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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Dec 17. 2024

나의 인사이드아웃을 구해줘, 침착맨 2

이곳은 엘리의 마음속. 

이 주 전, 아빠의 죽음이 몰고 온 정신적 충격이 엘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부쉈다. 

인생 최고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는 동안 그 충격은 쓰나미의 형태로 몸집을 불려 나갔다. 

매일 눈물을 빨아들이며 거대해진 쓰나미는 마음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발길이 닿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파괴하였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 나오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불안, 당황, 부럽, 따분이가 모여 있는 

감정 컨트롤 본부는 벽들은 모두 허물어진 채 뼈대만 간신히 남아 있었다. 

본부 안으로 거세게 들이치는 바람에는 쓰나미의 여파로 빗방울이 간간이 섞여있었다.  

‘마음 건설회사’는 감정 컨트롤 본부 복구를 일 순위로 정하고 즉시 실행했지만 

워낙 피해가 큰 탓에 공사에 필요한 인력과 원자재 둘 다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감정 친구들도 본부 안을 쓸고 닦고 정리하고 있었다.

그중 불안과 슬픔은 감정 제어판에 붙어서 물기를 제거하고 있는 중이다.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따분이조차 지금은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제어판 근처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따분이는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제어판 상판 커버와 버튼 사이 틈에 따뜻한 바람을 쏘이고 있었다. 

장치 안의 수분을 없애려고 나름대로 찾은 방법이었다.

불안은 걸레를 짜면서 ‘마음 건설회사’ 팀장 쪽을 슬쩍 보았다.


팀장은 제어판을 받치고 있는 기둥 안에서 조심스럽게 전두엽을 분리하여 꺼내고 있었다. 

엘리의 감정 제어판은 매우 크고 조작버튼도 많았다. 

미세한 감정까지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감정 컨트롤 운영체제도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돼 있었다.

문제는 전두엽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엘리의 뇌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용량의 전두엽이 설치되어 있었다. 

학생일 때에는 공부에만 집중하면 되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삼십 대 중반 이후로 

처리해야 할 일의 가짓수가 늘어나자 전두엽은 업무순서를 정하다가 과부하되기 일쑤였다. 


불안은 팀장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하며 입을 열었다.

불안     “저… 팀장님, 계기판은 언제 다 고쳐질까요. 

            엘리가 해야 할 일이 사십만 팔천 가진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요.” 


팀장은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불안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얼마 전에 엘리 인생에 제일 큰 재난이 갑자기 발생했잖아요. 

             리모델링할 때 쓰려고 확보해 놨던 건축자재들이 쓰나미에 다 쓸려가고 못 쓰게 됐다고요.  

             저기 보세요, 성격의 섬들도 다 부서졌잖아요. 

             여기 전부 예전처럼 돌아오려면 기본 일 년은 걸린다고 보시면 돼요.”

 

멀찍이서 이 말은 들은 버럭은 고함을 질렀다.


버럭     “일 년이나 걸린다고요! 일 년 동안 또 아무것도 못한다고? 

             우리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해치우자!”


버럭은 불기둥을 시원하게 내뿜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모니터를 보며 불안이는 엘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모조리 목록에 적었다. 

며칠 전까지 본부에 걸려있던 큰 스크린은 태풍에 날아가 버려서 창고에 있던 모니터를 대신 연결했다.


불안     “뭐부터 할까, 뭐부터 해야 하지? 세수랑 양치질하고 로션 발라야 하나? 

            집이 건조해서 피부가 마르는 게 느껴지던데. 

            아니 내 얼굴은 지금 당장 안 씻어도 되니까 가습기에 물을 부어서 

            가습기 작동시키는 게 나으려나? 

            약도 먹어야 하는데, 

            어, 냉장고! 선율이 아침먹이는 게 중요하니까 냉동실에 있는 식빵부터 꺼내어 놓을까? 

            앗, 저 비닐은 재활용 상자에 넣어야 하는데”


까칠     “지금 안 씻어도 된다고?”

 

까칠은 잠깐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까칠     “불안아, 아침에 세수하고 이 닦는 동안에 뿌옇던 정신도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나선 항상 아, 씻길 잘했다 만족해했잖아. 

            로션은 하나만 바르자. 그럼 모든 과정이 오 분 안에 끝날 거야.

            오 분이면 선율이 등교시키는 데 어떤 지장도 없어.”


불안 (심호흡하며) “알았어, 얼른 씻을게”


슬픔은 계기판 위에 반쯤 엎어져서 마음 건축회사 팀장이 전두엽을 수리하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까칠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슬픔     "고마워 까칠아. 계속 슬퍼했더니 앉아있을 힘도 없거든."


그 사이 씻기를 마친 엘리는 아침약을 입에 넣고 있다.


팀장님! 팀장님!

팀장의 무전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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