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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27. 2024

미션: 사회화된 인간모드를 유지할 것 PART1

DAY1-1

비행기 밖으로 나가니 뜨거운 공기가 훅 나를 감쌌다. 음, 마치 건조기 안에 있는 것 같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필요한 서류를 다 챙겼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캐리어를 찾는 중간중간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유진이의 안내를 들으며 공항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당연히 많았고, 쓸모를 다한 카트들이 두세개씩 겹쳐진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공항에서 나오는 사람을 태우기 위해 인도에 바짝 붙어 정차한 차들은 길게 이어지며 또다른 차선을 만들고 있었다.

다가오는 한 세단의 앞 차창으로 유진이의 상반신이 보였다.

유진이는 사람과 캐리어가 통과할 만큼 간격이 벌어져 있는 두 차 가까이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짧게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캐리어를 옮겨 실었다.

짐을 다 싣고 차에 타려는데 유진이가 “잠깐만 누나, 거기 서봐” 라길래, 

왜?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선율이와 나란히 차 뒷문 옆에 붙어섰다. 유진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여, 여기서?”

당황하는 나를 보고 유진은 “오케이, 그냥 가자.” 휴대폰을 내리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이런 건 아빠랑 똑같군.’

조수석에 앉아 벨트를 채우며 생각했다.

아빠는 사진찍기를 좋아하고 잘 찍었다. 포토존도 잘 찾았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야, 여기 좀 서 봐라.” 하고 방금 자신이 봐 둔 위치로 동행한 이들을 불러모았다. 

가볍게 툭 툭 찍는데도 좋은 사진들이 꽤 많이 나와서 항상 아빠의 촬영솜씨에 감탄했었다.

나는 사진찍히는 건 어색해하고, 모처럼 사진이 찍고싶어 카메라를 꺼낼라치면 꾸물거리다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고작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그래서 어디서든 즐거운 표정으로 쓱-핸드폰을 꺼내는 아빠가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두 장면 중 하나는 어느 친척의 결혼식날. 결혼식장 밖 로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대여섯명의 조카들을 일로와봐라 손짓으로 불러 나란히 세워놓고 사진을 찍던 모습.

각 집안의 사촌들은 경조사 때에만 열굴을 보는 사이라 아빠가 없었다면 그들이 함께 나온온 사진도 없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외할머니의 장례식 마지막 날.

추모공원에 할머니의 봉안함을 안치하고 유리문을 잠근 뒤, 마지막으로 모두가 말없이 할머니의 이름 석자가 새겨진 봉안함을 바라보았다. 아빠 빼고.

아빠는 당신의 장모에게 마음속으로 이별인사를 하는 대신 또 휴대폰을 쓱 꺼내 그 광경을 찍고 있었다. 

‘아빠, 그건 맏사위로서 좀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그 광경을 뜨악하게 바라보며 역시 아빠는 특이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김서연씨?

외가의 장녀의 장녀, 즉  K-장녀 of K-장녀로서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대신 아빠의 행동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사람은 누구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저예요. 심남매 중 아빠를 제일 많이 닮은 큰딸이오.

“누나 어디 가보고 싶은 데 없어?”

유진이 물었다.

4월에 비행기표를 끊은 이후로 주변으로부터 이 질문만 사십만 팔천번을 들었다.

딱히 없었다. 첫 미국여행에, 머무는 동안 캘리포니아 주를 벗어나진 않을테니, 미서부의 대표관광지들만 가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고모네로 운전하는 동안 유진은 오늘 일정을 브리핑해줬다.

“원래 오늘 게티뮤지엄에 가려고 했는데 스모그가 너무 심해서 아이들이 밖에서 놀지 못할 것 같아서 취소했어. 대신 그리피스 천문대에 갔다가 헐리웃 스타의 거리를 보고 그로브에서 저녁먹고 집에 올 거야.”

유진이가 고른 장소들은 모두 ‘미국 서부 여행’,  ‘LA 한달살기’, 또는 ‘LA 여행 아이와’ 라고 치면 나오는 포스팅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명소였다.

여기서 팁 하나.

같은 지역이라도 지명 뒤에 ‘아이와’를 붙이느냐 안붙이느냐에 따라 검색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근데 그 세 군데를 하루에 다 갈 수 있어?”

“응, 다 서로 가까워”


LA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탔다가 어느 외곽길로 빠져서 한적한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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