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글을 써놓고 제목을 고민한다
그래서 대부분 내 시는 제목이 없는 채 태어난다
우리네 태어날 때처럼 말이다
나의 감정도 그렇게 태어난다
그래서 난 한참을 돌보며 알아챈다.
얘는 진한 원망인가 보다 하고
이름을 지어줬었다가
한참뒤에 느껴지는 찝찝함에서
아 사랑, 이건 애증이구나
그제야 제 이름을 제대로 지어준다
그래서 대부분 나의 글은 이름 없이 태어나
그 이름을 부여받는다
나는 고민을 안 하려고 아예 무제로 두거나
적절한 이름을 주곤 했지만
한 달이 지나고, 2년이 지난 후에
다시 더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주곤 한다
제대로 이름이 없는 것 같은 시들은
유난히 계속 사랑해서 읽어보게 되니까
나의 부모님, 나 세상 처음 나기 전부터
얼마나 기대하고 고민했을까
나 어릴 땐 좀 남자 같은 이름 싫었지만
지금은 이 이름을 좋아한다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
자기 이름 한자 하나하나 풀어보고
의미를 찾는 시간을 가지게 했나.
난 너무 엉뚱한 조합이라 생각한 그 의미를
선생님이 사랑스럽게 이어주셨다
이어간다, 보석. 이 두 가지 뜻의 한자를
귀하고 소중한 것을 이어주는 존재라고 말이다
그 벅참이 선생님의 선하고 잔잔한
미소를 절대 잊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날, 내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지
한 유명한 시인의 시 쓰기 책
고작 중2였는데, 알아봐 주셨던 모양이다
부족한 능력을 떠나, 나조차도 모르던
내가 산문시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응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만난 어른 중, 그렇게 다정하게
사비를 들여 한 학년 오르는 수많은 제자 중
나에게만 그런 선물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시를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 책을 왜 내게만 주시는지 그때는 몰랐다
다른 애들보다 부족해 보였나 싶었지만
내 안의 창작욕은 거기서 나도 모르게
불이 지펴지고 있었다는 걸
그게 이어짐을 이제 안다. 그때 선생님이
시에 대한 내 사랑에 이름을 주셨던 거다
나도 모르게, 재능이라는 이름을 몰래몰래
난 그래서 주제 없이 느끼는 대로 쓰면서
그걸 이어가 시를 연결하곤 한다
이젠 사랑하는 내 이름,
나의 존재가치를 받은 것 같았던 사춘기 시절,
정말 지금도 너무 사랑한다.
사랑하는 이가 내 이름을
다정히 누구야~ 하고 불러주는 게
나에겐 최고의 애칭이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 우겨 나오는 안 좋은 감정들도
등을 쓰다듬어주면, 그 무언가를 잔뜩 토해낸다.
사랑이 체해서 죽어가기 전에
나는 다독여 아프지 않게 도움을 준다
우리 감정은 사랑으로 태어나 고통만 먹다 보면
그런 탈이 난다. 그럼 병이 나고
이름을 잘못 지어주게 되어
하나의 감정이 그렇게 죽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공감해 줘야만 해
사랑이어야만 해
미워하고 말 거야
이런 이름을 먼저 정하고 감정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느낀다
자연스럽게 내 안에 감정에게
그 이름을 붙여주는
다정한 마음의 주인이자 창조자가 되자
그래서 나도 내 글을
주절주절 써놓고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을지
이름을 고민한다.
너에게 좋은 이름을 주고 싶어서
몇 번이 바뀌어도
나의 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