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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Sep 19. 2024

텔레비전이 지켜줬던 어린시절

물론 부모님은 바쁘고 빠듯한 일상에서도 나를 아주 잘 챙겨주셨다. 그러나 내게 만능해결사로써 부모님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마법사는 선생님, 친구, 기타 이웃들 등등 다양한데, 그 속에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과 곤충과 자연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가장 부질없고 별것아닌 외로움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나의 가장 오래된 만능 해결사는 역시나 텔레비전이였다. 산 바로 아래에 있는 시골, 옆동네 학교에도 전교생은 20명 남짓한 곳. 저녁이 되면 거멓고 고요해서 소름돋는 이곳에서 기껏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안에서 숙제하거나 티비보는 일 밖에 없었다. 친구집에 가려면 그 당시 짧은 다리로는 10분을 덜 걸어 교회까지 가야했는데, 그 시간이 되면 저녁먹고 가족끼리 오순도순 할 시간에다가 혼자서 다시 어두운 길거리를 헤쳐 집에 올 이유도 없어서 까만 저녁에는 늘 집에 돌아와 있었다.


시끄럽다 할 이웃주택은 도심과 다르게 내 아무리 소리지르고 날뛰어도 신경도 안쓸 거리에 있으니 피아노를 쳐보려 했지만, 밤에 악기 연주하면 귀신나온다는 소리에 그냥 건반뚜껑을 닫는다.


까만 저녁에 거실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는데, 밤에 그 창을 보는게 그렇게 무서웠다. 무서운게 얼굴을 드리밀 것 같다고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그 창문은 주택만큼만 딱 높은 경사를 마주보고 있어서 낮에도 꽤 어둡고 칙칙했다. 초등학생에겐 너무 넓은 시골 주택에서 무서운 생각하지 않으면서 시간도 무지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텔레비전 뿐이였다. 가끔 전화가 오면 그 창문 앞까지 달려가야 해서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너무 늦게까지 아무도 퇴근하지 않은 날에는 그렇게 텔레비전을 켜 둔 채로 방문을 열고 누워있으면 엄마가 종종 해주던 뱀파이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나름 2000년대 초 신식이던 브라운관 티비는 무서운 어둠과 부엉이 소리에도 나를 지켜주는 요정같은 존재였다. 두려움을 물리치는 해결사였지


지금이야 외로움 달래는 해결사로 핸드폰을 붙잡지만, 그 때는 외로움 보다 더한 두려움에 티비를 켰었다. 태풍치는 밤에도, 지지직 거리는 티비가 까만 옥상과 산등성보다도, 티비가 안나오는게 더 무서웠던지라 안테나를 만지러 그 폭풍우 치는 밤. 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해냈는지 옥상에 2번이나 왔다갔다 거려 안테나를 제대로 고정하고 다시 거실에 쭈구려 않아 두려운 마음 다독이며 티를 보곤 했었다.


그냥 텔레비전 중독인가 싶었다. 그럴 것이지. 근데 텔레비전 없었다면 아찔했을 수많은 밤들이 떠오른다. 나를 지켜준것은 텔레비전이였다. 별 문제 없을 시골에서 딱 한두개 아쉬운 점 고르라면 무서움과 외로움이였을것인데 그걸 해결해준 만능의 네모상자.


어린시절 나의 수호천사는 텔레비전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채버린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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