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1
“다 왔어.”
차에서 내려 정면으로 집을 바라보았다.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공간이 찍혀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그 사진 속 공간이 현실로 바뀌면서 그 곳을 배경으로 다음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연결장면. 그 동안 한국에서 사진 속 2D로만 보던 그 집이 3D로 내 눈앞에 있었다.
비록 사진이었지만 삼십년 넘게 봐와서인지 편했다. 여러 번 드나들어 익숙한 동네친구 집도 초인종을 누르기 전 심호흡을을 하는 나인데 여긴 마치 내가 살던 집처럼 느껴졌다.
캐리어를 집 안 현관에 두고 운동화를 벗고 거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서연누나 왔어요.”
“오, 서연이 왔니”
“잠시만요, 저 손 먼저 닦고 갈게요”
선율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으며 선율이에게 당부했다.
“할머니한테 가까이 가면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해야 되는 거야, 알았지?”
선율이는 아무런 생각도, 기분도 드러나지 않는 플레인요거트같은 얼굴로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미국가면 재밌는 게 많을 거라고 엄마의 말을 듣고 한껏 들떠있었는데 여태까지 한 것이라곤 비행기타고 그 다음엔 차타고 또 그 다음엔 어떤 집에 들어간 게 전부라니. 실망스럽고 지루하고 어색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겠지. 어렸을 때 나처럼.
선율이는 쭈뼛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내 말대로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고 인사했다. 좋아, 아주 자연스러웠어. 역시 나만 잘하면 되는 거야.
그래, 너만 잘하면 된다고
제발, 제발.
내가 미국여행에서 제일 걱정했던 것은 사실 나였다.
내 기분이 거기서 어떨지,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도저히 예측이 안됐다.
일년 전, 제주도로 첫 가족여행을 떠나기전에는 내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동생들에게 ‘김서연 사용설명서’라는 글을 작성해서 카톡으로 보냈었다.
나한테 괜찮냐고 묻지 말것-내가 걱정돼서 다정하게 상태를 묻는다는 건 너무나 잘 알겠지만, 한편으로는 ‘니 눈엔 내가 괜찮아 보이냐!’라고 꽥 소리를 지르고 싶어짐.
기분이 나빠보여도 그냥 그려려니 무시하고 각자의 시간을 즐길 것-냅두면 나아짐.
나갈 때 꾸물거리면서 늦어도 이해해줄 것-너희들과 시간을 맞추기 위해 먼저 준비를 시작하겠지만 나도 그러고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라고. 사람들이 나 준비 끝나는 거 기다리고 있는 거 나도 부담된다고, 엉엉
성숙한 내면을 지닌 동생들은 쯧쯧, 에효 등의 탄식과 한숨을 내가 안보이는 곳에서만 뱉고 나를 배려해줬지만 결국 나는 여행 마지막날 다른 가족들과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고 홀로 침대에 드러누워야 했다.
나를 잘 아는 가족들과도 삼 일 이상을 함께 하지 못하거늘, 십 여년 만에 재회하는 고모, 사촌 식구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까. 며칠 동안은 ‘사회화가 된 인간’모드를 유지하겠지만, 그 사이에 내 인내심이 바닥나서 방전이 되면 어쩌지.
일단 이건 진짜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