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속 우산

by JS

남편과 나는 성격이 참 다르다.

연애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MBTI가 유행한 이후로는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해졌다.

남편은 감성으로 우주를 유영하는 몽상가, INFP.

나는 현실주의 끝판왕, ESTJ.

어떻게 단 하나도 겹치는 부분이 없을까 싶으면서도, 사실 검사하기 전부터 예상했던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좋았다.

각자 잘하는걸 서로 존중했고, 나와 다른 그의 모습은 신기했다.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최근 이렇게 세찬 비는 본 적이 없어서,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올 남편이 걱정됐다.

얼마 뒤 집에 도착한 남편은 앞뒤 맥락도 없이 대뜸 말했다.

"나, 마음이 너무 안 좋아. 세상이 각박해진 것 같아."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묻자, 퇴근길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비가 많이 와서 평소보다 천천히 운전하고 있는데, 신호에 걸려 정지선에 섰다고 한다.

그때 문득 인도를 보니,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가방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빗속을 걸어가고 있었다고.



남편이 자란 동네는 작은 마을이라, 이웃들끼리 서로를 다 알고 지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어른들은 우산이 없는 아이를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줬고,

아이들도 익숙하게 트럭 뒤에 올라타며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그 아이를 태워주고 싶었지만, 학생의 입장도, 부모님의 반응도 알 수 없었다.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나는 모르는 아이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남편이 신기했다.

내 사람이 아닌 타인에게는 냉정한 편이라, '저렇게 살면 좀 피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일단 내 남편이 우울해하니, 영혼을 담아 F의 감성으로 말했다.


"차에 우산 없었어? 우산이라도 주지 그랬어."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남편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럴걸 그랬어! 다음부터는 그래야겠다! 여보는 천재야!"


대체 어디서 감동한 걸까.

어느 부분에서 신난 걸까.

천재가 되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더는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그 뒤 남편의 트렁크에는 항상 우산이 있다.

필요할 땐 우리가 쓰기도 하겠지만, 언젠가 필요해 보이는 다른 사람이 보이면 건네주고 싶은 따스함이겠지.

아주 소심한 사람이라 정말로 우산을 건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오빠 차 트렁크에 있는 우산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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