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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Oct 08. 2024

열여섯

바람이 되어버린 너

통화를 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머뭇거리는 너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고 묻자 머뭇거리며 수술을 받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너의 말을 듣고선 눈물을 참았다. 교복을 꽉 쥐고선 애써 괜찮은 척했다. 나보다는 네가 더 두려울 테니까 내가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몇 분 동안 침묵이 유지되자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며 어서 집에 들어가라는 네 말에 지금 우리 집 바로 앞이라고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고 나에게 씻고 다시 연락을 달라는 너였다. 네 말에 전화를 끊고선 그네에 앉아 한참을 울다 집에 들어갔다. 씻고 나서는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네 목소리를 들으면 다시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기에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받은 너는 왜 전화를 안 하냐며 툴툴거리다 사진이라도 보내달라며 답장을 보냈다. 너의 말에 최근 찍은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한결같이 놀리다가도 마지막에는 예쁘다고 해주는 너의 말이 네가 참 좋았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연락을 주고받은 우리였다. 너와 함께 뜬 눈으로 밤을 보내다 해가 떴다. 해가 뜨니 수술을 준비하러 간다는 너의 문자가 오고 나서 얼마 안 가 전화가 걸려왔다. 혹여나 눈물이 나서 널 걱정시킬까 봐 너의 전화를 받지 않자 너는 나에게 목소리를 듣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너의 그 말에 나는 또 다시 걸려온 전화를 냉큼 받았다.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무서웠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수술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수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다. 나에게 금방 다녀오겠다며 머리에 땜빵만 나는 거라고 울지 마라고 말하는 너의 말에 애써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에 너는 내가 학교를 마치기 전에 일어나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꼭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너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너를 보냈다. 그렇게 수술을 받으러 가고 난 뒤 녀석이 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나의 일상이 안 돌아가지는 않았다. 평소와 같이 학교에 갔고 밥을 먹었다. 친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다 학교를 마치고선 학원에도 갔다. 하지만 나에게 문자를 보내지도 전화를 걸어주지도 않는 너다. 학교를 마친 후 네게 먼저 전화를 해봤지만 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초반에는 전화를 계속 걸었지만 깨어난 후 네가 나와 한 약속을 안 지킨 것을 미안해할까 봐 그 후에는 문자만 열심히 보냈다. 그렇게 너를 기다리며 문자를 하염없이 세 달 정도를 보냈다. 중간중간 혹시나 네가 깨어났을까 전화도 걸었었다. 여전히 답이 없는 너에게 나는 평소와 같이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에 대한 일상연락을 매일 꾸준히 너에게 보냈다. 네가 수술을 받고 얼마 안 가서 나의 생일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네가 제일 먼저 축하해 주던 내 생일인데 왜 네가 축하를 안 해주냐며 얼른 일어나서 축하해 달라고 생떼도 부렸지만 너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기말고사도 치고 날씨가 너무 추워져 패딩도 꺼내 입었지만 넌 오지 않는다. 그렇게 기다리던 와중 열여섯의 마지막 달인 12월의 중순 너에게 문자가 왔다. 분명 떠 있는 번호는 네가 맞았지만 연락은 아줌마에게서 왔다. 네가 떠났다며 계속해서 기다릴 수는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장례식장이 여기서 먼 건 알지만 올 수 있으면 꼭 와달라고 문자가 왔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거짓말 같다는 생각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줌마와 전화통화는 했지만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장례식장에 가지도 않았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너에게 갈 생각조차도 못했다. 그게 너의 마지막이었을 텐데 마지막을 함께 해줬어야 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도망쳐버렸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고서 너에게 전화가 왔다. 너의 목소리가 들릴 거라는 생각에 다급히 전화를 받았지만 통화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네가 아니다. 너의 폰 속 앱들의 비밀번호가 뭔지 아냐고 물어보는 아줌마에게 안다고 대답했다. 문자로 알려달라는 아줌마의 말씀에 전화를 끊고선 문자로 내 생일을 보낸다.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했기에 나는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네가 바람이 되어버린 그 겨울. 나는 네가 바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계속해서 연락을 보냈다. 아니어야만 했으니까. 너에게서 답장이 올 거 같았으니까. 그렇게 내 열여섯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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