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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Dec 17. 2024

스물하나

마음의 병을 부정한 나

 신경과에 가니 정말 여러 가지 많은 검사를 했다. 한참 동안 기다리자 검사결과가 나왔다는 말에 따라 들어오려던 남자친구에게 밖에 있으라 말했다. 들어가 앉으니 좌뇌에 비해 우뇌가 많이 죽어있다는 말씀 하시고선 정상인 사람과 비교하며 그래프 같은 걸 보여주셨다. 불안하냐 우울하냐 평소 잠은 잘 자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앞에 내용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잠을 잘 못 잔다고만 대답했다. 평소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다고 하자 더 묻지 않고선 일단 수면유도제를 처방해 준다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왜 아픈 거냐며 묻는 남자친구에게 그냥 잠을 못 자서 그런 거 같다고 이야기하자 잔소리를 마구 했다. 잔소리를 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네 생각이 났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오는 길에 우울하냐는 질문이 계속 떠올라 나는 우울하지 않다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아 병원에 다시 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바빠졌기에 병원에 다시 가지 않았다. 그 후 졸업작품준비로 바빠졌기 때문이다. 더 바빠지기 전에 20대의 두 번째 프로필촬영을 했다. 네게 주려 사진을 한 장을 따로 빼놓았다. 그 후 졸업작품을 어떤 걸 할지 생각하며 졸업하기 전 반에서 단체로 하는 레스토랑운영도 준비했다. 요리를 하는 사람과 디저트를 하는 사람을 반으로 나눠 2인 1조로 조를 짜고선 각 조마다 2개씩 메뉴를 개발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애피타이저와 메인메뉴 그리고 디저트를 하는 사람은 식전빵과 디저트를 개발했다. 메뉴를 개발하고 다 같이 나눠먹으며 누구의 메뉴를 사용할지 정했다. 시작을 하는 거면 완벽하게 해야만 하는 나는 나와 같이 했던 오빠가 잘하지 못해 거의 나 혼자서 했다. 비록 혼자 하긴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 결과 식전빵과 디저트로 내 메뉴가 뽑혔다. 친구들이 예쁘다며 호들갑을 떨고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꽤나 귀여워 보였고 뿌듯했다. 그러다 문득 친구들이 호들갑 떠는 모습을 보며 네가 떠올랐다. 마치 호들갑 떠는 게 꽤나 너 같다는 생각을 하며 씁쓸하기도 했었다.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고선 현생의 나에게 정신 차리라며 계속해서 나를 깨운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선 레시피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살짝 수정을 해버렸다. 빵을 수정하니 식전빵과 함께 먹는 스프레드도 뭔가 밋밋한 기분에 다시 전체적으로 레시피를 수정했다. 그렇게 모든 수정을 마치고서 식전빵, 애피타이저, 메인메뉴, 디저트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조사해 발주를 넣었다. 발주를 넣으며 네가 좋아하던 식재료가 보이면 네 생각을 종종 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널 떠올리는 내가 참 제정신은 아닌가 보다. 그렇게 발주를 마치고선 메뉴를 만드는 나와 친구들은 계속해서 디자인을 여러 번 만들며 수정해 나가고 나머지 친구들은 열심히 고객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배웠다. 레스토랑이 시작되기 전 졸업작품에 대한 주제도 정해 중간중간 계속 밤늦게 연습을 했다. 나와 졸업작품을 함께 하자던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냥 혼자서 하고 싶었기에 다 거절했다. 그렇게 혼자 졸업작품을 연습하며 만들었다. 만들면서도 주변 친구들이 졸업작품을 혼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을 계속했지만 그럼에도 그냥 혼자 하고 싶었다. 다른 잡생각을 더 할 여유가 없기에 혼자가 편했다. 중간쯤에는 교수님께서 연습 삼아 호텔 면접도 보고 오라는 말에 면접도 보러 다녀왔다. 면접을 보고 얼마 안 가 어쩌다 보니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일을 하러 오라는 이야기를 거절하느라 꽤나 애먹었다. 거절한 이유는 아직 남은 것들을 내 손으로 마무리하고 난 뒤 취업을 하고 싶었기에 거절했다. 그것 말고도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마음과 함께 책임감도 물밀려 와서 거절했던 거 같다.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들이 자꾸만 떠오르다가도 네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종종 밀려와  마음이 자주 복잡해졌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학교로 향해 졸업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움직여야 했다. 움직여야 살 수 있을 거 같았고 움직여야 잡생각이 조금이나마 멈춰졌다. 움직임이 멈춰지면 정신적으로 움직이면 육체적으로도 힘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졸업작품을 만들며 많이 힘들었다. 자꾸만 마음같이 안 나오는 장식물들에 계속해서 엎어버리고 새로 했다. 친구들은 괜찮다고 만족하라고 이야기했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강박이 심해져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계속된 스트레스에 복통이 심해져 병원에 갔다가 응급실에도 실려가곤 했다. 여차저차 그런 일이 있고도 어찌어찌하다 보니 졸업작품을 완성시켰다. 나의 졸업작품 주제는 너와 함께 종종 낙서를 하고는 했던 나무집을 만들어냈다. 그 집은 내 낙원이었다. 네가 존재할 때도 네가 사라졌을 때도 곱씹으며 그 당시 내가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 유일한 낙원. 그 낙원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표현법을 사용해 나름 잘 표현하니 제법 만족스러웠다. 졸업작품이 끝이 나고 전시를 하니 남자친구가 수고했다며 꽃다발을 사 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너와 내 낙원을 모티브로 한 졸업작품으로 대회도 나가 장려상도 받았다. 그 당시 대회에 나간 팀 중 내 작품이 가장 초라해 보였지만 팀으로 한 친구들은 인원수가 많았기에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전체 작품 중 혼자 한 사람은 유일하게 나뿐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 네게 상을 받은 걸 자랑했다. 너와 내가 그리던 낙서가 이렇게 완성되었다며 프린터를 해 네게 보여줬다. 그렇게 졸업작품이 끝나고 조금 쉴 수 있나? 생각했지만 바로 레스토랑 오픈일이 얼마 남지 않아 레스토랑 준비를 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냥 일단 움직였다. 40명의 손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식전빵은 넉넉하게 인당 2개씩 잡아 총 80개 분량을 디저트는 그냥 넉넉하게 50개를 만들어야겠다고 정했다. 계속하여 친구들의 서비스의 문제점을 고쳐주다 레스토랑이 오픈하기 이틀 전부터는 따로 빠져 재료를 준비했다. 타임이라는 식용풀을 손질하여 차가운 물에 담가두고 레몬을 썰어 설탕에 절여 끓였다. 이 날 재료준비를 빠르게 끝마친 후에는 상도 받으러 갔다. 여름방학 동안 현장실습에 나갔던 보고서를 잘 써서 받은 상이었다. 상을 받은 것에 이 당시에는 크게 감흥이 없어 그냥 대충 캐비닛에 던져두고선 다시 돌아가 다음날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했다. 다음날이 되고 빵부터 만들기로 생각했었기에 일단 몸부터 움직였다. 빵반죽을 하고선 발효가 되고 구워지는 동안 초코스프레드와 망고스프레드를 만들었다. 망고스프레드는 종이포일에 긴 타원형으로 돌돌 말아 냉장고에 보관하고 초코스프레드는 시럽통에 담아두니 어느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구경을 하러 왔다가 날 도와줬다. 디저트레시피를 보고선 재료계량을 해둔 친구들에게 엄지를 들어 따봉을 날려주자 친구들이 빵을 만들던 곳마저 정리를 해주었다. 그래서 시작은 혼자 했지만 함께 해주는 반 친구들 덕에 꽤나 빠르게 마무리가 되어 이 날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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