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 중에 걱정이 목소리가 가장 크다.
임신으로 인해 나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긴 나에게는 그 효과가 배가되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꼬물꼬물 하찮고 귀여운 태동에 웃음이 났는데,
이건 우리 심쿵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걱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말 심쿵이었을까?
첫 임신이라 내가 착각한 건 아닐까?
심쿵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엄마인 내가 몰라주는 건 아닐까?
임신 초기, 보글보글 거리는듯한 작은 태동은 열 달 동안 배 속에 아기를 품고 있는 엄마에게만 주는 하나님의 선물 같았다.
아빠는 절대 알 수 없는, 간지럽고 포근한.
하지만 그만큼 너무 작고 소중해서 때때로 나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했다.
심쿵이가 조금 더 자란 뒤에는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
어찌나 활발하게 움직이는지 엄마가 걱정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파도 좋으니 잘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차라리 빵빵 차주기를 바랐던 나에게
그 힘찬 움직임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고,
그 마음은 막달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임신기간 내내 심쿵이는 언제나 주수보다 조금 더 컸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엄마가 잘 먹은 탓이 크겠지.
다 내 탓이겠지만, 일정 부분은 날 잘 먹여댄 남편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날로 늘어나는 심쿵이의 몸무게를 확인하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다.
'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으나
기대가 무색하게도 심쿵이는 예정일까지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40주를 꽉 채우고,
유도 분만 일정을 예약해 두고 집으로 돌아온 밤.
남편과 단둘이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천천히 즐겼다.
화요일 밤에 입원해 수요일에 낳기로 했는데,
월요일 밤부터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보였던 이슬도 반가웠는데, 그 뒤에 진통까지 겹치자
"역시 우리 심쿵이는 엄마 걱정 하나도 안 시키는 착한 아기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은 견딜만해서 가진통이라 생각하고 간격만 체크하며 밤을 거의 새웠다.
화요일 아침.
진통 간격이 짧아졌지만 여전히 참을 만해서 고민하는 나를 남편이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유도 분만을 예약해 둔 바로 그날.
자연 진통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후 16시간 만에 심쿵이를 만났다.
진통도, 내진도 견딜 만했지만
무통 주사의 효과가 떨어진 뒤, 본격적인 힘주기가 시작되자 그야말로 죽을 것 같았다.
"똥 싸는 것처럼 힘주세요!" 하는 의료진의 말도
훌륭한 소화기관 덕분에 변기에 앉으면 대변이 나오는 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진척이 없자 포기하고 싶어졌다.
"못하겠어요, 그냥 배 째주세요..." 울먹이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기 머리가 보이는데 무슨 소리예요. 엄마는 할 수 있어요. 엄마는 해야 해요."
그 말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버티는 사이,
남편이 분만실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곧이어 통증이 사라졌고 내 위에 따뜻한 무언가가 올려졌다.
그리고 울음소리가 들렸다.
까만 머리칼이 먼저 보였고,
초음파에서도 눈을 자주 뜨던 우리 심쿵이는 출산 직후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차오르던 눈물은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쏙 들어갔다.
이후 이어진 후처치와 자궁 마사지도 말도 못 하게 아프고 힘들었으나,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주는 남편과
친절한 의료진 덕분에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씻고 돌아온 심쿵이를 다시 만났을 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들었다.
안녕, 엄마야.
엄마가 힘을 잘 못줘서 미안해.
태어나느라 힘들었지?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말똥말똥 눈을 뜨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아기에게 못다 한 말을 전했다.
그렇게 나는, 이 사랑스러운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
진통 중 무통주사 없이 이런 고통을 견뎌내고 나를 낳아주셨을 엄마가 떠올랐다.
감사했고,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
나에게 출산은 남편이 없었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진통에 고통스러워할 때 남편은 내 손을 꽉 잡아줬고,
무통주사 덕분에 쪽잠을 자는 동안에는
챙겨 온 수첩에 '출산 후 남편이 해야 할 일'을 빼곡히 적어두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는 '와이프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남편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오기 전.
탯줄을 자르기 위해 준비하며 긴장으로 손에 땀이 차 멸균 장갑을 세 번이나 다시 꼈다고 한다.
그게 간호사 선생님께 너무 죄송했다고.
밖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내 소리를 들으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기도만 했다고 했다.
그리고 분만실에 들어오라는 말을 듣자마자 뛰어 들어와 내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심쿵이의 탯줄을 잘랐다.
간호사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세어 보여주었지만,
오빠의 시선은 아기와 나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심쿵이를 씻기러 의료진이 데리고 나간 뒤에야
내 옆으로 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수고했어. 심쿵이도 건강해."
진통 중에도 심쿵이의 심박수가 떨어질까 전전긍긍했던 나에게 최고의 위로였다.
2025년 10월 22일. 오전 2시 1분
3760g, 51 cm
내 인생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숫자들이 새겨졌다.
예쁘게 키울 계획으로 설레는 부모님.
사랑이 넘치는 다정한 아빠.
온 가족이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
그렇게 내가 심쿵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을 가득 채우고
연애 5년, 결혼 생활 7년 차인 우리 부부는
첫아기를 품에 안고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