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옛 집

by 글그림

밭둑을 넘고 걸으면

바람이 되고픈 풀잎 소리

눅진한 땅을 좀 더

밟아야 닿는 강가


한 걸음 한 걸음 발이 아려도

끝자락까지 가면

마른 풀밭에 숨은

나무 그림자 하나가 눈을 감고 있었다


흙에서 솟은 작은 꽃들

감자향 배인 햇살

고개를 떨군 채

밤새 내린 이슬에 젖어

숨 쉬며 자고 있다


바람이 들판을 지나고

거칠게 흔들리는 풀밭 속에서

늙은 비탈길의 기억이 휘청이며

뿌리를 뉘 운다


잔잔한 시냇물 소리

물결에 비치는 묵은 기억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에

풀 끝은 바스러지는 소리를 낸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도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있듯

먼저 갔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판을 맴돈다


이제는 발끝에 묻은 흙도

마른풀처럼 고요하게

그 옛 집을 떠나지 않는다


202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