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무방비함

by JS

남편과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 그는 나에게 이것이 첫 연애임을 고백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스물다섯이나 돼서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다고?'

남자친구의 과거사를 신경 쓸까 봐 흔히 하는 '착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고백이 진실임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연애의 티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던 오빠는 내가 손을 덥석 잡으면 익은 새우처럼 얼굴부터 귀까지 붉어졌고,

밀당이 무엇인지 몰랐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내가 본인 인생의 마지막 여자라도 되는 듯 당장 혼인신고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손을 잡고 길을 걷기만 해도 입이 귀에 걸리는 헤픈 웃음.

그 웃음이 마치 내가 귀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가끔은 답답한 구석도 있었지만, 돌려서 표현하지 않으면 해결 됐다.

완벽한 공대 남자인 그는 입력값대로 출력값을 도출해 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걸 솔직하게 말하면 그대로 따라주었다.

물론, 가끔 사용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리셋되는 오류도 있지만.

그럴 때면 나도 속상해 화를 냈지만, 오래 만난 지금은 주기적으로 다시 입력해 주면 된다는 지혜를 얻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우리는 대학 MT도 함께 갔다.

커다란 에어보트를 타고, 튜브에 몸을 맡기고 둥실둥실 떠다니며 물놀이를 즐긴 뒤 숙소로 돌아와 신나게 고기를 구워 먹었다.

물놀이 후엔 뭘 먹어도 맛있지만, 고기와 라면 조합은 정말 최고다.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꽉 부른 배를 부여잡아 놓고도 소시지가 구워지면 먹고, 과자를 꺼내면 또 먹었다.

MT 장소까지 운전해서 온대다가 신나게 물놀이까지 즐긴 오빠는 배가 불러오자 구석에 쪼그리고 누워 잠을 청했다.

잘 사람들은 자고, 놀 사람은 노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즐겁게 놀던 중

문득 자고 있는 오빠에게 장난치고 싶어졌다.

잘 자고 있는 오빠 뒤에 조용히 다가가 배를 확 감싸 안았다.



평소에도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이고, 코를 크게 골고 있어 깊은 잠에 빠졌으리라 생각했는데

내 손이 닿자마자 오빠는 전기뱀장어 마냥 펄쩍 뛰며 내 손을 탁 쳐냈다.

안경도 없이 흐릿한 눈으로 누군지 확인하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 얼굴이 너무 낯설었다.

"...여보구나아..."

졸음 가득한 목소리로 내 얼굴을 확인한 그는 다시 표정을 풀고는 스르륵 눕더니 잠들었다.

내 팔을 도로 당겨 자기 허리를 감싸 안도록 하는 건 덤이었다.



낯선 표정에 너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사람이었을까 봐 그렇게 경계했던 거구나.

잔뜩 날을 세우고 경계심 그득한 표정으로 노려보더니

나인걸 확인하자마자 창이며 방패며 다 내던지고 편하게 자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 후 알게 된 사실은, 남편은 본인 몸에 누군가 손을 대는 걸 극도로 불편해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마사지는 물론, 도수 치료 같은 의료 목적도 내키지 않아 했다.

그래서 병원을 가게 하려면 내가 잔소리를 퍼부어야만 했다.

그냥 갔으면 혼나지도 않았을 텐데 잔뜩 혼난 뒤 시무룩하게 따라나서는 모습이

주인만 따르는 커다란 리트리버 같기도 했고, 엄마 바라기 3살 아들 같기도 했다.

이래나 저래나 콩깍지라면 콩깍지겠지.



아무에게나 주지 않았을 것 같은 곁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무방비한 모습을 내게만 내어준 그 밤.

오빠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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