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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Oct 01. 2024

열여섯

바람이 되기 전의 너

전화를 하다 잠이 들어버린 나는 휴대전화를 충전시키지 못해 아침에 일어나니 폰이 꺼져있었다. 평소 자주 깜빡거리는 나에게는 종종 있었던 일이라 어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며 폰을 충전시켜 뒀다. 그리고 학교에 출발하며 폰을 켜자 이미 일어났는지 너에게서 부재중전화 한 통과 함께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너 또 폰 충전 안 시키고 잤지’ ‘나 검사받으려고 일어났는데 너무 피곤하다’라며 연락이 와있었다. 너에게 온 문자를 보며 통화를 걸려다 검사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자에 답장을 남겼다. ‘엄청 일찍 일어났네. 눈은 어때? 나 지금 학교 가는 중이야. 검사받고 있어?’ 네 답장을 기다리며 폰을 붙들고 학교에 걸어갔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해 폰을 제출하려다 네가 심심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공기계를 제출해 버리고선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몰래 밀어 넣었다. 쉬는 시간마다 학교친구와 함께 도서관 제일 구석진 곳으로 가서 쭈그려 앉아 학교친구는 책을 읽고 나는 10분간 너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왜 폰을 안 냈냐며 양아치냐고 시비를 거는 녀석과 장난을 치고 그 후에는 밥을 안 준다는 둥 아직 검사가 남아있어서 금식하라는데 배가 너무 고프다는 너의 문자에 걱정을 하다가도 실없이 웃었다. 아픈 와중에도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네가 참 너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선 배고프다는 네게 퇴원을 하고 나면 아저씨한테 말해서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서 바로 너에게 통화를 걸었다. 너는 정말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아픈 건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고 네가 걱정이 되었다. 나는 평소와 같은 일상생활을 보내는데 너는 병원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이상했다. 다음날이 되어 주말이 찾아왔다. 나는 평소와 같이 하루를 보낸다. 점심쯤에는 네게 전화가 왔는데 병원밥이 너무 맛없다는 너의 투정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밥을 제일 좋아하는 너에게 맛있는 걸 꼭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자 금세 살아나는 목소리가 제법 귀엽다가도 네기 아프다는 사실이 날 속상하게 만든다. 학원에 가야 해서 전화를 끊고 수업을 들으며 이런저런 문자를 나눠 받다가 선생님에게 걸려 혼이 났다. 학원을 마칠 때쯤 결과를 들으러 간다는 네가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한참 동안 연락을 보내지 않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을 하기도 잠시 집에 들어가려던 나에게 걸려온 너의 전화를 바로 받자 기다렸냐며 능글맞게 구는 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가라앉아있고 잠겨있다. 걸음을 옮겨 집 옥상으로 올라가서 네게 검사결과가 어떻냐고 물었다. 나의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수술을 받으면 괜찮아진다는 너의 말과 그 후 하는 너의 장난이 평소와는 다르게 나에게 다가온다. 너의 그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덤덤한 말투 뒤에 가라앉고 잠긴 목소리가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들었다. 속상한 마음에 참을 새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벅벅 닦으며 너에게 왜 이렇게 덤덤하냐며 지금 수술받아야 한다는 애가 장난이 나오냐고 화를 냈다. 왜 우냐며 나를 놀리는 네가 밉다. 분명 장난치지 마라고 좀 전에 화를 낸 이 와중에도 장난이라니 한숨만 나온다. 울음을 그치자 쌀쌀해진 날씨에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는 나에게 너는 월요일아침에 수술자리가 비어 그냥 바로 하기로 했다고 얘기했다. 나는 너의 말에 괜스레 겁이 나 무섭다고 말했고 내 말에 녀석은 수술은 안 무섭다며 다만 머리를 여는 수술이라 머리카락을 밀어야 해서 땜빵이 난다고 걱정을 했다. 네가 그렇게 큰 수술을 받는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쿵 뛰며 불안해졌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선 전화를 끊은 지 1분도 되지 않아서 넌 나에게 보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고 그런 녀석의 문자에 나는 방에 불을 켜고선 바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울었던 탓일까 눈가가 빨갛고 아주 퉁퉁 부어버린 내 모습이었지만 너는 나를 놀리다가도 예쁘다고 해주었다. 일요일은 온종일 너와 통화를 하면서 보내고 다음 날이 되어 월요일이 되었다. 전 날 나와 통화를 하던 너는 학교에 가서 폰을 내고 다시 받을 때쯤이면 다시 깨어나 씩씩하게 나에게 전화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약속을 꼭 지키는 너였기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폰을 내고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물론 졸기도 했지만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폰을 켜자 수술이 캔슬돼서 다음날로 미뤄졌다는 너의 말에 바로 통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번 울리고선 바로 전화를 받는 녀석에 왠지 모르게 기운이 쭉 빠졌다. 한숨을 쉬자 늙는다며 아직 자신의 머리카락이 그대로라고 좋아하는 녀석에 더 어이가 없었다. 학원에 다녀오고 집에 가는 길에 다시 전화를 걸겠다 말하고선 전화를 끊고선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받고 있었지만 너에게 온 신경이 가있기에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수업을 마치고서 나온 밖은 밤이 되고 이젠 추워졌다. 집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돌렸다. 너와 통화를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하고 싶어 졌기에 그냥 우리가 함께 놀았던 놀이터 그네에 앉아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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