겨울 거 같아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코로나19로 인해 2인 1실을 혼자서 썼다. 외로울까 걱정되기보단 내가 혼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만약 네가 그리워져 울게 되어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학원친구가 날 따라 같은 학교에 와서 내 바로 옆방을  썼다. 그래서인지 외롭지도 않았다. 다른 학교였던 친구와 같은 학교를 다니며 함께 수업을 가니 뭔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을 들어가 온라인에서 보던 친구들을 실제로 보니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첫날 어쩌다 보니 반을 대표하는 과대가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올라와 다이어리를 펼치고선 과대투표에서 몰표를 받았다고 나 좀 멋있는 거 같다며 네게 하고 싶은 말을 끄적였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건 고등학교 때 놀러 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즐거웠다. 친구들 중 차가 있는 애들이 있어서 어디든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뽈뽈거리며 다니는 게 떠나고 싶을 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보고 싶던 바다를 보러 가고 가보고 싶었던 곳을 함께 엄청 돌아다녔다. 그러다 네 생일을 까먹었다. 매년 네 생일에 꼭 생일축하한다고 한 마디씩 남겼었는데 이걸 왜 까먹었나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까먹었다는 사실을 일주일이 넘게 지나고서 달이 바뀌며 알아차렸기 때문에 변명 조차 할 수 없다. 그날 밤 네게 미안해져 죄책감에 밤새도록 울었다. 지금까지 울지 않았던 눈물까지 다 쏟아낸 거 같다. 너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나였는데 너를 까먹다니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네게 미안해져 울다 울음을 그치려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고선 편지를 썼다. 서운해할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편지를 쓰고선 일기장에 달려있던 지퍼백에 넣었다. 그러고선 너를 잊지 않으려 포스트잇을 뜯어 네 이름을 크게 쓰고선 기숙사 독서실 책상에 붙였다. 널 잊지 않으려 엎드려 네 이름을 조용히 계속해서 읽었다.

화요일 연재
이전 09화 열아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