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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Dec 10. 2024

샌디에이고 씨월드는 원래 추억의 팝송플리로 유명함

엘에이에서 샌디에이고 씨월드까지는 두 시간 좀 넘게 걸렸다. 

출근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 출발해서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창밖 풍경이 바뀌었다. 

눈을 최대로 위로 떠서 보이는 높이까지 쭉쭉 뻗은 가로수, 

눈을 최대한 곁눈질해도 끝없이 양 옆으로 트인 평지는 내 시야를 확장시켜 주었다. 

마치 아이맥스 상영관의 거대한 스크린이 나의 시야를 꽉 채우는 것처럼.  


땡볕 아래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뭔가 서울랜드와 굉장히 비슷했다. 

빛이 바랜 파라솔이나,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인조바위 등 

여러 시설에서 간간이 보이는 세월의 흔적도 그러한 인상을 주는 데에 한몫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노래였다.


서울랜드 첫 방문날,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 서있는데 

대기공간에서 들리는 노래들은 죄다 가요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만 주말에, 이런 곳에, 부모님과 함께 온다는 사실을 반영하여 

보호자들의 나이를 추측해 보면 대략 팔십 년대 생이라는 결론이 난다. 

이곳까지 자녀를 싣고, 아니 데리고 온 엄마아빠들이 

자녀가 없던 왕년에 노래방에서 신나게 불러재꼈을 법한 노래들이었다. 

코요테, 터보, 쿨, 룰라뿐만 아니라 벅의 노래도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 글을 읽고, 벅이 누구였더라 고개가 갸우뚱하신 분들은 <맨발의 청춘>이라는 가요를 

검색해서 들어보시길. 인트로만 듣고도 아, 이 곡이었구나 떠올린다면 

당신도 내 또래… 후후후…


선곡한 직원분이 뉘신 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음원사이트에서 ‘80년대 생들의 노래방 신청곡 TOP100’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은 걸 수도 있지만, 덕분에 삼십 분을 지루하지 않게 기다렸습니다. 

엄마아빠의 노고를 잊지 않고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훌쩍.


씨월드도 그랬다. 

자미로콰이의 <VIRTUAL REALITY>,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 등 

추억의 팝송이 줄줄이 나와서 반가웠다. 

더욱 반가웠던 건 이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집에 가기 전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줄 서있는데

‘TEARS FOR FEARS’의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가 들려서, 

와 이 곡도 진짜 오랜만이네, 라디오 듣던 때를 추억하며 귀 기울여 감상하고 있는데 

내 앞에 서있던 남자가 움찔했다. 

옆에 있던 일행이 왜 그러냐고 묻자 그 사람이 이거 자기가 옛날에 좋아했던 음악이라고 답했다.

야! 너두? 나두! 

하이파이브 할 뻔.     


해양동물원에 갔는데 이렇게 노래 얘기만 늘어놓다니, 

글이 주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거 아니냐고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실제로 나는 그날 추억의 팝송에 귀가 꽂혀서 하루종일 씨월드를 헤매고 돌아다녔으니까. 

원래도 길치인데 뇌의 일부분이 아예 노래를 듣는 데에 할당되어 버리니 

이 날은 유독 왔던 길을 또 오고, 우왕좌왕했다. 

나와 손을 잡고, 아니면 내게 손을 잡혀 함께 걸어 다닐 수밖에 없던 선율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일정 초반에는 나를 따르라고 했다가 후반에는 구글맵을 같이 보며 

이 화살표가 이 길을 향하고 있는 걸까, 저 길을 가리키는 걸까 의논해서 길을 찾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어떠한 놀이기구도 타지 않았다. 

바이킹 정중앙 자리에 앉아도 옆사람이 시끄럽다고 할 정도로 꺄악거리는 나에게 

씨월드의 어트랙션들은 다 너무 무서워 보였다. 

이제는 선율이가 나보다 더 놀이기구를 잘 타는데 혼자 타는 건 꺼려해서 선율이도 못 탔다.

나 때문에 하루종일 걷기만 한 선율이에게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덜터덜 잘 따라와 준 선율이에게 사랑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왜 아직까지도 회자되는지 알겠군. 

비록 나와 선율이는 밥도 먹고 같이 살기도 하지만.


대신 돌고래쇼를 두 번, 물개쇼를 한 번 보았다. 

씨월드에 가기 전 날, 앞에 앉으면 물이 많이 튀니 우비를 준비하면 좋다는 여행후기를 읽고 

일회용 우비 두 개를 가방에 넣었었다. 이런 곳에서 옷의 일부가 젖는 것을 개의치 않는 나와, 

그런 어른을 매일 봐온 어린이는 물을 좀 맞더라도 가까이서 보는 쪽을 택했기에 

‘soak seat’(흠뻑 젖는 자리)라고 쓰여있는 의자에 앉아 우비를 덮어쓰고 돌고래쇼를 보았다. 

생각해 보니 돌고래쇼를  본 건 나도 이번이 처음.


재밌었다. 

돌고래가 관객석과 가까운 수조 가장자리를 돌며 꼬리로 힘차게 물장구를 쳐서 

그때 쏟아지는 물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아악 소리 지를 때 벌린 입으로 짠 바닷물이 들어왔다.


점심은 씨월드 내 식당 여러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식권을 사서 해결했다. 

맛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국내 축제에 항상 와있는 핫도그, 닭꼬치, 오뎅 포장마차에서 파는 음식에 큰걸 바라지 않듯, 

식사시간을 놓치지 않고 끼니를 때우는 데에 만족하면 된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해양생물들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선율이가 돌고래쇼를 한 번 더 보고 싶대서 또 봤다. 물개쇼까지 보고 나왔다. 

물개쇼는 여러 사육사와 물개가 펼치는 슬랩스틱 코미디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어린이들이 많이 웃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음 날, 낸시 부부에게 씨월드 갔던 얘기를 하다가 ‘TEARS FOR FEARS’라는 그룹 알아? 

라고 물었더니 듣고 있던 데이비드가 바로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라고 마치 퀴즈정답 외치듯, 그들의 대표곡이자 내가 어제 들었던 바로 그 노래의 제목을 말해서 또 놀랐다.


야! 너두? 나두!

데이빗을 향한 내적친밀감이 +1 올라갔습니다. 


하나의 노래로 우리는 위아더월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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