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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Oct 22. 2024

열일곱

네가 없는 가을, 겨울

여름이 지나 이제는 풀벌레 소리가 제법 나기 시작했다. 수기로 너에게 나의 안부를 남기는 것으로 나는 위안을 얻어 살아가려 하고 있다. 분명 나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숨은 쉬고 있지만 답답했고 밤이면 잠이 오지 않고 계속해서 네가 그립고 생각이 났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밤새도록 너와 나눈 문자를 지우지도 못한 채 과거에 살아가는 나였다. 그 나눈 문자들을 수십 번 수백 번 아니 수천번도 더 읽으며 울었다. 그래도 그나마 네가 응원해 주던 내 꿈을 이루려 학원에 다닐 때는 숨통이 조금 트였다. 반드시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너의 응원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다. 꿈을 이룬 나의 모습을 네가 제일 예뻐해 주길 바랐는데 네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해서 갉아먹는다. 그래도 이루고 싶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너를 위해서 꼭 이루고 싶다며 다짐하곤 했다. 네가 사라진 나의 하루는 공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구멍이 더 커져만 간다. 네가 사라지고 나서 내 생활패턴이 참 나빠졌다. 네가 내 옆에 있었다면 걱정하며 화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늦게 잠에 들고선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를 가려 버스를 탄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굶지 말라던 너의 말이 괜스레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 계란이든 과자든 뭐라도 하나 사서 학교로 들어갔다. 재미없는 수업시간을 보내며 수업을 듣지는 않고 아까 사 온 간식을 몰래 까먹거나 하늘을 쳐다보며 바람이 부는지 확인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멍을 때리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멍을 때리다가도 학교 운동장으로 보이는 나무에 달린 나뭇잎이나 나뭇가지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네가 왔다 간 것만 같은 생각에 노트를 꺼내 들고선 몰래몰래 네게 편지를 조금씩 꾹꾹 눌러쓴다. 점심시간이면 밥을 먹는다. 다 먹고선 친구들과 산책을 했는데 산책을 하며 평소와 같이 네게 보여주려 구름사진을 찍고 꽃 사진을 찍었다. 종이 치면 뛰어들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남은 수업을 더 들으며 졸기도 하다 하교를 할 때면 나 홀로 쓸쓸하게 가방을 챙겨 나와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으로 걸어가며 너에게 들려주고 싶던 학교에서 있던 일들을 폰을 꺼내 메모장에 들어가서 끄적끄적 적었다. 학원에 도착하고 나서 작품을 만들고 난 후 못 만들든 잘 만들든 너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못 만들어도 점점 성장해 나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 좋아해 줄 너인걸 알기에 그냥 찍어 남긴다. 학원에서 만든 빵들을 챙겨 나오면 해가 짧아져 어두워진 하늘이 보인다. 그런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너와 통화하던 나날들이 생각나 울컥하지만 눈물을 억지로 집어삼키고선 얼른 집에 가 씻고 프린터기 앞에 앉아 오늘 찍은 사진들을 인쇄한다. 인쇄물을 챙겨 방으로 돌아온 난 수기로 너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며 사진들을 풀로 붙이고 상자 속에 모아둔다. 그렇게 긴 하루가 마무리되고서는 침대에 누워서는 너와 나눈 문자를 계속해서 읽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잘 지내냐는 너의 연락이 없어서였을까 학교생활에 스스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의문을 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잘 적응이 되는가 싶더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날 갉아먹어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학원으로 인해 나 홀로 7교시까지만 하고 학교를 나왔기에 내 친구들은 나 없이 8교시를 듣고 석식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그나마 나와 제일 친하던 친구라고 생각했던 친구는 어느새 다른 친구들과 더 친해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었기에 그냥 티를 내지 않았다. 어차피 곧 있으면 1학년이 끝나는데 괜히 이상하게 행동해서 친구들과 멀어지고 다투게 되는 것이 피곤할 것만 같아 피해버리고 도망쳤다. 친구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모든 이야기에 끼지 못하고 그냥  앉아있었고 애들이 웃으면 따라 웃는 게 다였다.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는 뭐라고 나에게 답을 해줬을까? 친구들이 나빴다며 내 편을 들어줬을까? 아니면 나에게 너무 신경 쓰지 마라며 날 다독여줬을까? 네가 없는 이 세계에서 나는 계속해서 너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이제는 정말 추워지려는지 비가 쏟아지려던 하늘을 보면서도 네 생각을 했다. 비가 오는 날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던 너와 나의 호들갑이 생각나 조금 웃음이 나다가도 슬퍼졌다. 비를 정말 죽도록 싫어하던 우리는 그래도 함께여서 그나마 괜찮았는데 이제는 비가 오는 날이면 누가 이렇게 같이 싫어해주겠냐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더 공허해진다. 추워지는 날씨와 네 기일이 다가오며 충동적으로 네가 보고 싶은 마음에 죽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아주 예전에 네가 천국과 지옥을 믿냐며 실없는 농담을 할 때도 그딴 게 어디 있냐며 죽으면 끝이라고 대답하던 내가 너로 인해 천국과 지옥 그리고 다음생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너를 다시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지금은 무너져 내린 것들이 너무 많기에 참았다. 너의 기일이 다가온 날 학교를 빠지고 갈 수가 없었기에 평소와 같이 모든 일과를 마치고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놀이터 미끄럼틀에 올라가 앉아서 두 손을 모아 네게 기도를 했다. 네가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아주 만약 네가 내 모습을 봤다면 나에게 뭐라고 했을까? 안 왔던 내가 너무 밉다고 했을까? 아니면 오늘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여기서 뭐 하냐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네가 아니라서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슬펐다. 너에게 기도를 하고 난 그 후 일상에서는  문과로 갈지 이과로 갈지 정하고 제과제빵시험을 준비한다고 바빴었던 거 같다.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열일곱의 내 모습에 대해 돌이켜보며 생각해 봤다. 그냥 열일곱의 나의 생활은 이런저런 많은 결정을 해야 하니 함께 고민을 해주던 네가 더 보고 싶었던 거 같다. 네가 없이 보낸 1년이 너무 길고 너무나도 낯설었다. 자꾸만 이곳에 없는 너를 부르고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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