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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정현 Sep 23. 2024

내 이별의 종착지는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에도, 일주일 뒤에도, 아마 한 달 뒤에도, 겨울이 오고, 또 다시 새로운 봄이 와도 널 잊지 못 할 거야. 그리워할 거야. 이 날은 이래서, 저 날은 저래서, 이 계절은 더워서, 이 계절은 추워서, 오늘은 참 좋은 일이 있어서, 오늘은 참 하루가 짓궂어서, 그렇게, 계속 널 그릴 핑계를 만들어 댈 거고, 어떤 날은 사무치는 그리움에 밤잠 못 이루고 눈물짓는 날도 또, 있겠지. 네가 없는 아침의 공허가 참 버거운 순간도 또, 있겠지. 그래. 그렇게, 계속 그리워할 거야. 그렇지만, 이젠 널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널 잊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럼 내 이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저, 가물가물 흐려지는 기억들을 한조각, 한조각 날려보내며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 그게 다일까?


솔직히 뭐,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어. 어쨌든 잊을 수 없는 거라면, 흐려지고 옅어지는 것만이 답이니 말이야. 그렇게 또,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흔적조차 남지 않게끔 지워진 널 발견하는 세월도 언젠간 올 테지.


그런데 말이야. 너는 내 현재까지의 이십 대에 있어 가장 큰 이정표가 되어 준 사람이고, 또 나를 '나'다운 제자리로 돌려놓아준 참 고마운 사람이라 그런지, 아님, 처음 겪는 이별을 고통의 감수로만 끝내긴 싫은 마음에 그런지, 아님 둘 다인지, 명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너를 그렇게 하염없는 세월따라 지워내긴 좀, 싫은 거 있지.


그렇다고 널 마냥 붙잡고 있겠단, 그런 소리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건 너에 대한 예의도, 나 자신에 대한 예의도, 너와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끔 귀중한 삶을 바쳐온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다, 아니겠더라고. 솔직히 정말, 마냥 내 욕심대로만 군다면 아직은 너를 잊지 않고 싶어. 계속 되새기고, 기억하고 싶어. 내게 남은 너에 대한 기억은 전부 상냥하고, 다정했어서. 돌아보는 게 조금은 아리고 쓰리지만, 대체로는 행복해서. 계속 간직하고 싶어. 그렇지만, 그건 지극히 이기적인 내 욕심일 뿐이니까.


네 덕분에 더 바르게 살게 된 삶인 만큼, 너의 부재가 내게 남기는 결말도 좀 더 성숙하고, 옳아야 하지 않겠어? 네가 어떤 마음으로 날 떠났는지 이젠 정말 잘 모르겠지만, 네가 내게 해준 말 그대로, 너와 나, 우리 둘을 위해 한 더 좋은 선택이 이별이라면, 응당 내가 내리는 결말도 그래야 하는 거잖아.


네가 고한 안녕이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내 두 발을 땅 위에 닿게 해 줬어. 네가 고한 이별로 인해 견뎌낸 내 시간들이, 드디어 내가, 나 자신이 거한 땅 위에서 비로소 두 발을 똑바로 댄 채 서게 해 줬어. 네 말이 맞았어. 진짜, 너무, 너무너무 받아들이기 싫었는데, 참 안타깝게도 정말, 네 말이 맞았어. 이 이별이, 궁극적으로는 날 위한 거였더라. 네 덕에, 난 이제 내가 설 곳을 다시 되찾았고, 여기에서부터 한발짝, 한발짝 진중하고 성실한 걸음을 내딛어 가게 되었지 뭐야.


영영 부르고 싶은 네게, "진짜" 이별을 고할 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 네가 내게 고한 이별 말고, 내가 직접, 네게 고하는 이별. 네가 내게 한 말대로,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하는 안녕. 그걸, 이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참 늦었다, 그치. 그래도 내가 너보다 4년이나 늦게 태어났는데, 너보다 이별의 경험도 훨씬 적은데, 약 100일 만에 따라잡은 거면 빠르다고 해 주라. 네게 잘했단 소리를 듣고 싶어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 너도 내게 "참 잘했다-" 해줄 것만 같은 그런, 착각이 들었어.


마음 속 널 보내고잔 결심을 하면서도 네 생각을 하는 게 참 모순이지? 나도 알아. 다 알아. 그런데, 그게 잘못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꼭 생각을 안 해야만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에도, 일주일 뒤에도, 아마 한 달 뒤에도, 겨울이 오고, 또 다시 새로운 봄이 와도 널 잊지 못 할 거야. 그리워할 거야. 이 날은 이래서, 저 날은 저래서, 이 계절은 더워서, 이 계절은 추워서, 오늘은 참 좋은 일이 있어서, 오늘은 참 하루가 짓궂어서, 그렇게, 계속 널 그릴 핑계를 만들어 댈 거고, 어떤 날은 사무치는 그리움에 밤잠 못 이루고 눈물짓는 날도 또, 있겠지. 네가 없는 아침의 공허가 참 버거운 순간도 또, 있겠지. 그래. 그렇게, 계속 그리워할 거야. 그렇지만, 이젠 널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오늘 이 글을 시작하며 이 시리즈를 끝맺을 결심을, 정말로 "너와 손쉽게 멀어질" 결심을 했었는데, 아직은 매듭을 지을 자신은 없네. 아직은, 좀 더 힘들고 싶은 것 같아.


사랑하는 -야, 다음 편엔 널 완전히 떠나보내려고 해. 글이 주는 위안이 정말로 컸어. 글로 써내려가며 정리한 시간들이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어. 참 모자란 나를 많이 마주하고, 괴로워하고, 돌아오지 않을 널 그리며 옥죄는 숨과도 정말 많이 싸웠어.


그래도,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다. 그래서 네겐 영영 감사해. 그리고 참, 미안해. 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되어준 것 같아서.


더 나아진 내가, 언젠가 너와 마주쳤을 때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 다음 편에서 마지막 새벽을 보내자.

동이 트기 전 새벽의 푸른 불빛을, 마지막으로 함께 보자.


오늘 밤도 네가 평안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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