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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Sep 04. 2024

추억을 낚시하고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지나간 추억을 건져 올려 버틴다.


가끔 아무거나 집어 올리면

부끄러운 과거와 잊고 싶은 민망함

힘들었던 순간들도 낚이곤 하지만


난 정말 힘든 순간이 아니면

마구마구 건져 올리지는 않는다


어릴 때 아빠 손수 만들어주신

얇은 대나무 낚싯대 걸쳐놓고

하나 낚이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낚인 내 기억들을

한참 즐기다가 다시 놔준다.


신기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낚자마자 바로 던져버리던 기억들이

이젠 낚고 나서

때론 보면서 웃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싫어서 바로 다시 던지었는데

이제는 웃을 수 있구나

낡고 바랜 기억이구나 싶다.

그럼 그것도 추억이 된다.


생각도 못했던 기억이 떠오르면

오랜만에 사색도 즐기고


마음에 폭풍우가 칠 때면 

저 깊이 가라앉아 낚이지 않았던

오래되고 거대한 아픔이 올라온다.


마음이 폭풍우 칠 때만 그런 아픔들은

요동쳐 올라와 섞여 섞여 

돌고래처럼, 상어처럼 난동 아닌 난동을 부려

나를 도망가게 한다.


추억을 낚시하는 일은 

여러 가지로 재밌는 일이 많다.

언젠가 아빠처럼, 능숙한 낚시꾼이 되겠지

나의 작은 연못이 호수가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거대하게 쌓여가는 추억과

거대해진 아픔들도 잠자고 있겠지만

개울가 옅은 곳 작게 떠다니는 소소한 추억들


송사리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워 

얼굴을 들이밀고 구경한다

오늘은 낚시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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