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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찬 Sep 01. 2024

1-3. 액자

관객이 완성하는 그림



멀리 내다보는 풍경은 해방감을 줍니다. 사방을 막고 인테리어로 분위기를 조성한 공간도 나름의 해방감을 주는데, 그와는 조금 다릅니다. 다른 세상을 꾸며서 그 안으로 초대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여주기 때문이죠. 산, 강, 길, 건물이 얽혀 있는 그림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찾게 된다는 점도 전경의 매력입니다.


이때 멀리 보는 풍경을 좀 더 능동적으로 즐길 수가 있습니다. 활짝 열린 시야를 액자 안으로 집어넣는 겁니다. 액자는 난간이나 기둥 같은 구조물이 될 수도 있고, 계절마다 다른 색을 입는 나뭇잎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간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밝아지거나 어두워집니다. 똑같이 오후 6시이더라도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겁니다. 봄과 가을이 다르고, 화창한 날과 흐린 날이 다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무언가가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기도 합니다.


건축가 서현은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 건축가가 경치 좋게 창을 내는 일은 아름다운 풍경화를 벽에 거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뒤가 막혀 있는 캔버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창은 건물 내부 배치(가구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외부 공간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지요. 꼭 내부와 외부를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멀리 있는 곳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어디든, 그림을 액자에 넣고 창을 내어 바라봅시다. 내가 그곳에 닿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내부와 외부를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정자(오른쪽 사진)를 현대건축으로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왼쪽 사진).


난간 틈이 액자가 됩니다. 액자 안에 사로잡힌 그림은 내 시선에 따라 달라집니다. 창살로 가둔 것 같은 영역이 그림이 되고(왼쪽 사진), 가로로 얇게 펴진 틈에 들어간 산이 그림이 되고(가운데 사진), 산 위로 뻗은 하늘이 그림이 됩니다(오른쪽 사진).


배경도 액자 역할을 합니다.


서울에는 개천이 여럿 있습니다. 흐르는 물이 주는 느낌, 기다란 길이 주는 느낌, 나무와 풀이 주는 느낌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죠. 하지만 저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개천이 보이는 좁은 길 위 벤치에는 나뭇잎이 커튼처럼 내려와 있습니다. 이 일대가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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