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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27. 2024

주의!라라랜드라는 단어에 속지 마시오

DAY1-3

유진이네 가족 넷, 낸시네 둘, 나와 선율이.

이렇게 여덟 명은 첫번째 목적지인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입구까지 걸어갔다.

따스한 공기와 적당한 미세먼지,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천문대 입구에서

남산공원 안의 국립과학관이 떠올랐다.


블로거님들,

정말 여기 와서 라라랜드 속 그 장면이 상상이 됐어요?

누구 탓을 하겠어

.‘라라랜드 배경이었던 그리피스 천문대’ 이런 제목이 붙은 포스팅에 낚인 건 나인걸?

라라랜드 속 천문대 시퀀스가 로맨틱했던 이유는

CG로 밤하늘에 별을 잔뜩 심어 별이 빛나는 밤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갔던 때는  한낮이라 태양빛에 가려져 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나 더,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 둘이 몰래 천문대 안으로 들어갔다는 점도 중요하다. 경비원에게 들킬까봐 당연히

심장이 빨리 뛰겠지. 여기 사랑과 인간의 맥박수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연구결과가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흔들다리를 같이 건넌 여남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심장이 두근대는 게 먼저냐, 상대방에게 이전부터 끌리고 있었느냐 헷갈린다는 거지.


그러나 현실 속 나는 직원에게 입장권 확인받고 들어와서

맥박은 평소와 다를 게 없고요, 여름방학 중이라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 사이에 있었다.

진짜, 여행정보 글에 ‘라라랜드’라는 단어는 뺍시다.

실망감을 털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그러나 나보다 더 감흥이 없는 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나의 딸.

도착한 지 6시간 동안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과 말한 건

안녕하세요, 가 전부인 듯 한데?

좀 더 덧붙이자면 네, 아니오 정도.

사방에선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만 들리고,

밤샌  것처럼 비몽사몽한 가운데 신경은 곤두서있고,

게다가 평소에도 별 관심없는 과학이라니.

내 손에 잡혀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더위에 지쳐가던 선율이는 시원한 관람실에 들어서자 차가운 돌벤치에 앉아

그 곳을 떠날 때까지 눅눅해진 크림슈처럼 짜부러져 있었다.


얼마쯤 지나니 유진이가 이제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뭐 나야 언제든 나가도 상관없지만 갑자기?

유진이는 한 시간짜리 주차요금을 냈기에 지금 나가야

추가요금을 내지 않는다며 잰걸음으로 먼저 밖으로 나갔다.


오! 저런 방법도 있군! 저래서 하루에 세 곳을 갈 수 있다고 했구나. 실제로 쓸 수 있는 시간은 6시간 남짓이었지만.

늦으면 늦는 대로, 빨리 나가고 싶으면 예상보다 일찍,

되는 대로 움직이는 방식을 선호하는 나는 유진이의 계획성과 실천력에 감탄했다.

비록 1분 차이로 추가요금을 내야했지만.  


어린이들과 함께 움직이면 이렇게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하도록.


다음은 헐리웃 스타의 거리.

주차를 한 쇼핑몰에서 피카디리 극장까지 걸어가는 길은

비좁았다. 오른쪽엔 기념품이나 소소한 생활용품, 열쇠고리나 인형을 파는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왼쪽엔 파라솔로 지붕을 대신한 노점상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오는 행인과 부딪히지 않도록

한쪽 어깨를 뒤로 젖힌채 걸었다.

여긴 마치 예전 피맛골 근처 종로거리 같구나.

지금은 새끈한 빌딩들이 서있지만 재개발 전에는 여기처럼 오래된 풍경이었다.


여기서부터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장소만 바꿔가며 비슷한 패턴을 반복했다.

극장 앞에 도착-지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줌

인생네컷 가게를 발견-지루해진 아이들에게 인형뽑기 시켜줌

한식당으로 이동-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먹임

선율이는 이 집 김치 맛있다며 반찬으로 먼저 나온 겉절이와 오뎅볶음만으로도 공기밥 반을 비웠다.

하루종일 거의 먹질 못했기에 배가 무척 고팠으므로.

점심이었던 타코는 강렬한 향신료 냄새가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렸고, 바닐라맛인 줄 알았던 젤라또는

코코넛이 섞여서 예상과 다르게 미끈거리는 질감때문에 몇 입 못 먹었었다.   


집에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가 옷부터 갈아입었다.

거실에 모여있는 친척들에게 가기 전,

지쳐서 침대에 걸쳐앉았다가 뒤로 넘어간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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