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 다투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갈등의 종류와 경중이 다를 뿐, 어쨌든 부딪힘은 생기기 마련이다.
친구 관계처럼 짧은 만남에서는 본심을 숨기고 예의를 지키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연인 사이, 특히 결혼 후의 관계는 다르다.
긴 시간 곁에 있다 보면 아무리 아끼는 사이라도 결국은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싸움을 대하는 태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와 남편은 그 점에서 극과 극이었다.
나는 마음에 걸리는 게 생기면 바로 이야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말하기 전에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대화를 원했지만 남편은 입을 꾹 다물었고, 나는 그 모습이 도무지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
"나랑 하루 이틀 보고 안 만날 거야? 평생 함께 할 건데, 이렇게 입을 닫으면 어떡해. 벽이랑 대화하는 기분이야."
"여보가 화가 나면 머릿속이 하얘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그냥 오빠 마음속에 있는 걸 다 보여줘. 예쁘게 정리 안 해도 되니까, 난 오빠의 진심이 궁금하단 말이야."
"그것도 꺼내려면 시간이 필요해..."
스피치 대회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부부간의 대화인데 왜 시간이 필요한지, 그때도 지금도 사실 온전히 이해는 안 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연애 초기보다 지금은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대화가 가능해졌고, 서로가 서로의 방법을 이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싸움'이라기엔 거창하다.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일로 누군가 감정이 상하고, 그건 대개 서로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다.
내가 잘못하면 사과하고, 남편이 잘못하면 사과한다.
단지 그 실수가 반복되거나 마음에 깊이 남는 일이라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뿐이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자잘한 일로 내게 자주 잔소리를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빈도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나 역시 혼나는 입장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 생긴 의견 불일치는 절대 그날을 넘기지 않았다.
신혼 초, 남편은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내가 일일이 미션을 줘야 움직였다.
능동적이지 못했지만, 주어진 일은 뭐든 성실하게 해냈다.
문제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이 주어지면 과부하가 걸려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잊어버린다는 점이었다.
집 대청소를 하던 날, 나도 바쁘고 할 일이 많았는데 남편은 하나 끝내면 다시 와서 "이제 뭐 하지?"를 반복했다.
"내가 아까 다 말해줬잖아."
"나는 여러 개를 한 번에 말하면 까먹어. 나도 내가 답답해..."
그 시절 우리의 갈등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입력한 대로 성실하게 출력되던 남편이라, 내가 필요로 하는 걸 알려주기만 하면 따라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총용량의 한계가 있었고, 나는 그걸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여러 개의 일을 나눠서 말하면 효율도 떨어지는 데다 남편을 부려먹는 사람 같아 보여 싫었고, 남편은 여러 가지 일이 주어지면 하나를 하다가 나머지를 잊어버리는 스스로를 답답해했다.
우리는 그 문제를 놓고 충분히 이야기했다.
하루 만에 해결된 것도 아니었고, 비슷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대화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부려먹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남편에게 한 가지씩 나눠서 말해주고, 남편은 그때그때 바로 해내는 걸로 합의했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결국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방식이었다.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반복되는 갈등이 풀리지 않는 건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하지 못하는 날이 쌓이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점점 사라진다.
찻잔이 식는다고 해서 나를 위해 차를 준비해 준 그 사람의 마음까지 식는 것은 아니다.
식어버린 찻잔에 화를 내기 전에, 나를 위한 찻잔을 준비하기 위해 끓는 물을 올렸을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를.
작은 불편 하나에 눈살을 찌푸리기보다, 말없이 건네는 배려를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고 싶다.
치약을 중간부터 짜면 어떻고, 콜라 캔을 먹고 안 치우면 어떠랴.
내가 보지 못한 순간에도 남편은 분명 나를 위해 무언가 하고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