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해제

by JS

아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던 남편.

지금 이미 우리가 충분히 행복한데, 아기를 낳아 더 행복해질지 불행해질지 모르는 일을 하는 건 도박이라던 내 남편.


그런 남편이 심쿵이가 생기자 180도 달라졌다.

산부인과 검진일을 손꼽아 기다렸고, 몇 주차인지도 열심히 세었다.

진료일이 다가오면 휴가를 내고,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초음파를 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 소리에 행복해하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 합쳐 20개라며 기특해했다.


임신기간 내내 그는 극성 보호자였다.

쌀국수에 든 생 숙주를 먹으려 하면 "잠시만."하고 인터넷을 찾아본 뒤,

"소량은 괜찮데. 먹어, 여보."하고 안심시켰다.

작두콩 차, 능이버섯, 차가버섯처럼 원래 먹던 식재료라도 혹시 위험할까 싶어 나를 멈추고 검색해 보곤 했다.




남편은 원래 식사 속도가 무척 빨랐다.

남자들이 조금 빠르지, 정도가 아니라 놀라울 만큼 빨랐다.


연애초반에는 '배가 많이 고팠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시간이 흐르며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국수 한 그릇이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본인 몫을 다 먹고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배가 고픈 줄 알고 내 몫을 나눠준 적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남기는 줄 알고 그걸 받아먹었던 거였다.


"내 속도랑 비슷하게 먹어볼까?"


빠르게 먹는 습관이 좋은 건 아니었기에, 나는 조금 천천히 먹어보길 권했다.

착한 남편은 내 부탁을 들어주려 애썼고, 그 뒤로는 평범한 속도로 밥을 먹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임신 8주쯤 된 어느 날, 묵은지찜에 들어 있는 두부가 유난히 맛있어서 열심히 먹고 있었다.

연애 때부터 늘 내 속도에 맞춰주려고 노력하던 남편이 그날도 천천히 먹길래, 역시 맞춰주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내가 다 먹고 난 뒤에도 남편은 식사를 끝내지 않았다.

남은 묵은지와 두부를 밥에 비벼 맛있게 먹는 게 아닌가.


"웬일이야? 나보다 오래 밥을 먹네!"

"여보가 잘 먹길래 잔뜩 먹게 해주고 싶었어."

"응?"

"여보 두부 좋아하잖아."


새로운 식당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건 천천히 먹고 손을 잘 대지 않는 반찬은 먼저 먹어치우던 남편.

그게 고맙긴 했지만 이토록 감동적이진 않았는데 임신으로 예민해진 마음에 더 크게 다가왔다.

들쭉날쭉한 입덧으로 힘들었지만, 이런 남편과 함께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로도 남편의 지극정성은 이어졌다.


평소에 추위를 잘 타지 않던 내가 임신 초기에는 어찌나 춥던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으려는데, 개켜 있던 잠옷이 따뜻했다.


"뭐지? 옷이 뜨겁다?"

"괜찮아?"

"응. 되게 좋다."

"여보 추워해서 내가 드라이기로 데웠어."




평일 내내 힘들게 일했을 텐데도 주말이면 밀린 청소를 하고, 파스타까지 만들어줬다.

몰려드는 무기력함과 싸우던 내가 미안해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안 해서 미안해."

"무슨 소리야? 여보는 심쿵이를 키우고 있잖아!"


음식 냄새에 힘들까 봐 파스타를 만드는 동안 방문을 닫아두고,

전기장판 켜둔 이불 속에 들어가 쉬라고 말해주었다.

그의 작은 배려들은 쉴 틈 없이 몰려와 마음을 간지럽혔다.




출장에서 돌아온 날에는, 출장지에서 유명하다는 도가니탕을 포장해 왔다.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사 먹지 말자던 나의 성향 때문에, 남편은 늘 뭘 사다 주고 싶어도 주저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심쿵이 덕분에 안 혼날 테니까 그동안 못한 거 다 할 거야!" 하며 과일과 주전부리를 사다 날랐다.


원래도 사랑꾼이었던 남편은

그간 나를 배려해 참아왔던 모습들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계속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 오빠의 행동들에 말랑해져 있던 나는, 그런 챙김이 더없이 좋았다.


출근하기 전, 참외나 사과를 깎아 접시에 담아두고 가는 남편의 사랑이 좋았다.

"어휴, 극성이야." 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심쿵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사랑 많은 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행복했다.




서울 더현대 팝업에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굿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임신 중기였지만 장거리 이동은 무리일 것 같아 가지 않기로 했다.

그저 별 의미 없이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오빠, 서울에서 스티치 팝업 한대."

"가자!"

"내가 서울까지 어떻게 가? 무리야."

"그럼 내가 다녀올게! 임신한 아내를 위해 다 그렇게 하는 거래. 엄마가 행복하면 심쿵이도 행복하고, 태교도 되고 일석이조!"

"나랑 떨어져 있지 말고 옆에 있기나 해. 그게 태교야."

"그럼 내가 여보 자면 막차 타고 올라가서 첫차 타고 내려올게!"


그 말에 내가 웃자 남편도 덩달아 웃었다.


"아, 막차 타고 올라가면 백화점 문 닫았네."

"그래, 바보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순간들 덕분에, 함께하는 일상이 더 즐거웠다.






아무튼 나의 임신 기간은

몸과 마음의 크고 작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봉인 해제 된 남편 덕분에 더없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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