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Oct 27. 2024

두유노우 당숙?

DAY1-2

“고모, 지난 주보다 훨씬 나아지셨는데요?”

활짝 웃으며 고모를 마주보았다.

고모를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고모는 일주일 전 영상통화 속의 모습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드디어 네가 왔는데 이렇게 내가 누워만 있어서 미안하구나. 나 대신 낸시가 잘 구경시켜 줄거야,

작년에 니네 아빠가 왔을 때도 낸시가 잘 모시고 다녔어.”

작년에도 아빠를 위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내주었는데

일 년만에 또다른 방문객이라니. 낸시에게 미안했다.   


“낸시! 걱정하지마. 나 영어도 할 수 있고!

운전도 잘 해! 나 혼자 잘 돌아다닐 수 있어!”

출국일을 며칠 앞두고 ‘혼자서도 잘하는 나’를 어필해서 낸시의 부담감을 덜어주려 했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이라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가나요? 더 착잡해지진 않나요?

낸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작년 이맘때,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혼자 남겨질 고모가 걱정된 아빠는 미국에 가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여든을 넘은 고령인지라 아빠에게

장시간의 비행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리가 될 터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만류하지 못했다.

아무도 말은 안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번이 오빠와 여동생이 함께 지낼 마지막 나날임을.


여름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중후반,

여러 사이트를 뒤지며 예약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성과가 없었다.

퍼스트 클래스나 비즈니스 좌석은 있었지만

큰 액수의 돈을 지불할 순 없어서 무용지물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친구들의 단톡방에 SOS를 쳤더니

해외여행을 자주 다닌 이들의 조언이 잇따랐다.

부모님은 무조건 직행을 타야 한다, 국적기여야 한다, 추가요금을 내면 레그룸이 좀 더 넉넉한 자리를 살 수 있다 등. 그 중 한 명이 콜센터에 직접 전화하는 게 제일 빠를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전화를 받은 상담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한 자리를 찾아주셨다. 비행기 문 앞 좌석은 안된다고 하셨다. 그 자리에는 실제 비상상황일 때 승무원을 도울 수 있는 사람만 탈 수 있기에 16세 이하나 노인은 제외된다.


아빠의 출국일이 정해지고, 사촌들과 통화했을 때 낸시가 말했다.

“언니, 걱정하지마. 우리가 삼촌 잘 모실게”

“고마워”

그래, 잘 모시겠지. 네가 고생이 많구나.


고모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낸시가 세 조카를 데리고 왔다. 셋은 어제 낸시네에서 파자마파티를 했다고 했다. 낸시가 아이들에게 이모한테

인사해야지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그저 처음보는

모르는 아줌마일 뿐일 터였다. 아이들은 나한테 안들리게

하이!  인사를 하고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후후후 선물을 풀 때가 됐군.


미국에 오기 전 나는 아이들이 갖고 싶은 선물을 미리

주문받았다. 낸시는 일라이자의 옷이 좋겠다고 했다.

옷을 사기 위해 키와 몸무게도 물어 봤었다.

고모도 이랬겠구나.

우리 옷 사기 전에 미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얼마나 컸는지 물었겠구나. 떠올랐다.

고모는 우리의 입학식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이면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주셨다. 양배추 인형, 예쁜 드레스, 버튼을 누르면 지우개서랍이 튀어나오거나 필통 뚜껑이 열리는 자동필통 등등.

이제는 내가 그런 어른이 되다니.


선물을 포장하다가 문득 나와 이 아이들은 몇 촌인지 궁금해졌다. 고종사촌들의 자녀니까.

음, 오촌인데, 오촌이면 당숙아녀?

내가 이제 당숙어르신이 된겨?


내가 어렸을 때 당숙 호칭이 붙은 사람은

결혼식 때만 같은 시공간에 있는 사람이었다.

장례식은 보통 삼 일에 걸쳐 치뤄지니 마주칠 확률이 낮지만

결혼식은 짧은 시간동안 한 번에 하니,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니까.

엄마가 어떤 어른과 얘기를 하다가 내게

‘어디어디 사는 당숙할아버지야, 인사해야지’ 하면

나는 시키는 대로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고 멀뚱히 서있었다.

친척이 많은 엄마 덕분에 친척 결혼식에 갈 때마다 이런 경우가 반복되자 의문이 들었다.

‘왜 저 사람들은 ‘숫자+촌’으로 불리지 않고

당숙, 또는 당숙모라고 불리는가. 그리고 왜 항상 어디어디 사는 당숙, 땡땡 당숙모로 거주지역을 앞에 붙이나’


이랬는데 이제 내가 그런 먼 친척어르신이 되었다니.

잠깐 눈물 좀 닦고 가실게요.

그럼 선율이는 나의 고모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엄마의 고모니까 고모할머니인가, 아니면 엄마쪽 할머니이니까 이모할머니인가.

낸시와도 이런 얘기를 하다가 나와 같은 항렬의 남자어른은 모두 삼촌, 여자어른은 모두 이모, 나의 윗세대 어르신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로 통일하기로 했다.  


자, 얘들아 너네 선물 가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