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Sep 24. 2024

열여섯

나의 비밀친구

열여섯 때 좋아한 상대가 내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아는가? 이 말이 정말 맞는 거 같다. 열여섯. 누구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시를 준비하고 다른 누구는 별생각 없이 그저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할 철없을 나이인 거 같다. 나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하고 싶은 꿈을 정하긴 했지만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저 포기하고 친구와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청춘을 즐기려 했다. 나에게는 비밀친구가 있었는데 중학생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연휴 때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였다. 타 지역에 살던 내 비밀친구는 연휴가 될 때면 종종 우리 동네로 매번 놀러를 왔고 나에게서 잊혀질 때쯤이면 다시 또 우리 집 밑에서 나타나 나를 부르며 찾아 주었다. 지금의 성격과는 완전히 다르게 중학생 시절의 나는 많이 소심했다. 그런 답답한 나를 매번 찾아주는 그 친구가 고마워졌고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어느새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건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서로를 아껴주고 좋아했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 친구와 나는 열넷에 알게 되어 열넷의 가을과 겨울 그리고 겁 없는 열다섯을 지나 열여섯이 되어서도 한 번을 끊기지 않고 꾸준히 매일같이 연락을 했다. 열여섯이 된 우리는 학교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서 좋다는 둥 고등학생이 빨리되고 싶다는 둥 학교에서 있었던 시답지 않은 일들과 꿈에 관련된 그런 이야기들을 매일같이 통화를 하며 나누었다. 그렇게 매일 같이 연락을 하다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여름이 되었다. 갑자기 요즘 들어 눈이 계속 아프다던 너에게 그냥 별 일이 아닐 거라며 “폰을 너무 많이 한 거 아니냐 공부 좀 해라~”라고 장난을 치며 말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도 계속해서 매일같이 눈이 아프다고 불편하다고 말하던 네가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아프다던 너에게 나는 많이 아프면 병원을 가보라고 말하며 뭐 큰 일이겠나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너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화라도 낼 걸 나는 매번 후회하며 산다. 매번 전화를 하며 눈이 아프다는 너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시간이 좀 더 흘러 춘추복을 입게 될 시점의 가을이 되어서야 병원을 갔다.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저녁을 먹다 도저히 안될 거 같아서 이젠 병원을 간다고 연락이 온 네 문자 한 통을 학원에서 받았고 수업 중인 나는 너에게 ‘웅 마치면 전화할게 연락 남겨줘’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학원을 마치고선 너에게 전화를 걸자 너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온 문자 한 통.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아저씨와 함께 가고 있다는 문자였다. 아주 늦은 밤 집으로 걸어가던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이게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오자 걸려온 네 전화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선 전화를 다급히 받았다. 전화를 받은 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나에게 넌 계속해서 장난을 쳤다. 너의 그 장난이 날 안심시켰던 탓일까 너에게 던지던 많은 질문을 멈추었다. 조금 차분해진 나는 너에게 상황을 물었고 너는 작은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 무언가 발견이 되긴 했으나 검사가 안 돼서 큰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답을 했다. 걱정을 하는 나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거라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 피곤할 텐데 빨리 씻고 다시 연락하라며 얘기하던 네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난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네가 조금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으니 거의 다 도착해 간다는 너의 문자 한 통이 왔고 나는 기다릴 테니 연락을 하라며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새벽이 다 되어 병원에 도착한 너는 피도 뽑고 MRI도 찍었다며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검사가 된다며 신기하다는 내용의 연락을 나에게 보냈다. 그 문자를 받아 네 걱정을 계속하며 답장을 보내는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너는 병원복이 너무 구려서 별로다 라던지 배고프다와 같은 시답지 않은 문자로 말을 돌렸다. 네가 말을 돌리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픈 와중에도 나 때문에 말 돌리려는 네가 너무 괘씸해져서 화가 났고 나는 그 문자의 답으로 “구려도 입어. 지금 그게 문제야?‘ 로 문자를 시작해 계속해서 잔소리를 보냈다. 계속되는 나의 잔소리가 섭섭했는지 답장도 안 한 채로 삐져있었던 너는 그 와중에도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나도 그 문자를 보며 너에게 뭐라 하던 잔소리를 다 지우고선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소곤거리며 통화를 하다 잠에 들었다.

이전 02화 열여섯의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