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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Dec 17. 2024

나의 인사이드아웃을 구해줘, 침착맨 3

팀장     “무슨 일이죠”

팀원     (무전기 너머로) “전두엽 부품이 배달 중이랍니다. 곧 도착할 거라는 데요.”

팀장     “다행이네요, 재고는 얼마나 남아있죠?”

팀원     “며칠 치가 남아있긴 한데요, 원래 쓰던 건 용량이 부족할 것 같아요. 

            좀 더 고성능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팀장     “잘했어요, 오 벌써 택배가 왔네. 여기 일 끝내고 다시 연락할게요”


팀장은 택배기사에게 받은 상자를 바로 뜯어 그 안에 있던 차단기를 전두엽에 설치한다.


팀장     “우선 급한 대로 기존에 있던 차단기를 조립해 놨습니다. 더 이상 합선되진 않을 거예요. 

             엘리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우선순위대로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겠죠.”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모든 감정들.

그중에서 특히 불안이 마음을 놓는다.


팀장     “그런데 이게 열두 시간을 버틸지 모르겠어요. 내일부턴 더 튼튼한 걸로 넣긴 하지만요.” 


슬픔은 여전히 계기판 위에 엎어져 있었다. 

엘리의 감정제어판은 전체가 파란데, 슬픔이가 엎어져있는 부분은 특히 더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어떤 부분은 너무 짙은 파랑이라 검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슬픔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알아서 잘해주시겠죠.”

팀장     “저는 내일 엘리가 일어나면 다시 오겠습니다. 성능이 더 좋은 차단기로 교체해야 하거든요.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까지 해야 하는데 제가 지금 가봐야 할 곳이 많아서요.”


모두들 팀장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팀장이 떠난 지 몇 시간 후, 감정들이 모두 모여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 

비상상황이라서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엘리는 헬스장에서 컨벤셔널 데드리프트를 하고 있다.

엘리가 다칠까 봐 걱정되는 소심은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소심     “쟤는 제정신도 아닌 애가 저러다 바벨 놓치면 어쩌려고 저 운동을 하고 있는 거지”

기쁨     “집중해서 운동하면 다치지 않는댔어. 그리고 집중하는 동안에 딴생각 안 나니까 

                그 사이에 마음도 조금씩 복구할 수 있을 거야. 

             환경이 안정적이어야 마음건축회사 직원분들도 능력을 십 분 발휘해서 일하지 않겠어?”

까칠     “맞아, 그리고 이제 금방 여름이 시작된다고. 

            지금 엘리 몸으로는 작년에 입었던 옷 못 입는다고. 그럼 또 슬퍼질걸?”


감정들이 수다 떠는 사이 따분이가 계기판을 원격조종하고 있다. 


따분     “아 지루해, 헬스장 노래도 전혀 신나지 않아, 시끄러워서 귀에 거슬려.”


불안이가 얼른 제어판에 붙어 엘리가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도록 마음을 돌린다. 

따분이가 돌린 다이얼을 슬쩍 되돌려 놓는다.


불안     “여기서 중단하면 운동효과가 전혀 없다고. 

            모처럼 왔으니까 유산소 운동까지 두 시간은 하고 가야지”

따분     “두 시간? 나 못 해. 나 갈래. 재미 하나도 없어졌어.”

기쁨     “재미? 그래 따분아, 우리 재밌는 거 뭐 없나 찾아보자.” 


기쁨이가 따분이 옆으로 간다.

까칠이도 나선다.


까칠     “이번에는 나도 같이 골라야겠어. 

            지금 상태에서 엘리에게 어느 정도 자극이어야 마음을 다치지 않는 선에서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니까. 

            우리 중에서 그 경계를 알아챌 수 있는 건 섬세한 나밖에 없잖아.”


근력운동을 끝낸 엘리가 헬스장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을 켠다.

감정들도 아이디어 박스에 둘러앉아 각자 아이디어 전구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버럭     “‘뮤즈’의 <SUPERMASSIVE BLACK HOLE> 같은 노래 어때, 

                엘리가 조깅할 때 이 노래 나오면 급발진해서 엄청 빨리 달렸잖아.”


소심      “그래, 그래서 허리디스크가 튀어나온 지도 모르고 신나게 뛰다가 

                발등이 날카로운 칼에 배인 것처럼 갑자기 아파서 아악! 소리 지르고 

                몇 개월 동안 운동을 쉬었지.”


따분      “그리고 엘리는 최근에 노래를 듣지 않아서 마음에 드는 곡을 모으려면 

                일일이 들어봐야 한단 말이야. 플레이리스트도 마찬가지고. 

             노래 고르다가 질려서 운동까지 팽개칠지도 몰라.” 


슬픔     “예전처럼 클래식을 듣는 건 어떨까, 

               KBS 클래식 라디오채널에선 친숙한 곡들이 많이 나오잖아.  

            오랫동안 엘리가 월요일마다 침대에 누워서 충전할 때면 

            언제나 클래식음악 틀어놨던 거 기억해? 귀에 거슬리는 거 없이 편안하다고.”


까칠     “그러다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나오면 어쩔래. 

            웅장하고 비장한 것까지는 좋은데, 자칫하다 너무 감동해서 온몸이 전율하다간 

            그동안 마음조각 붙여놨던 거 아직 덜 말랐는데 다 떨어진다고.”


버럭     “아, 어쩌라고 진짜. 운동하지 마! 안 해! 

            운동 안 해서 잠 제대로 못 자고, 배 나오고, 체력 떨어져도 난 몰라!”


의자에 앉아 감정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던 부럽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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