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G씨의 운명은 이월 이십오일 낮 두시 이십팔분으로 타이머를 맞추었다,
이 날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갑작스럽겠지만 이 날이어야 많은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터였다.
마치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정확하게 맞물려 돌면서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것처럼.
이십팔일에 마지막 여정을 마치면 손주들이 새학년 새학기를 시작할 삼월 사일까지 며칠 여유가 있다.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다음은 빈소를 비워두었다. 자신이 곧 갈 병원의 장례식장이어야 가족들의 수고를 그나마 덜 수 있으리라.
다섯 개의 공간 중 제일 소박한 곳 하나만 남아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자신을 보러 올 친인척은 한 명도 없고, 퇴직한 지도 이 년이 흘렀으므로 올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일한 혈육인 미국에 있는 여동생이 떠올랐다.
작년에 보러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장례지도사를 골라야 했다.
이번엔 시간이 좀 걸렸다. 큰놈이 상조회사에 연락을 할텐데 아마 슬픔으로 정신에 온통 금이 가있을 것이었다.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큰놈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고심끝에 G씨는 수더분한 장년 아저씨가 큰놈의 전화를 받도록 그의 일정을 조정했다.
기대치가 낮으면 그의 일처리에 적당히 만족하고 순순히 일을 맡기면 신경을 곤두세울 일은 없을거야.
큰 딸이 안심하고 네네 하다가 눈탱이를 맞으면 어떡하지. 관우처럼 붉은 얼굴과 단호한 태도를 지닌 큰사위가 처리해 줄 것이다. 큰 사위의 창고를 못 가봐서 아쉬웠다. 아버님이 오시면 분명 좋아하실거래서 조만간 갈 날이 있겠지 언제 놀러갈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선생님들은 19년 경력의 전문가로 섭외했다.
자신을 닮아 돈에 관한 감각이 부족한데다 설상가상으로 손은 큰 첫째 대신에 음식을 알뜰하게 운용하여 돈 새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다음은 화장터. 일부러 발인날 저녁 한 타임만 남겨두었다. 이번에 병원에 들어가면 집에 가고싶어도 생전엔 못갈테니 봉안함에 담긴 채라도 집에 들렀다가 떠나고 싶었다. 나의 가족들이 나의 집에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모인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이제 본인이 머물 곳을 정하는 것만 남았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가족들이 날 만나러 오기 편할까 이리저리 둘러보다 충북 음성의 한적한 추모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든 아끼는 게 몸에 배인 G씨.
한국전쟁 즈음에 태어나 중학생 때 엄마를 여의고 가정에 점점 소홀해지는 아빠를 대신해 두 여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G씨는 그 곳의 저렴한 안치비를 보고 걱정을 덜었다.
또한 S가 사는 곳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아, 나를 닮아 운전을 좋아하는 S가 훌쩍 드라이브를 떠나고 싶을 때 오기도 적당했다.
G씨는 자신의 마지막 시간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평소엔 대충 계획하고 두세번 시행착오를 겪고나서야 일을 마무리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번 설계도는 완벽했다.
G씨의 마음은 만족감으로 차올랐지만 실제로는 숨이 차올랐다. 그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줄 폐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여보, 나 숨이 안 쉬어져."
G씨는 근처 병원으로 구급차에 실려갔다.
그가 맞춰놓은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월 이십일의 일이었다.
G씨의 완벽한 계획이 실행되던 중 작은 오류가 발생했다. 사실 그의 탓은 아니었지만.
마음 여린 둘째가 자신의 임종을 보면 너무 슬퍼할까봐 부러 H가족들이 부산으로 돌아간 시간으로 정했었는데 실제로 제일 많이 운 것은 평소에 무뚝뚝하던 큰놈이었다.
나는 아빠 옆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만 지냈지, 아빠의 제삿상을 앞에 두고 절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울었고, 술잔을 올릴 땐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던 아빠가 떠올라 울었다.
어느 문상객의 입에서 나온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온 순간.
지난 여름,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을까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아이스크림 하나에 칠백원이길래 너무 비싸서 그냥 나왔다고 얘기하던 아빠가 떠올라서 엉엉 울었다.
맛있는 거 사드시라고 특별한 날에 자식들이 드렸던 용돈을 거의 쓰지 않고 꽤 큰 금액의 돈을 모아두었더라는 얘기르 듣곤 속이 더 뒤집어졌다. 그 밖에도 기타 등등의 이유로 시도때도 없이 흐느꼈다.
그래서 장례식 초반에 음식담당자님은 제일 많이 우는 내가 막내딸인 줄 알았다 하시고,
이런 나를 보고 여동생은 아, 나까지 저렇게(응?) 울면 안되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고 나오려던 눈물을 쏙 집어넣었다.
미안하다 H야
이번에도 네가 언니역할을 했구나. 어쩌겠니.
아빠 사랑해, 고맙고, 미안해.
나중에 만나서 꼭 같이 낚시하자.
아빠가 죽지 않았다면 나는 미국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죽었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늦기 전에 고모를 만나러 가야했다.
이것이 이 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