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과장 Dec 25. 2024

어느 날의 기도문

독실한 종교를 믿는다는 것이 반드시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그 깊고 진한 믿음을 인정받고자 하는 뚜렷한 말과 글귀 없이도 

그 눈빛, 꽉 모아 잡은 두 손과 가지런히 모은 두 다리가 증거이고 그것이 증명일 것입니다.


나는 종교라는 말로도,

열렬한 칭송과 찬양이라는 증명으로도

타인에게 이 믿음을 반드시 보여주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한 인간으로써, 삶을 사는 주체로써

고요하게 당신을 믿을 뿐입니다.


어떤 깨달음은 낡은 성경의 가죽표지에 닳아진 손자국과

어떤 기도는 새벽 딱딱한 나무 의자에 남겨진 온기로

어떤 믿음은 내 있는 자리 어디든 기도해도 닿을 수 있다는 마음입니다.

어떤 의지는 그 고지에 남겨진 누군가의 흔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누군지는 상관없습니다. 

정성 들인 나무조각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생명에게도 존중을 베푸는 것에서도, 

수 없이 한 방향으로 수많은 시간 매일같이 기도하던 모든 순간들로도 알 수 있습니다.


증명받지 않아도 됩니다.

독실한 종교인이라 칭송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내가 있는 곳 어디든 의심과 불신과 도움을 필요로 하여 

뵌 적 없고 알 수 없지만 그런 당신께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 당신을 믿음에 최선을 다함이 나의 증명입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으로도 채우질 수 없는 것에 손 내미는 절박함입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저 한 낱 삶에 한줄기 은총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당신을 미워하고, 원망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당신이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보듬어주리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죄를 사면받기 위함이 아니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함입니다.


나는 그대를 믿는다고 하여, 

무작정 찬송하러 가지도 않으며

꾸준히 절하러 가지도 않으며

무조건 매일 기도를 드리지도 않으며

반드시 절제하며 삶을 제한하지도 않습니다.


나의 믿음은 그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의 믿음은 내 안에, 그리고 온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방황할 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살포시 등을 밀어주는 바람이시며

당신은 내가 비 맞는 날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나무이시자

당신은 내가 절벽에서 떨어질 때, 한 가닥 나와있는 나뭇가지이십니다.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렵지도 않으며

천국에 가기를 죽도록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내 살아가는 동안이 천국은 아닐지언정 지옥이지 않기 위함이요

살아가는 날을 위해 단단해지고자 당신을 믿습니다.


남들은 내게 신실하지 않다고 손 까락 질 하고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게 당신을 믿는 것은 단지, 마음이 흔들릴 때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자

가끔은 내 손이 닿는 곳에 당신이 가르쳐주신 나눔을 베풀고

나 스스로가 폭풍이 될 때, 그 폭풍을 잠재우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께 모든 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며

나는 당신께 모든 해답을 내놓으라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주지도 빼앗지도 않으시며, 아무런 개입도 없을 것입니다.

나의 믿음은 기적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행운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내게 일어나는 불행을 감내하며 굳건히 다시 일어서는 것이

나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아십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당신이지만,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내 안에 계시며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시는 당신께

나의 믿음은 어떠한 장소에 구애받지도 않으며

어떠한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기도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