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기 위한 길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장치 중 하나가 단차입니다. 시선이 닿는다면 무릎 높이로 올라가기만 해도(혹은 주변보다 낮아지기만 해도) 무대가 되고,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 시선을 가리면 담장이 됩니다. 다양한 높이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거나 머무를 수 있게 하면 공간의 역동성도 강해집니다. 그만큼 공간을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는 장치인 거죠.
이런 면에서 계단은 특별합니다. 건축가 유현준은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계단은 시대에 따라 권력을 창출하여 사람을 억압하기도 했고, 때로는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면서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건축 요소다.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계단은 권력 관계를 만들어왔습니다. 물론 낮은 무대를 내려다보는 계단형 객석에서는 일방적이지 않은 관계가 연출되기도 합니다. 다수의 시선을 받는 자리에서 권력이 생기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리에서도 권력이 생기는데,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무대로 시선을 집중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양도하지만 동시에 내려다보면서 권력의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거죠. 참고로 계단이 사람을 보호한다는 말은 자동차의 접근을 막아준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니 계단이라는 건축 요소가 꽤나 특별해 보이죠.
또 한 가지 특별함은, 수평과 수직 움직임을 동시에, 선택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중간에 멈출 수가 없죠. 이동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계단이면서 동시에 의자인 공간에서는 한 발 한 발 움직이면서 내 자리를 고를 수 있고 시야 변화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한 영역 안에서, 때로는 영역의 안팎으로 위치를 옮겨가는 과정이 정적인 것이죠. 그 과정에 앉아 있으면, 공간을 보다 주체적으로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방향을 향해 앉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집중됩니다.
같은 방향을 향해 앉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분산됩니다. 한쪽 공간은 멈추라고, 나머지 한쪽 공간은 멈추지 말라고 말합니다.
인기가 좋은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무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