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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Oct 15. 2024

열일곱

네가 없는 봄, 여름

네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네가 있던 때처럼 평소와 같게 지내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열일곱이 되어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열여섯에 머물러있다는 사실이 나 홀로 열일곱이 되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매일 너에게 문자를 보냈다. 빠짐없이 매일 연락을 보냈지만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는 너를 나는 기다린다. 따뜻해져 가는 날씨와는 반대로 조금씩 마음 한구석은 시려온다. 나는 분명 너와 함께 보내게 될 열일곱을 상상했는데 나만이 존재하고 너만 없다. 네가 떠났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네가 없이 나 혼자서 고등학교를 입학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너는 나에게 항상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며 말하곤 했다. 열여섯이었던 나는 아직도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면서도 새로운 고등학교에 가서는 친구를 어떻게 만들지에 고민을 자주 했다. 그런 나에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너였는데 열일곱이 된 내가 보내는 문자에는 아무리 질문을 보내도 답장을 보내지 않는 너였다. 그런 널 기다리는 나의 세상이 조금씩 삐그덕거리고 있다. 그렇게 네가 없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환경이 되자 네가 너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네게 질문을 하고 고민을 보내도 넌 오지 않았기에 나 홀로 적응해야만 했다. 나의 열일곱은 너무나도 불안하다. 불안하다가도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면 우리가 했던 이야기들과 너의 말들을 두 눈을 꽉 감고 곱씹으며 견딘다. 네 말대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숨기지 않고서 날 표현하다 보니 어느샌가 내 주변에는 아주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들이 네 빈자리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분명 잘 지내고 있고 학교도 함께 잘 다니고 있었지만 모든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찾아오면서 나의 세상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이 해의 봄은 너무 따뜻했고 핀 꽃들이 너무 예뻐서 네가 계속 생각났다. 내 옆에서 분명 내가 더 예쁘다고 능글맞게 이야기할 네가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일렁이다가 뭔지 모를 마음들이 조금씩 물 밀려오기도 했다. 봄은 금세 지나 꽃이 다 떨어져 버리고선 풀이 가득한 여름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 여름 매미가 시끄럽게 울 시점에 엄마가 무너져버렸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느 누구보다 강하던 엄마가 매일 밤마다 몰래 운다. 몰래 우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숨기고 싶어 하는 엄마를 위해 모르는 척하고 그저 씩씩하게 잘 지내는 척을 하는 게 다였다. 잘 지내는 척을 하면서도 '내가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나 혼자서 씩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네게 문자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네가 내 옆에 있는 거 같아 그럴 수 있었다. 네가 오지 않자 점차 너의 목소리와 얼굴이 나에게서 조금씩 잊혀져간다. 잊혀져갈 때쯤 너의 번호가 사라졌다. 그 번호가 사라지고 나서야 네가 떠났다는 사실이 인지가 되면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보려 했지만 문자가 보내지지 않았다. 고작 번호 하나 사라진 게 다인데 나의 세상이 순식간에 그리고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집에 다 와가던 나는 발걸음을 돌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놀이터로 걸어가다 주저앉았다. 그 한여름 땡볓아래서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아스팔트 위에서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몇 시간 동안이나 울었다. 다 울고 나니 현실감각이 무던해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너와의 일들만이 생각나고 현재의 사고회로가 돌아가지 않으니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얼굴을 확인하고서 심호흡을 한다. 그 이유는 반대하던 나의 꿈에 대해 엄마, 아빠와 정면돌파하기 위해서였다. 꼭 한 번쯤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라는 네 말이 갑작스럽게 스쳐 지나가 집에 돌아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나는 엄마, 아빠와 친구처럼 지냈었기에 진지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충동적으로 진지하게 얘기하자 너와 나누던 나의 꿈을 허락받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있을 때 진지하게 대화를 해볼걸 그랬다. 내 꿈을 허락받고서 방에 들어와 폰을 만지작거린다. 네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지만 문자가 보내지지 않아서 서글퍼진다. 한참 동안 슬퍼하던 와중 문득 떠오른 SNS에 들어가 보니 너의 프로필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남아있던 너의 프로필을 눌러 연락을 보냈다. 그렇게 네게 계속해서 다시 연락을 보냈을까 며칠이 지나고 아줌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던 사실과 오지 않을 너에게 전화를 종종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아줌마는 나에게 문자로 네가 묻힌 곳의 사진과 함께 너는 바람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바람이 된 널 마음속에 묻고 잊으라고 잘 지내라고 연락이 왔는데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 지 모르겠기에 그냥 한참 동안 바라보다 넘겼다. 그 문자에 대한 답장을 보내지 않아서였을까 다음 날 점심쯤에는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함께 있던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는 널 기억해 주고 그리워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지만 아직도 그렇게 그리워하면 어쩌냐고 혼을 내셨다. 아줌마와 똑같이 널 잊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셔서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 알겠다고 대답을 했지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아직 너의 SNS에 남아있었기에 너에게 내 이야기를 남기면 되니까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정말 며칠이 채 되지도 않아서 모르는 남성분이 네 번호를 쓰고 있었다. 너의 말대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고 내 꿈도 허락받았는데 너는 나에게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평소처럼 매일 같이 너에게 연락을 보냈던지라 사라진 너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공허했다. 나의 모든 일상은 너였다. 아침에 일어났다고 연락을 보내는 것, 점심쯤이면 친구들과 산책을 하며 예쁜 하늘이나 꽃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 친구들은 다 야간자율학습을 하지만 난 학원에 가야 해서 나 혼자 하교할 때마다 걸어가는 사진을 보내거나 학교에서 있던 일들을 알리는 것, 학원에 가서 만든 작품을 자랑하는 일, 그리고 잠들기 전 인사를 하는 것도 모든 나의 일상은 정말 너로 시작해서 너로 끝났는데 이제는 더 이상 너에게 연락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제일 힘들게 했다. 자꾸만 네가 이곳에 진짜 없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방학이 되고 나서는 학원에 있는 시간 빼고는 거의 방에 홀로 앉아 너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종종 널 위해 사진도 인화해서 붙였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나 혼자 남았다는 게 나를 너무 위태롭게 했다. 너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며 박스에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여름방학은 어느새 끝나버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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