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왜 ‘일라이자’로 이름을 정했어?”
디즈니랜드에서였나, 잠깐 앉아서 쉬다가 오랫동안 궁금해했던 이유를 물어보았다.
9년 전, 낸시가 아들을 낳았고, 아들 이름은 일라이자라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일본만화 <캔디캔디>가 떠올랐었다.
일라이… 자? 캔디를 질투해서 괴롭히던 캐릭터?
굵은 빨대모양 머릿다발을 바나나송이처럼 달고 다니던 그 소녀 이름이 일라이자였는데.
일라이자는 영어로 Elliah라고 쓰고 한국 발음법칙에 따라 엘리야라고 읽는다.
나는 엘리야가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천인 낸시 가족이 예언자 일라이자의 어떤 면을 좋아해서 아들의 이름으로
지었나보다 추측했었다.
낸시의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일라이자’라고 소리 내서 말할 때 음절들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게 좋아서”
오, 그런 이유로 이름을 고를 수도 있구나. 이해의 영역을 한 걸음 더 넓혔다.
“우리나라에선 엘리야라고 발음해.”
“알아, 엄마가 항상 그 얘기했었어. 엘리야라는 영어이름도 있긴 해.
데이비드의 여자조카 이름이 엘리야야.”
“그래? 그럼 나도 엘리야로 할래!”
미국에 온 이후로 영어이름을 고민하고 있던 나는 낸시의 말을 듣자마자 말했다.
‘엘리야’를 한글로 썼을 때 글자모양이 적당히 동글동글한 것도,
발화할 때 소리도 적당히 동글동글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 대답을 들은 후, 몇 초간 머리를 굴리던 낸시가 입을 열었다.
“엘리는 어때?”
엘리?
드디어 십 점 만점에 십 점짜리 이름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이 군중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나도 모름) 머릿속 심사위원들이
모두 10점짜리 점수판을 들었다.
‘엘리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땐 머릿속에서 말랑하고 알록달록한 탱탱볼이 떠올랐는데,
‘엘리’라는 제시어를 듣곤 트램펄린 위에서 폴짝폴짝 뛰는 여자애의 모습이 나타났다.
“완전 마음에 들어! 나 그걸로 할래!”
나는 기쁜 마음에 들떠서 외쳤다.
낸시와 데이비드 둘 다 엘리라는 이름이 나와 잘 어울린다며 같이 기뻐해 주었다.
내게 딱 맞는 이름을 찾아주다니! 고마워 낸시!
“Hi, my name is Ellie.”
낸시 덕분에 드디어 어디서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 곳에서 쓰는 작가명도 엘리이다.
한편, 나의 한국 이름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 지어주었다.
아빠로부터 당신의 손녀가 태어났다는 얘길 듣고 할아버지께서 철학관에서 받아오신 이름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돼 돌아가셨기에 내 뒤에 태어난 동생들의 이름은
모두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내 이름만 유일하게 아빠 쪽에서 왔다.
서. 연.
‘천천히 서’에 ‘맞이할 연, 늘릴 연’을 쓴다.
학교를 다닐 땐 내 이름이 좋았다.
출석부에 소영, 소연, 소현, 소희 등 ‘소-’로 시작하는 이름은 많아도
‘서’가 첫번째 글자인 경우는 드물어서 겹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름의 뜻이 탐탁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작명을 의뢰한 철학관에 찾아가, 당장 따져 묻고 싶었다.
천천히 맞이한다고요? 천천히 늘린다고요?
원하는 건 빨리 맞이하는 게 낫지. 이러다 다 늙어서 얻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요 선생님.
왜 이런 뜻의 한자를 고르셨나요.
되는 일이 없는 해가 일 년, 이년, 이렇게 계속 길어지자 고생 끝에 심보가 배배 꼬여버린 나는
실패의 이유 중 일부를 이름 탓으로 돌리고 괜한 트집을 잡았다.
할 일이 정말 없었구나 과거의 나여.
못났네, 못났어.
그러나 그 점술가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예측의 대상이 약간정도 빗나가서 잘 나가는 때를 맞이하는 게
‘서연’이라고 불리는 내가 아니라, ‘서연’이라는 두 글자 이름 자체이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